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하게 살기
“나는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살고자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서문 중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대청소도 하고 다시 108배도 시작했는데 뒷담화가 들려온다. 난 원래 뒷담화는 취급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니 모두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기로 했다. 한때는 누군가 나를 욕하고 미워하면 그게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 생각한다. 내 앞에서 욕을 한다면 받아주고 변명하겠지만 뒤에서 욕하고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요구를 해대는 이를 상대하는 에너지가 아깝다.
하지만 어제는 자꾸만 왜 그런 일들에 내가 관여하게 되는가 반성하고 자책하며 하루 종일 마음이 어지러웠다. 마음이 무거운데 산책도 하지 못해 우울했는데 엄마가 마트에 가자길래 따라나섰다. 장을 보고 나니 현실이 보였다. 통장 잔고가 비어 간다. 요즘 엄마와 장을 보는 마트에서는 뱅킹으로 현금 이체를 하다 보니 잔고가 바로 보인다. 엄마가 좋아하는 문어도 사고 내가 좋아하는 조개관자도 샀다. 관자를 손질해 반으로 가르고, 아스파라거스와 토마토, 가지를 썰고 양념은 소금, 후추, 바질, 다진 마늘로 간단하게 한 다음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려 오븐에 구웠다. 오븐 사용이 아직 익숙지 않아 관자가 좀 질겨졌다. 다음에는 채소부터 구운 다음 뒤집고 관자를 더해 잠깐만 구워야겠다. 예쁜 그릇에 담아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는 기분이 좋아져 일찍 잠들었다.
오늘 아침 일어나 10분만 더 자려고 알람을 맞추려는데 전화가 왔다. 전에 냈던 기획안이 경쟁피티에 통과되었다고 촬영구성안을 보내달라는 피디의 전화였다. 기분이 좋다. 경쟁피티에 낼 기획안에 40분짜리 다큐 완고를 써내며 내가 미쳤지 싶었는데, 그렇게라도 애써서 잘 됐으면 했었다. 요즘 방송도 홍보도 일이 별로 없다. 모두들 힘들다 하지만 어떻게든 애를 쓰면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를 미워하는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내가 마음을 쓰고, 괴로워하는 것일 테니,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말자. 자기애가 넘쳐서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뽀송뽀송한 마음으로 108배를 하고 샤워를 했다. 오늘은 친구가 선물해준 공정무역 아로마 향초를 켰다. 이름이 “맑음”이란다.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좋아해 주는 사람이 더 많다. 역병이 세상을 뒤집고 있는 요즘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이 더 잘 보인다. 좋은 사람의 집으로 초대받는 일도 많다. 그들만 만나고 그들 안에 사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 나를 미워해 뒷담화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지 뭐. 그가 아무리 그러고 다녀도 나를 제대로 아는 이는 나를 미워하지 않을 테니까.
모든 사람이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외치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삐딱하게 내 생긴 대로 살자.
108배 시즌1 41일 차 _ 2020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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