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인생, 오늘을 살자!
“글쓰기는 부지런한 사랑이다.”
- 이슬아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인생의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나의 답은 항상 “never”였다. 답답했던 10대 혼란의 도가니 20대 앞이 보이지 않았던 30대... 그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서 다시 치열하게 살아 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유령청소부 김완 씨의 기사를 정독하고 대청소를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366/0000534483
”자기 삶을 컨트롤하지 못한 처벌로 스스로를 ‘쓰레기’로 단죄하고 폐기하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뜨끔하고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외부의 폭력에 항거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다 끝내 자신이 식물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주인공. 그녀는 전갈자리 같았다. 평소 얼음장처럼 차갑게 평온을 가장하지만 용암 같은 뜨거운 것이 내재하고 있다. 제때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면 전갈의 독은 자기 자신을 향해 터진다.
충동적으로 시작한 청소는 4일째 진행 중이다. 묵은 자료와 문서만 한 박스 넘게 버리고 서랍을 온통 뒤집어 정리했다. 옷방 정리는 아직 중이지만 옷장 하나를 없애버릴 예정이다.
“집은 마음의 상태예요. 집을 비우면 마음도 가벼워지고 긍정 정서가 차오릅니다.”
유령청소부 김완
정말로 방청소를 하고 반신욕을 하고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그런데 청소를 하다 말고 다시 수납함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맥시멀리스트 박나래도 아닌데 뭘 그리 자꾸 사들이는가 말이다.
청소의 속도를 늦췄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지, 그것들은 내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생각하고 있다. 정리하다 놀란 것 중 하나는 연필과 문구류다. 워낙 좋아하기는 하지만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연필과 색연필, 포스트잇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버리지 못하고 잘 정리했다. 옛날 휴대폰 번호를 붙여 놓은 것도 몇 개 있다. 20년 전 막내작가 시절 피디들이 하도 내 펜을 가져가 돌려주지 않아 나름 고심했던 흔적이다. 역시나 그들은 내 펜을 돌려주지 않았으나 1-2주에 한 번씩 책상을 돌며 내 펜을 수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아끼던 펜들을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다. 모닝페이지는 만년필로 쓰고, 원고는 컴퓨터로 쓴다. 책 읽을 때 밑줄 긋는 용도의 색연필은 그렇다 치고, 연필로 무언가를 해야겠다. 몸을 내어준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말이다. 책은 아예 정리를 하지 않았는데, 역시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게 열심히 읽어야겠다.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고 그러다 이제 다시 108배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에 시작해 5월까지 108일을 마치고 바로 시즌 2를 시작해 7월까지 열심히 108배를 했었다. 그러다 8월, 잔인한 2020년 8월에는 거의 절을 하지 않았다. 너무 더웠고, 전염병이 무서워 밖에 나가지 못해 답답했고, 우울했고, 무엇보다 잠을 잘 자지 못해 힘들었다. 108배를 하지는 것조차, 쉬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쉬었다. 쉬면서도 다시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하루 이틀 미루고 미루다 20일이 지났다.
제주도에 일주일 휴가를 다녀와 2킬로그램이 쪘다가 음식 조절로 원상복귀했으나 뱃살은 빠지지 않아 옷이 잘 맞지 않는다. 그러니 다시 108배를 시작할 수밖에. 역시 몸무게보다 사이즈가 중요하고, 눈보다 옷은 정확하다.
시간을 되돌려 젊은 날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도, 그러고 싶지 않아도 다시 시작할 수는 있으니까. 오늘 하고 내일 하고 매일 쳇바퀴 돌 듯 사는 것이 지겨워도 삶이란 원래 반복이니까. 그래서 돌아왔다. 이슬아의 말처럼 글쓰기는 매우 부지런한 사랑이다. 108배를 하고 글을 쓰고 거기 어울리는 사진을 고르고 브런치에 올리는 것,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한다. 아무리 부지런해도 사랑하지 않으면 못한다.
다시 108배를 하고 반신욕을 하니 몸이 되살아난다. 방 대청소만큼 뿌듯하고 개운하다. 깨끗하다는 건 “거리낌이 없는 상태. 임무를 완수하고 더 할 일이 없다고 느껴지는 상태”라고 (유령청소부 김완) 했으나 그것은 청소를 업으로 하는 이의 생각이고, 내게 청소는 새로운 임무를 시작할 준비가 된 상태다. 렛츠 고, 투데이!
108배 시즌1 40일 차 _ 2020년 3월 4일
https://brunch.co.kr/@bluetwilight/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