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68일] 존버의 힘

월천 작가의 꿈

IMG_5410_2.jpg
2020_1110_2 010_2.jpg
오래된 나무를 좋아한다. 양주 황방리 느티나무는 850살로 추정된다. 왼쪽은 2017년 10월 오른쪽은 2020년 11월. 나무는 늘 그자리에 있으니 또 만나러 가야지

글을 쓰는 힘은 단연코 엉덩이에 있다. 아무리 현장에 답이 있다 해도 그것을 글로 풀어쓰는 것은 방구석에 처박혀 컴퓨터의 흰 화면을 마주하고 홀로 고독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 얼마나 오래 앉아 화면을 째려보고 머릿속에서 무르익느냐에 따라 글이 나온다. ‘키보드 워리어’처럼 전투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그다음으로는 역시 마감과 입금이다. 마감이 다가오면 울트라 슈퍼 파워가 나와서 아이디어가 샘솟지 않더라도 어쨌든 글을 써서 넘겨야 한다. 입금이 되면 힘이 넘친다. 지난주 월요일에는 경기도 광주를 다녀오고, 화요일 경기도 양주-충청도 천안-경기도 화성을 찍고 와 바로 다음날 아침 KTX와 고속버스와 택시로 전라도 광주-대천을 다녀온 게 다 입금의 힘이었다. 이제 정말 마감이 코앞이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싫어 계속 딴짓이다.


어제도 거의 새벽 5시가 넘어 잠들었는데 오전에 마감을 쪼는 연락이 와서 중간에 깼다. 다시 잠들어서는 그녀를 비롯하여 예전에 함께 일했던 실장님, 감독님, 대표님 등등이 몰려나와서 내게 원고 독촉을 해댔다. 일정이 촉박한 것은 나도 알고 있고 그래서 주말도 반납하고 날밤도 샜다. 그래도 아직 원고가 나오지 않은 것은 콘셉트가 무르익지 않아서다. 나의 잠을 깨우고 카톡질을 해대는 그녀. 그 회사와 6년째 일하고 있지만 처음 나의 담당이 된 사람이다. 괜히 부아가 나서는 “오전에 연락하면 안 된다”는 건 전달받지 못했냐 따지며, 일과 시간에 준다 했으니 6시 안에 넘기겠다 했다. 밤새는 날이 많고 아침잠이 많아서 그 회사건 다른 데건 초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내게 오전에 연락하는 이들이 없다. 요즘은 밤을 새우지 않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작업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108배를 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한참 불멍을 하다가 겨우 자리에 앉았다. 그래 이제는 정말 써야 할 시간이다. 나의 엉덩이를 믿자!


“월천 작가”가 되자 꿈에 부풀었던 때가 있다. 2000년도에 KBS 서강 방송아카데미를 다니며 방송작가를 준비할 무렵이었다. 그때 방송가에서는 프로그램 3-4개 하고 재방료까지 나오면 월에 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 나의 첫 프로그램은 KBS의 <강력추천 고교 챔프>였는데 당시 그 방에 매일 들락거리며 회의만 하던 김 모 작가님이 있었다. 김 모 작가님은 플로피 디스켓을 들고 와 내게 프린트를 부탁하곤 했는데, 그마저 아내분이 쳐준 것이라 했다. 그 작가님은 완벽한 컴맹이었다. 그런데 그 작가님이 말로만 듣던 월천 작가라 했다. 아이디어가 좋아서 KBS 신관 5-6층을 돌며 회의만 한다 했다. 김 모 작가님은 그 후에 함께 일하기도 했고, 내게 일을 주선해주기도 했다가, 최근 페이스북에서 다시 만났다. 부여에 살면서 줌 미팅으로 일을 한다 해 내게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기고 있다. (김 모 작가님은 그 당시에 글은 손으로 쓰고 워드만 맡기셨다고, 그리고 월 천이 아니라 월 2천을 버셨다고 연락이 오셨습니다. ^^)


이번 달, 월천 작가의 꿈을 이루는 중이다. 78% 입금되었다. 한 달의 반이 지났고, 이 달에 입금되기로 한 작가료가 한두 개 남아있으니 아마도 이달에는 아니면 다음 달에는 이룰 것이다. (프리랜서에게 입금되지 않은 돈은 돈이 아니다!) 덕분에 지난 3년 교통사고로 까먹고 진 빚을 청산할 수 있을 것 같다. 글로 밥 벌어먹기 살기 시작한 지 21년 만이다. 내가 제일 열심히 벌었던 30대 초반에도 월 입금 기준으로는 90% 이상을 채운 적이 없던 것 같다. 21년 존버의 힘이다.


20년 동안 물가가 얼마나 올랐을 것인가?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은 12,178.70달러이고, 2019년 32,114.90달러라 하니 약 2.63배다.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에 산에 갔었다. 10월부터 일을 하겠다고 산에 못 간다 했더니 화산회 선생님들이 월에 2천은 벌어 와라 하셨다. 놀지도 못할 거면 많이 벌라는 말씀이셨는데.... 선생님들은 이걸 계산해서 하신 말씀일까?


이제 월천 작가의 꿈을 이루려 하는 이때, 나는 그 꿈을 포기하기로 한다. 어차피 버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따라잡기는 힘들어 언제나 제로섬 게임이다. 게다가 글이 돈이 되는 것은 아주 힘들다. 매일 마감을 걱정하고 거의 매일 미팅과 답사로 외출을 한다. 그러면 글은 언제 쓰는가? 어쩔 수 없이 밤을 새우고 잠을 줄인다. 운전하면서도 계속 생각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현장에 가도 100% 집중할 수가 없다.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려 침대에 누워도 잠을 못 자고, 피곤이 쌓인다. 마치 온몸을 누가 몽둥이로 자근자근 때리고 밟기라도 한 것처럼 아프다. 어쨌든 마감 시간이 코앞이다. 이제 진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집중해서 글을 쓰자!


*나이 50이 넘으면 마감에 쫄리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며 살 수 있을까?

앞으로 3년 남았다.


108배 시즌1 68일 차 _ 2020년 4월 1일

https://brunch.co.kr/@bluetwilight/11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8배 67일] 일은 놀이처럼 놀이는 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