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67일] 일은 놀이처럼 놀이는 일처럼

독하다 토요일, 편성준의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마감이 급할수록 책이 읽고 싶은 법인데, 한동안은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스케줄을 돌리고 있다. 오늘 하루만, 이번 한주만 버티자. 생각하고 산 지 1달 반. 책을 사놓고 읽지 못해 쌓아놓고 있다.


며칠 전 한의원에 가서 추나를 받으며 의사에게 말했다. “나 좀 살려줘” 의사가 나의 어깨와 허리와 다리와 팔 목 등을 순서대로 꺾고 지근지근 주물렀다. 아파서 곡소리가 났지만 그러고 나니 겨우 숨이 쉬어졌다. 침과 부항, 물리치료까지 한 시간 만에 치료가 끝났다. 다시 성모병원으로 달려가 불면증 상담과 약 처방을 받고 피부과에 가서 피지 낭종 치료까지 받으니 병원 순례에 4시간 반이 걸렸다.


독하다 토요일, 한 달에 한 번 모여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고 이야기한다. 모임이 아니었다면 안 읽었을 소설들이 내 삶의 여유를 찾아준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까 미팅을 두 개 더하고서야 하루 일정이 끝났다. 어제는 둘째 주 토요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는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2시에 모여 묵독하고 3시부터 이야기를 나누는데 전날도 새벽 3시에 들어온 터라 몸은 으스러질 듯 아프고, 책은 전혀 읽지 못했다. 그래도 갔다. 2시 반에 도착. 책도 못 읽었는데 늦기까지 했다며 미안해요, 하고 들어서는데 사람들이 반긴다. 전체 11명 중 5명이 모였다. 모임 출석률이 저조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요즘 책 읽을 시간이 전혀 안 나는데 그래서 이 모임이 더 소중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독하다 토요일이 아니면 책을, 한국 작가의 소설을 전혀 읽지 않고 살 것이다. 소설을 읽는 게 뭐 중요하냐 하겠지만 소설을 읽는 삶과 읽지 않는 삶은 전혀 다르지 않을까?


최진영의 아포칼립스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러스의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 요즘,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누구나 생각하고 살기에 책의 내용은 심히 공감이 되었다. 그러나 초반 프롤로그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람들이 살기 위해 간을 파먹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을 치고....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러시아인가? 러시아어를 읽지 못하고 추위를 피하고 하는 극단적 장치를 위해 러시아를 택했다면 그 러시아로 떠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도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른 이들은 그런 “왜”가 필요 없는 소설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에는 그런 작가의 편의적 선택이 아쉬웠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중에 초반만 잠깐 읽었으니 다시 읽어야겠다.


어쨌든 언제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다 보면 책이 좋아진다, 는 이야기로 결론이 맺어진다. 그 모임이 유쾌하고 즐겁다.


모임을 주관하는 편성준 씨의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사인을 받았다.


독하다 토요일 모임을 주관하는 편성준 씨가 책을 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책 출간 열흘 만에 2쇄를 찍는다고 했다. 축하할 일이다. 월요일에 출간기념회를 한다는데 참석이 불분명해서 책을 내밀고 저자 사인을 받았다. “즐겁고 널널하게 읽어주세요!” 특유의 공처가 캘리로 이렇게 적어준다. 머리가 띵하다!


어제 잠들기 전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평소 브런치에서 봤던 글들, 독하다 토요일 모임을 통해 보아 왔던 부부의 이야기가 술술 잘 읽히며 넘어간다. “널널하게”에 방점이 꽂혀 읽다가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반신욕을 하며 책을 이어 읽었다. 익숙한 이야기도 활자로, 책으로 묶여 나온 이야기의 힘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놀게 되면서, 성북동의 한옥집을 수리해 이사하면서, 갑자기 닥친 코로나 팬데믹까지.... 그러나 그중에도 정말 하고 싶은 일,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중한 일상과 그 안의 소소한 즐거움. 자칭 공처가 남편의 깨알 같은 글이 가볍게 마음을 터치한다. 그 여운은 길어서 한동안 아껴 읽어야겠다. 즐겁고 널널하게!


오늘은 덕수궁과 효창공원 답사를 갔다가 방송 제작회의를 하고 제안서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번 주는 방송 준비와 제안서 마무리와 홍보영상 대본과 브로셔, 리플릿 원고까지 최고로 숨 가쁜 한 주가 될 것이다. 이번 주만 살자! 이번 주만 버티면 된다! 하던 생각에서 그래도 108배와 반신욕, 커피를 마시며 멍 때리는 아침 루틴만은 지키자는 것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3년 전 이맘때, 교통사고로 삶에 강제 브레이크가 걸렸었다. 10월부터 12월까지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살았다. 병원 입원 기간만 41일. 이후로도 3월까지 거의 누워서 지냈다. 강제 브레이크가 걸리기 전에 내 삶의 브레이크를 내가 선택해 걸 수 있도록 쉬엄쉬엄 가자.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노는 게 나의 일상이지만 워라밸 또한 중요하다. 아무리 바빠도 나의 소중한 일상은 지키자.


108배 시즌1 67일 차 _ 2020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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