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38일] 내 귀에 심장

이명과 우울, 자살

“못 하나가 온 존재를 단단한 판자에 고정시킨다.”

- 버지니아 울프


6ebf25886164e057cba25b8a1ea46483.jpg 이명이 커지고 고요한 순간을 방해할 때면 반고흐의 자화상이 떠오를 때가 있다.


매미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슝슝 귀에서 소리가 들린다. 자려고 침대에 눕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려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소리, 이명. 내 귀에 심장이 달린 듯하다. 책을 읽다가 “못 하나가 온 존재를 단단한 판자에 고정시킨다”는 글을 여러 번 되뇌었다. 딱 이명의 순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귓속에서 나 혼자 듣는 소리에 나의 온 존재가 잠식되는 느낌.


하지만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문장이 마음에 안 든다. 원문이 어떤지 모르겠고, 아무리 영문 에세이는 운율이 중요하다 하나 좀 이상하다. “단단한 판자”라니... “판자에 단단히 고정시킨다”는 것이 문맥상 더 정확하지 않을까? 이것도 직업병이다.


이명이 시작된 지 2년 반, 이제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이 귀찮은 소리와 절대 친구가 되고 싶지 않다. 얼마 전, 이명으로 자살한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많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했는데... 혹시나 검색해보니 이명+자살에 정말 많은 뉴스와 포스팅이 떠서 놀랍다.


나는 교통사고 이후 이명이 생겼는데 혈류성 이명이라 한다.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생명활동에 당연히 소리도 발생한다. 평소 이 소리는 감각기관=귀가 감지를 해도 간뇌에서 걸러내 뇌에 전달되지 않으므로 소리로 의식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시스템이 붕괴되어 소리를 의식하기 시작하게 된다고 한다.


귀에서 삐~ 하는 기분 나쁜 금속성 소리부터 매미소리 혹은 풀벌레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귓속에 울린다. 그러다 보니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지고 특히 고요히 혼자 있는 순간이 이명으로 파괴된다. 심할 때는 어지럼증과 구토가 나고 불면증과 우울증이 함께 찾아온다.


나는 이명이 고요한 순간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 생각한다. 소리뿐 아니라 모든 감각에 예민해지고, 불면으로 밤을 지새우다 보면 우울감이 습관화되고 그러다 자살충동을 느낄 수도 있겠구나. 절대 친구 하지 말고 고쳐보려고 다시 병원에 다녀왔다. 코로나 19 사태로 병원에 가기 무서웠고, 좋은 의사 선생님이 그만두신 데다가 새로 진료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전화 통화가 잘 안 되었다. 결국 어플을 깔고 진료예약을 잡았다. 휴. 앞으로 열심히 다녀야지.


처음 108배를 하면 더 크게 귀가 울려서 108배 부작용인가 싶어 걱정했다. 정말 귀에 또 하나의 심장이 달린 듯 쿵쿵쿵 슝슝슝 했다. 의사 선생님이 혈류성 이명이라 혈액 순환이 잘 되어 그런 것이니 되도록 의식하지 말고 계속 108배를 하고 반신욕을 하면 좋겠다 했다. 이제 108배를 할 때 이명이 그리 심하게 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다.


108배 시즌1 38일 차 _ 2020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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