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48일] 부끄럽게 죽고 싶지 않아!

뒷모습에 책임져야 할 나이

매일의 루틴을 만들자 생각한 것은 프리랜서 21년 차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무엇이 가장 아쉬울까, 108배를 시작한 때부터 때때로 생각한다. 가장 아쉬운 것 한 가지만 먼저 생각하면 나머지는 욕심 같아서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또 욕심은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고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러면 또 버린다.


마치 옷장 한 가득 채워져 있는 옷과 같다. 매일 입을 옷이 없어 걱정이고, 정리해서 버리면 또 사서 채운다. 이번엔 아예 옷장을 하나 없앴다. 역시나 또 사들인 옷은 침대 밑 공간에 겨울옷을 넣어 정리하고 비운 칸에 안착했다.


봄이 되면 씨 뿌리고 여름에 열심히 일하고 가을에 거두어들인 다음 겨울은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처럼, 하루, 일 년, 평생이 모두 생로병사의 순환이다. 고민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100권의 책, 10벌의 옷으로 사는 건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자체가 욕심이다. 이번에 방을 정리하면서 그 욕심을 버렸다. 대신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잘 쓰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집콕의 시대, 레깅스와 원피스만 입고 살았다. 요즘은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마트에 장 보러 갈 때도 예쁜 옷을 꺼내 입는다. 사람들이 못 알아보기도 하고, 뭔일인가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래도 대체로 예뻐졌다는 반응이다.


40대 이후 사람들 뒷모습을 본다. 나의 뒷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하루는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아주머니가 한참을 쳐다보더니, “그 옷 손으로 뜬 건가요?” 묻는다. 산 지 10년은 되었으나 제대로 입지 못하던 카디건이다. 예쁘지만 실용적이지 않아 입었다 벗었다만 했었다. 차마 버리지도 못했다. 옷의 실용성만 생각한다면 10벌도 넘친다. 그러나 역시 옷은 예쁜 옷이 좋다.


옷에 몸을 맞춰보기 위해 시작한 본격 다이어트가 3주 됐다. 음식 조절이 어렵지는 않다. 매번 요리를 해 먹어야 하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뿐. 백수에 가까운 지금은 가능하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면 불가능한 다이어트다.


친구가 한동안 연락이 없더니 맨날 일이 많아 힘들다, 죽겠다 소리만 하는 것 같다고, 그러지 않을 때까지 전화를 안 하고 싶었단다. 생각해보니 나는 맨날 아프다, 병원 다녀왔다. 의사가 어떻고 약이 어떻다 이야기만 했다.


그럼 우리는 할 이야기가 없을까? 살아가는데 일과 병 말고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은가? 친구와 만나 1박 2일, 18시간을 놀았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때로 조용히 음악만 듣기도 했다. 그대로 참 좋았다. 친구도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낀단다.


일의 쏠림 현상이 더 심해져 바쁜 사람은 더 바쁘고 일이 없는 사람은 일하고자 해도 일을 못한다. 일찍이 버트런드 러셀의 주장처럼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이 4시간 정도만 일해도 충분한데 일부에게 18시간 중노동을 시키고 나머지를 실업자로 만든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관심사가 경제적 문제(일)와 건강, 가족으로 집중되었다고 한다. 너무 인간적이지 않아 슬프다. 어쨌든 살아남으려는 동물적 본능만 남는 것 같다.


디스크에 이명, 불면, 두통과 어지럼증까지 온몸이 아플수록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지만, 만약 지금 죽더라도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어제보다 오늘 더 우아하고 아름답기 위해서 108배도 하고 마음 챙김 명상도 하고 건강한 음식으로 속을 채우고, 옷장에 걸려 있는 예쁜 옷도 꺼내 입어야지. 죽기 전에 할 일이 많다.


108배 시즌1 48일 차 _ 2020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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