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39일] 몸은 정직하다

잠 못 자 죽은 귀신은 없다지만... 불면은 괴로워

“아침마다 자신한테 물어보세요. 너 행복해? 너 강해? 너 건강해?

아니면 호흡해, 망할 자식아!”

- 웜 호프


5시간을 자고 눈을 떴다면 충분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일어난 시간이 새벽 1시면 좀 당혹스럽다. 초저녁에 잠드는 일이 많아졌다. 부모님은 저녁을 6시쯤 먹는다. 좀더 있다 먹으려다 치즈어묵탕에 넘어가 함께 먹었더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참다가 결국 8시에 잠이 들어 새벽 1시에 일어났다.


- 아무 때나 졸리면 자요.

- 그럼 잘 자나요? 어쩌면 당신에게는 그 방법이 좋을지 모르겠어요.

- 코로나 19 덕분에 가능한 일이지만 외출하기 전날에는 부담이 되요.

- 꼭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시간에 대해 강박이 심해 잠을 잘 못 자니 당분간은 계속 아무 때나 졸릴 때 자 보세요.

- 거의 외출하지 않으니 괜찮은데, 미팅이 잡히거나 외출할 일이 있으면 아예 못 자기도 하는데요.

- 강박이 심해서 그런 것 같은데 마음을 편히 갖고 졸리면 그냥 자요.


얼마 전 의사와 나눈 대화다.


오늘은 아버지 정기검진이 있다. 81세의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하고 병원은 멀어서 내가 모시고 다녀와야 한다. 검진 시간은 오전 11시다. 새벽 1시에 눈을 떴을 때, 아버지의 검진이 떠올랐다. 좀더 자야 하는데, 생각하다가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일어났다. 바로 108배를 하려다가 땀이 나면 샤워를 해야 하는데 혼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새벽 2시에 샤워를 할 수 없어 그만두었다. 대신 책을 읽었다.


<오만과 편견>, 몇 번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소설이다. BBC조사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인기가 많다는 제인 오스틴. 그러나 나는 그녀의 소설을 몇 번이나 읽으려다 포기했다. 결혼과 재산 상속에 온 신경을 쏟는 이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젯밤에 기사를 하나 읽지 않았다면 아마 이번에도 읽다가 포기했을 것이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99&fbclid=IwAR2PxISlxoOEPs9jsNyu4mZO-EdM_JtI8TGpN1Zx3IR0Cg709UqHGStDk1c


주제파악이 맥락이나 개인적 글읽기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원순’을 빼고 ‘사건’을 보는 것, 젊은 세대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젊은 세대가 가벼운 게 아니라 주제를 명확히 아는 건 맥락(역사)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모순된 가치와 감정이 오가던 사건에서 주제가 파악이 됐다.


마찬가지로 혹은 그 반대로, <오만과 편견>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글이 쓰여진 1796년이면 조선 정조 때다. 근대화되는 시기였다고 하나 영국도 봉건제 사회였다. 여자에게 어떤 직업도 허용되지 않으니 여자가 할 수 있는 인생의 가장 좋은 선택은 잘 생긴 부자 남자를 골라 결혼하는 일이다. 일종의 취집이 답인 시대였다. 제인 오스틴은 실제로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부잣집에 양자로 간 셋째 오빠, 에드워드가 그녀에게 집을 마련해주어 평생 글을 쓰며 살았다. 익명으로 발표한 작품들은 오빠 헨리가 세상에 알려주었다. 글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으로 세상을 살기 위해 상속, 가족의 재산이 든든한 보장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그녀도 취집을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나니 <오만과 편견>의 인물묘사와 감정의 변화가 읽히기 시작했다.


인간은 정직하다.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의 범위에 있어서도 몸의 상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릴라와 인간의 유전자 차이는 2% 미만이라니 인간들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미미할까? 하지만 개별적 인간은 자신에 대한 오만 혹은 자긍심으로 살아간다.


몸은 정직하다. 충분히 자고 먹는 것만으로도 몸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살아간다. 그것이 조금만 부족해도 사는 게 힘들고 불만족스럽다. 제주도에서는 매일 돌아다닌 만큼 밤마다 숙면을 했는데, 낮잠도 잤다. 첫날 곽지해수욕장에서 낮잠을 30분 정도 자고 일어난 이후 거의 매일 낮잠을 잤다. 딱 하루, 캠핑을 하던 날 낮잠을 못 잤는데 그 날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결국 캠핑을 집어치우고 새벽 3시에 호텔로 피신했다.


잠에 대해 너무 유난을 떠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비인후과 의사의 추천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으면서도 때때로 이게 뭐하는 시추에이션인지, 이런 상담이 의미가 있는지, 내가 왜 이 상담을 계속 받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병을 병으로 인식하고, 내가 고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나만 생각하며 계속 상담을 받는다.


오늘은 아직 108배를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난 다음 108배를 하고 찬물 샤워를 할 생각이다. 넷플릭스에서 ‘웜 호프 호흡법’을 보고서도 찬물샤워는 엄두를 못 냈는데 심호흡을 하면서 폭포수를 맞은 이후 가끔 찬물로 샤워를 한다. 호흡을 하면 찬물도 견딜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새벽 1시든 새벽 6시든 하루를 시작하기에 좋은 시간이란 따로 없다. 졸리면 낮잠을 자야겠다.


"물떨어지" 정직한 이름의 폭포가 내 생애 처음 맞아본 폭포다! (물 맞는 모습이 제대로 보이는 사진이 이것 한 장이라 아쉽다.)


몸은 정직해서 아프면 아프다 신호를 보내고 졸리면 잠을 잔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며 사는 것, 가장 인간적이면서 가장 동물적인 본능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오늘을 시작하자!


*모닝루틴을 완전히 뒤집어 책읽고

브런치 쓰고 108배 했다.

찬물 샤워로 머리도 맑으니 이제 모닝페이지 쓸 차례. 마음 가는 대로, 아니 몸이 이끄는 대로 산다.


108배 시즌1 39일 차 _ 2020년 3월 3일

https://brunch.co.kr/@bluetwilight/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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