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82일] 라떼는 말이야

일은 함께 하는 거야

같이의 가치

- 2009년 농협 광고 카피


어제는 새해 새날이라고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108배도 하고 책도 읽고 모닝페이지도 썼다. 동생네가 왔지만 편집회의가 있어서 원당 사무실에 다녀오니 밤 12시였다. 배가 고파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부랴부랴 야식을 먹고 잤는데 눈뜨니 오후 1시였다. 작심삼일도 아니고 하루 만에 이렇게 게을러지다니. 밥을 먹고 빈둥댔다. 예정된 일이 예정대로 되지 않으니 당장 해야 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며칠 전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혼자 다 컨트롤하려고 하지 말아요. 너무 애쓰는 것 보기 안쓰러워요.’


일이 많아지면서 개인적으로 서브작가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19 바이러스 팬데믹의 영향은 나도 피할 수 없었다. 예정되었던 방송 녹화가 연기되었고, 일이 순조롭지 못해 계속해서 서브작가를 쓸 수 없게 되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프리랜서의 일은 언제나 그렇게 예정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후배를 불러 이야기를 했다. 원래 두 달만 함께 해보자 시작하기는 했었다. 후배는 방송일이 처음이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 같이 일하기로 한 것이었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 속 터지는 순간도 많았다.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환경과 너무 달라서 힘들었다고 한다.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굳이 ‘라떼는 말이야’ 하지 않았는데, 그러기를 잘했다. 어차피 잠시 같이 일하는 것이었고 예정대로 일이 풀렸다고 해도 그녀에게 방송일은 잠깐의 아르바이트였을 뿐 자신의 본업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성격이 워낙 혼자 일하는 것에 익숙하기도 해서 한두 번 말하다 귀찮으면 그냥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함께 일하며 내가 많이 배웠다.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다 해도, 혼자 다 할 수는 없다. 방송도 홍보나 이벤트도 책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니까. 아무리 혼자 원맨쇼로 일을 한다고 해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혼자 끝낼 수 없다.


전화를 몇 통 돌리고 나니 정신이 차려졌다. 그래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오늘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자. 마음을 고쳐먹으니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108배였다. 108배 절을 하려고 보니 갑자기 어제 늦게 들어오면서 아무렇게나 이중 주차해 두었던 차가 생각났다. 주차장에 가보니 다행히 내가 막아놓은 차가 나가지 않았는지 차가 그대로 있다. 새해가 밝았고 주말이라 해도 사람들이 정말 집콕 중이구나 싶다. 한 바퀴 돌아 겨우 주차를 해 놓고 와서 108배를 했다.


절을 하면서 생각했다. 함께 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해. 방송 자막도 뽑아야 하고 홍보 기사도 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화도 몇 통 더 돌려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 내일 해도 되는 일이라 그냥 오늘은 놀자! 모닝페이지를 쓰려고 보니 어제 사무실에 필통을 두고 왔다.


잉크를 찍어 쓰는 딥펜 아날로그 감성 물씬


서랍 속 가득한 필기구를 둘러보다 문득 딥펜을 집어 들었다. 딥펜은 나무에 펜촉을 끼워서 잉크를 찍어 써야 하는 펜이다. 아마도 이 펜은 2008년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사 왔던 것일 텐데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한두 줄을 쓸 때마다 잉크를 찍어 쓰는 것이 귀찮으면서도 재미있다. 금세 나무와 손이 엉망이 되었는데도 아날로그의 감성이 살아나 재미있다.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넷플릭스와 모바일 BTV로 사극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있는데, 먹을 갈아 붓으로 글을 쓰던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글도 글씨도 함부로 쓸 수 없었으리라. 엄마한테 처음 이 펜을 보여줬을 때, 엄마는 초등학교 다닐 때 이런 딥펜을 썼다고 한다. 그때 검은 잉크에 보라색을 살짝 섞어서 쓰면 글씨가 참 예뻤다고. 70이 넘은 어머니의 정통 “라떼는 말이야”였다. 이런 "라떼는 말이야" 말고 꼰대 같은 "라떼는 말이야"는 하지 말아야지.


오늘도 이렇게 108배를 하고 모닝페이지를 쓰며 하루를 게으르지만 만족하게 보낸다. 문득 어제의 새해 새 계획 따위 다 집어치우고, 2020년과 마찬가지로 2021년도 그것이면 족하다 생각하며 살아야지 싶다!


일은 어차피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함께 하는 것이고, 내가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된다. 내가 하는 프리랜서 작가는 “따로 또 같이” 일하며 “같이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에만 마음을 다하자. 그것에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자.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자!


108배 시즌1 82일 차 _ 2020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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