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75일] 아브라카다브라, 마음으로 빌다

홍석천의 운수 좋은 날

“일단 빌어, 그리고 네가 이루면 돼”

-tvn 드라마 <스타트업> 16화


매일 내가 드리는 기도는 같다. 행복할 때 행복함을 알고 만족할 수 있고 건강할 때 건강함에 감사하며 지키게 해 달라는 것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첫 날, 비가 많이 왔고 산길은 험했다.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가는 길 Camino da Santiago은 프랑스 생 장 피드 포르 St. Jean Pied de Port에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까지 800km를 걷는 가톨릭 순례길이다. 산티아고는 야고보의 스페인 이름이다.


첫 해외여행을 겁도 없이 혼자, 그것도 48박 49일을 가기 위해 엄마에게 내민 협상카드는 성지순례를 다녀오면 냉담을 풀고 주일미사에 참례하겠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엄마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지 그럴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첫날 길을 떠나면서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장대비로 바뀌고 같이 걷던 친구와도 금세 헤어지고 혼자 걷는 게 무서웠다. 그냥 걷는다고만 생각했지 산을 생각 못했는데, 첫날 피레네 Les Pyrénée를 넘는다. 해발 200미터에서 시작해 약 1,200미터 높이를 하루에 오르내려야 하는 것이다. 무리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나는 피레네를 이틀에 넘기로 했고 중간에 오리손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그래도 장대비가 내리는 길을 처음 신는 등산화와 역시 처음 입어본 우비를 입고 걷다 보니 정말 숨이 턱까지 차올라 힘들었다. 생장에서 오리손까지는 7-8킬로미터 정도니 산길이라 해도 2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길이다. 쉬엄쉬엄 걸었고 중간에 카페가 있어서 커피도 한 잔 하고 그러다 오르막에 이르러서는 계속 혼자 걸었다. 힘이 드니 정말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끝나고 모퉁이를 돌아서니 바로 오리손이었다. 사진을 보니 아침 8시 반에 출발해 오리손에 도착한 것이 10시 50분. 2시간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나는 그날 정말 너무 힘들었던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그 이후 거의 매일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 행복하게 건강하게 해 주소서에서 그치던 기도를 행복할 때 행복함을 알고 만족하게 하소서, 건강할 때 건강함에 감사하고 지키게 해 주소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저와 제 가족과 제가 아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게 하소서.

행복하게 하소서.

건강할 때 건강함에 감사하고 지키게 하시고

행복할 때 행복함을 알고 만족하게 하소서.”

- 나의 기도


요즘 유튜브 예능 <홍석천의 운수 좋은 날>을 만들고 있다. 웃음과 영검이 공존하는 이색 토크쇼로 50분 방송이다. 진행을 맡은 MC는 세 명인데 홍석천과 함께 두 명의 여자 만신萬神, 무당이다. 인생 술집이 술 한 잔 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듯, 우리 프로그램은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가는 무당 앞에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는 것이다. 1부에는 스타 게스트, 2부에는 무당 게스트가 나온다.


사실 나는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일은 일일 뿐이고, 무당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뭐 어때? 생각했다. 무당에 대한 편견이 아니라 아예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서브 작가가 가톨릭인데 무당 프로그램을 해도 될지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웃으며 나도 가톨릭이야 해놓고 집에 와서 엄마에게 물어봤다. 우리 엄마는 성당 사목 위원이고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 단장님이다. 다행히 엄마도 그냥 일은 일일 뿐이지 않냐 하셨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걱정이 되는지 요즘 가끔 미사 헌금과 감사 헌금을 내놓으라 하시며 날 위한 생미사를 드린다.


내가 108배 절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종교가 불교냐고 묻는다. 나는 가톨릭 신자로 세례를 받았다. 그래도 아침이면 108배 절운동을 하고 무당 예능 프로그램을 만든다. 종교는 종교고 운동은 운동이고 일은 일이다. 나는 그게 모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며칠 전 오프닝 대본을 이렇게 썼다.


홍석천 : 요즘 아침마다 운수 좋은 날을 아브라카다브라 주문처럼 외우니까 정말 운수 좋은 날이 되는 것 같다.

인월당 : 입이 보살이라는 말이 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남치마 : 사실 무당이 하는 일이 맨날 비는 거다.

홍석천 : 운수 좋은 날 프로그램 진행자지만 기독교다. 어머니가 매일 새벽기도 나가서 아들 잘 돼라 기도한 덕분에 내가 잘 된다 생각한다.

- <홍석천의 운수 좋은 날>, 3회(12월 21일 방송 예정) 방송 오프닝


종교나 행위의 형태가 달라도 모두 마음으로 빌고 바라는 것은 같다는 생각을 그대로 쓴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가 준 부활초를 켜놓고 기도했고, 108배 절을 했다. 무당 유튜브 예능 방송 <홍석천의 운수 좋은 날>의 작가로 섭외하고 대본을 쓸 것이다. 오늘 밤 11시에는 두 번째 방송이 나간다.


열심히 일하고 잘 놀고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 그 마음으로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여주인공 달미(배수지)가 성당에서 기도하고 나와 무지개를 보고 또 빌라고 하니 남도산(남주혁)이 빛의 굴절 현상인 무지개가 무슨 소원을 이루어주냐고 한다. 그러자 달미가 말한다. “일단 빌어, 그리고 네가 이루면 돼” 내 마음이 그렇다.


108배 시즌1 75일 차 _ 2020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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