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누나 요즘 뭐 하는 거야?”
“방송도 하고 글도 쓰고 맨날 똑같지 뭐...”
“108배는 왜?”
“그냥 운동 삼아, 마음공부하느라고”
며칠 전 아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내 브런치를 보고 있다며, 아직도 방송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108배는 또 뭐냐고 묻는다. 한참 사는 이야기를 하다 전화를 끊고 메시지를 보내는데 마지막 연락이 4년 전이었다!
녀석은...이라 썼다 지웠다 다시 쓴다. 녀석은 KBS 도전 지구 탐험대 막내 할 때 같이 밤새워 예고를 만들었던 FD였다. 이제 녀석도 40대 중반이니 녀석이라 하지 말까 했는데 그래도 생각나는 호칭은 역시 녀석이다. 녀석이 중소기업 대표가 되었다. 욕실 화장실 타일을 주 종목으로 하는데 신축 아파트 등에 들어간단다. 40초 예고를 만들면서 예술을 하겠다고 밤을 꼴딱 새우고 했던 그때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20년 전 일이다. 10년 전인가 우연하게 연락이 닿아서 함께 홍보영상을 몇 편 작업했었다. 그때도 밤새 와인 마시며 수다를 떨었었다. 한참 연락이 닿지 않았다가 뜬금없이 전화해 별자리를 봐달라고 하다니...
나의 지인들은 대개 그렇게 오래된 사람들이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했던 카페 사장님과 그때 어울렸던 사람들, 방송작가 아카데미 동기, 성당 주일학교 교사할 때 신부님 등 대개 20년 이상은 알고 지냈다. 방송작가 선배 중에서도 가끔 따로 만나 술을 마시는 사람은 10년 이상 됐다. 그렇다고 자주 전화를 하거나 안부를 묻지는 않는다. 그냥 이렇게 뜬금없이 연락을 한다. 그중에는 페이스북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2G 폰을 쓰는 사람도 몇 있다. 그래서 녀석이 나의 108배 브런치를 보고 있다는 게, 그걸 보고 또 연락을 한 게 반갑고 신기하다.
생각해 보니, 이번에 다큐에 배우 이병헌을 섭외한 것도 20년 전 <도전 지구 탐험대> 때 인연이었다. 당시 MC를 하던 아나운서가 프리를 선언하면서 로드 매니저가 생겼었다. 그런데 다른 로드와 다르게 나이가 좀 있어 보였다. 어쨌든 몇 달을 계속 일주일에 한 번씩 녹화 때마다 얼굴을 봤다.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 있다. 그는 매우 성실했고 매너가 좋았다. 그 사람이 지금 배우 이병헌의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 손석우 씨다. 이병헌 배우와 회사를 차리려 나올 준비 하느라 잠시 로드 매니저를 했던 모양이다. 한국영화 100년 다큐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전화해 인터뷰를 부탁했다. 바로 오케이 해 주어 고마웠다. 영화배우, 감독 모두 작품에 들어가면 바쁘고 감정이 흐트러져 인터뷰를 잘 안 한다. 게다가 요즘은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많다. 그래서 한국영화 100년 다큐는 섭외가 관건이었다. 꼭 섭외하고 싶은 배우나 감독 모두를 섭외하지 못했지만 첫 섭외로 배우 이병헌이 확정되면서 마음이 놓였다.
오래된 인연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삶을 살다가 가끔 안부를 묻고 서로에게 도움되는 일은 같이 하고,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오늘은 108배를 하면서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