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만큼 어려운 유지, 홈트도 일도
“아무리 그렇게 실망해 봐라. 내가 나한테 실망하나”
- <창작자들>, 곽경택
곽경택 감독이 처음 두 편의 영화를 말아먹고 세 번째 시나리오를 들고 다닐 때, 하루는 선배가 소주를 사준다고 불러서 그랬단다. 이런 짓 하지 말라고. 두 편 망한 감독이 이러는 거 아니라고.
며칠 심란했다. 방송은 조기 종영이 될 듯하고, 예정됐던 일들이 하나둘 취소, 연기됐다. 문득 겨울 바다가 보고 싶었다. 친구 5명에게 문자를 보냈으나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안 된다 했다. 혼자라도 떠나볼까? 얼마 전부터 눈에 아른거리던 얼어붙은 바다와 바다가 보이는 스파! 마침 한 친구가 오늘 말고 내일 떠나자 연락이 왔다. 오~ 내가 운전을 안 해도 되는 친구다.
새벽어둠을 뚫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느긋하게 달리다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을까, 하다가 운전하는 이를 고려하여 계속 천천히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운전을 하면 주변 풍경을 볼 수가 없다. 여행을 떠나면서 운전을 안 한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시원하고 달콤한 바람, 겨울바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골반이 틀어졌나 봐, 친구는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게 느껴진다 했다. 요즘 골프에 빠져서가 아닐까,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참았다. 좋아서 하는 운동인데 뭘.
도착하니 해가 뜬 지 20분쯤 지났나 보다. 아직 매직 아워다. 에메랄드빛의 바다에 아침 햇살이 황금빛으로 일렁인다! 아, 겨울 바다다.
며칠 전 친구의 페이스북에서 얼어붙은 서해 바다를 보고 마음이 동했던 건데, 우리 집에서는 서해보다 동해가 더 가깝다. 고속도로 덕분에 2시간이면 양양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오는 길에는 바다가 더 보고 싶어서 좀 더 길게 여행하고 싶어서 국도로 돌아 돌아 왔다. 1박 2일, 36시간 동안 양양에서 고성까지 동해바다를 실컷 보고 돌아왔다. 미리 봐 두었던 오션뷰의 스파가 있는 펜션은 예약을 놓쳤지만 비슷한 펜션을 구해 저녁과 아침 두 번의 스파로 몸도 풀렸다.
오늘 아침 108배를 하는데 오른쪽 어깨가 결린다. 카메라를 너무 오랜만에 들었던 모양이다. 몸은 정직하다. 노력이 하루아침에 성공을 만들지 못하듯이 몸도 그렇다.
일이 끊어지면 어때? 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거잖아! 또 일을 시작하면 내 글, 내 책을 쓸 수 없게 될 테니까. 그전에 빨리 쓰자. 글을 쓰는 일을 하니 일하면서 내 글을 쓰는 게 더 어렵다. 다행히 여행에 다녀오자마자 두 번째 책의 목록을 완성했다. 세 챕터가 비어있었는데 드디어 채웠다.
모든 일이 잘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일이 잘 안됐다고 다음 일도 미리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기만 한다면 그중에 하나는 꼭 성공할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한 가지 일을 실패했다고 내 인생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니까.
친구에게 부탁해 나의 뒷모습 사진을 찍었는데 한 달쯤 집에만 있었더니 그 사이 살이 붙어 내가 생각했던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108배도 게을리했으니 다시 108배를 열심히 하고 식이요법도 해서 다시 찍어야지. 역시 다이어트는 성공하는 것만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도 1년 전을 생각하면 많이 좋아졌으니, 다시 또 힘을 내어 보자.
살아지는 대로 살지 않기 위해,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 매일 아침 108배를 하는 거다. 양양 어디쯤에 바다 뷰의 스파가 있는 작업실을 꿈꾸며 허리 꼿꼿하게 펴고 글을 쓰자.
108배 시즌1 88일 차 _ 2020년 4월 26일
https://brunch.co.kr/@bluetwilight/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