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37일] 삶의 면역력

톨스토이 행복론, 지금 여기 내 앞의 사람

3월까지만 해도 코로나 19 사태가 이렇게 오래갈지, 판데믹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삶은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별자리, 아스트랄러지를 10년 넘게 공부하고 상담을 하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결혼은 언제 하나요? 돈은 언제 벌어요? 묻는다. 내 삶의 지도를 얻는다고 해서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예측은 어렵다. 내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차트를 열어봤었다. 아, 이래서 이런 사고가 일어났구나 알았지만 미리 봤을 때는 그게 교통사고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여러 키워드들이 있고 그 순간순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레이어가 다르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 일찍 108배를 하고, 보험 리모델링을 위해 설계사를 만나러 나갔다 왔다. 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하려는데, 사이드미러가 열리지 않는다. 10년 된 나의 차는 이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해 돈을 달라 한다. 사이드 미러를 접고 여는 모터가 고장 났다. 고쳐야 한다. 견적이 12만 6천 원이다. 에휴.


교통사고 이후 삶이 크게 흔들렸기에 질병이나 사고에 대한 걱정이 크다. 게다가 난 혼자 사는 여자니 병원비를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하고 노후도 책임져야 한다. 오래전 들어둔 보험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어 보완하고 삭제하고.. 그야말로 리모델링을 했다. 한 달 보험료가 20만 원,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일에 대한 오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써야 할 돈이다.


면역력이 떨어져 고생한 경험이 있어 요즘도 열심히 약을 챙겨 먹고 운동을 한다. 우리 엄마도 70세가 넘으면서 부쩍 건강보조 식품에 관심이 많다. 나중에 아파서 돈 드느니 미리 챙겨 먹고 안 아픈 게 남는 거란다. 새싹보리와 화분, 그리고 석류 콜라겐에 이어 며칠 전에는 흑염소를 드시기 시작했다. 나도 새싹보리와 석류 콜라겐을 먹는다.


그래도 어쨌든 운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놈의 운동은 시작하기가 너무 힘들다. 하고 나면 개운하고 기분도 좋은데,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걸 알면서 왜 그럴까? 오늘도 눈을 떠서 108배를 하기까지, 할까 말까, 수없이 고민하고 미루고 망설였다. 그래도 했다. 보험 리모델링도 미루다 했다. 이제 피부과도 예약해서 다시 가야지.


삶에도 면역력이라는 것이 있을까? 어제오늘 지인들과 캠핑을 가려했다가 비 때문에 가지 않았다. 여기저기 비 피해가 많은데 놀러 간다는 것이 꺼림칙했다. 그런데 가기로 했던 별장의 주인이 어제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만약에 우리가 어제 예정대로 놀러 갔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분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이렇게 놀랍고 황망한데, 친한 분들은 지금 마음이 어떨까?


대학교 동기가 4학년, 졸업을 얼마 안 남기고 교통사고로 죽은 이후,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지인들이 죽었다. 대학 등록금을 알바로 벌게 해 주었던 선배가 30대 초반에 과로사로 죽었고, 글 쓸 때 밥해주겠노라 했던 언니가 죽었고, 나중에 둘 다 혼자 살게 되면 둘이 결혼하자 했던 초등학교 동창이 죽었다. 때마다 삶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 이렇게 허망하게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다니.


올해 초, 잘못된 선택을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그때, 문득 내가 갑자기 죽는다면 어떨까?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이 들었다. 번쩍 정신이 차려졌다. 코로나 19 백신이 만들어지지 않아 불안한 이때에도 면역력을 키워 대비하듯, 삶과 죽음에도 면역력이 있을까?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 하자. 톨스토이의 행복론까지 끌어들이지 않아도,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서..


108배 시즌1 37일 차 _ 2020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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