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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글쓰기 85일째] 마감과 강제 독서

재택근무하는 프리랜서 작가의 시간관리

“연기를 시작하고 제일 무서웠던 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였어요. 제가 알아서 찾아서 하는 만큼 되거나 잘 안 되고 결과물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죠. 각성이 되더라고요. 실행부터 완료까지 혼자 다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싶었죠.”

- 조여정


작년부터 두 곳의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하나는 '독하다 토요일', 한국 현대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 또 하나는 '명작 클럽'이라고 고전 소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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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선 잠시 길을 잃어도 좋습니다!

골목길 어딘가 시간이 멈춰 선 서점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 jtbc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프랑스 편, "셰익스피어 인 파리"


2019년 JTBC 특집 다큐멘터리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를 만들었다. 나는 2편, "셰익스피어 인 파리"를 담당했는데 영화 <비포 선셋>과 <미드나잇 인 파리>의 촬영지이자 헤밍웨이와 피츠 제럴드의 단골 서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출판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성소수자와 여성 페미니즘을 주제로 문학, 역사, 철학, 청소년, 예술 등 다양한 책을 갖추고 있는 "비올렛 앤 코" (1940년대에 낙태, 동성애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삶과 에로티시즘을 거침없이 표현했던 작가, 비올렛 르뒥의 이름을 땄다. 우리나라에는 책도 영화도 없어 영화 <바이올렛 : 그녀의 뜨거운 삶>을 외국어 버전으로 겨우 봤다. 이제 네이* 굿 다운로드가 되는군.)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 마르셀 프루스트가 살았던 파리 8구에 19세기부터 4대째 이어오고 있는 "오귀스트 블레조" 등 프랑스의 오래되고 작은 동네책방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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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 선셋>은 나의 인생영화라 파리에 갔을 때, 일부러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가 보기도 했고 요즘 동네 책방에 대한 관심이 많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내내 아주 즐거웠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17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노트르담 성당과 연결된 수도원 건물이었는데 노트르담 성당 화재로 마음 아프기도 했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에단 호크가 했던 것처럼 작가와의 대화를 촬영했는데 우리나라에 출판도 되지 않은 작가라 걱정하다가 방송 출판도 되고 2019년 퓰리처 상을 받기까지 해 기뻤다. 리차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는 작년에 읽은 책 중 단연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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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말한다 : 태양과 물은 끝없이 대답할 가치가 있는 질문이야”

- 리차드 파워스, <오버스토리>


1년 넘게 걸려 만들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으나 결과도 좋아서 2019 방송콘텐츠 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해 기분 좋았다. (곧 시즌2를 만들 것이다. 기획안이 통과돼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더 알찬 기획으로 기대가 높았는데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당장 제작할 수 없어 많이 아쉽다.)


https://tenasia.hankyung.com/topic/article/2019111599084


그런데, 책방 다큐를 만들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헤밍웨이의 책이 기억나지 않는 거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아예 읽지도 않았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 그리고 책을 읽지 않고 다큐에 인용구를 넣는 것이 부끄러웠다. 번역된 책들은 거의 읽으려 노력해서 다큐를 만드는 내내 책을 많이 읽었다. 결국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읽다가 포기했지만.. 헤밍웨이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번역에 따라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대한 추억을 기록해두기까지 했으니 읽는 수밖에... 헤밍웨이는 20대에 파리에 살면서 서점에서 책을 빌려 읽고 서점주 실비아 비치에게 돈을 빌려 쓰기도 했단다.


따뜻하고 쾌적하고 멋진 곳이다.

선반에는 책들이 가득 차 있었으며

생존해 있거나 작고한 유명 작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나름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기억나지 않는 고전과 소설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모여 동네책방 겸 까페 '메종 인디아 트래블 앤 북스'에서 한 달에 한 번 고전을 읽고 이야기하는 '명작 클럽'에 가입했다. 자료 이외에 읽는 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 책을 쓰면서 더욱 그렇다. 특히, 국내 소설을 거의 안 읽는다. 그래서 또 한 달에 한 번 현대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는 '독하다 토요일'에 가입했다.


한 달에 두 권은 강제로라도 읽어야지 생각하고 가입했는데 생각하지 못한 좋은 책들을 추천해 주고 책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어 즐겁다. 급한 마감에 쫓길 때가 많아 참석률이 저조하지만 올해는 열심히 읽고 참석하려 한다.


이 달에는 두 책모임에 모두 출석했다. 독하다 토요일에서는 김초엽의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고, 명작 클럽에서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조금씩 생활이 변하고 있다. 한 달에 두 권을 읽으려 노력하다 보니 두 권 외에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 마감은 미리 정해진 일정, 책모임을 고려해 조정한다. 오늘은 마감을 코앞에 두고도 108배를 하고 브런치를 쓸 여유까지 생겼다.


자료를 찾다 조여정의 인터뷰를 보고 생각한다. 작가에게 마감이 울트라 파워를 샘솟게 하지만 평소의 마감 없는 시간에도 프리랜서 작가는 언제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전시회를 보고, 산에 가고 여행을 다니고....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열심히 부지런히.


그래도 하필이면 오늘 – 화산회 : 화요일에 산에 가는 모임에서 날짜를 조정해 이번 주는 목요일에 산에 갔다. - 산에 못 가 아쉽다. 다음 주에도 화요일에 내레이션 더빙이라 갈 수 없다. 아쉽지만 그 후로는 산에도 가야지, 하면서 오늘은 이제 열심히 내레이션 원고를 써보자.


*한국영화 100년을 돌아보다

내 인생의 한국 영화 1부

2020년 5월 11일 월요일 저녁 22:40~23:30


1919년 단성사에서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를 상영한 지 100년

인생 최고의 한국 영화는 무엇인가요?

우리 가슴속에 반짝이는 보석 같은 영화

쉼 없이 달려온 한국 영화 100년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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