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87일] 불면은 괴로워

crisis maker : 마감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

나는 '굴이 무너져 탄광 속에 갇힌 광부가 목숨을 걸고 곡괭이를 휘두르듯'

그렇게 글을 썼다. - 발자크(황소자리 사수자리)


마감까지 일을 미루고 미루다 마감 직전에 슈퍼 울트라 파워와 함께 글을 쓰고 밤새우는 짓,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crisis maker, 마감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20년 동안 난 거의 마감의 스릴에 중독된 채 살았다. 그러나 이제 체력이 안 된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밤샘 금지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가 시작되고 아직 열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두 번이나 밤을 새웠다. 하루는 자막을 뽑느라 새웠고, 하루는 미팅 보고서 작성을 위해 밤을 새웠다.


밤샘보다 그 이후가 너무 괴롭다. 오늘도 자막을 뽑아야 하는 날이다. 오늘은 기필코 밤을 새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제 밤을 새우고 아침 7시에 잠들어 오후 3시에 겨우 일어났다. 줌으로 하는 독서모임은 세수도 못한 채 모자 쓰고 겨우 했다. 그리고 혼자 저녁을 만들어 먹고는 자버렸다. 11시도 안 되어 자고 아침에 기억도 나지 않는 이상한 꿈을 꾸고 일어나 보니 7시가 채 안 되었다. 기분이 상쾌하다. 사실 어젯밤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이명도 심해서 약을 한 움큼 털어먹고 잤다. 신경안정제와 편두통 약과 비타민 등등.


아침에 머리가 또 아프면 어쩌나, 걱정을 사서 했는데 다행히 아침에 머리가 맑다. 오랜만에 푹, 제대로 잔 기분이다. 기분 좋게 커피를 내려 마시고 108배를 했다.


17_(포천금동리천년은행나무)_1.jpg 포천 금동리의 천년 은행나무. 30년 생 원목 한 그루에서 1만장의 A4가 생산된다. 책 천 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 10그루. 나무에 미안하지 않은 책을 쓰고 싶다.


108배를 하면서 아, 소설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데... 이렇게 강렬하게 마음이 동할 때 써야 하는데... 하다가 20분쯤 지나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30분 절을 하고 나니 머리가 더 맑아졌다. 모닝페이지를 쓰고 필사를 하는데 윌리엄 포크너가 말한다.


“1923년 나는 책 한 권을 썼고 책 쓰는 일이 내 운명, 숙명임을 깨달았다. 아무런 외적 목적도 숨은 목적도 없이 쓰는 것. 책을 쓰기 위해 책을 쓰는 것.”


“사람의 마음을 북돋는 것. 글 쓰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예술가가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가벼운 오락거리를 쓰는 사람도, 충격을 주기 위해 쓰는 사라도,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쓰는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 어차피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이번 생은 작가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 쓰자. 돈 버는 일이 글을 쓰는 일이라 하루 종일 돈을 벌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글을 쓰다 보면 그 이후에 내 글을 또 쓰지 않게 된다. 그러다 돈벌이가 없을 때는 또 통장 잔고 걱정에 글을 못 쓴다. 이래저래 못 쓰면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냥 쓰자.


매일 출근해 8시간을 일하듯, 아침에 일어나 모닝 루틴을 마치고 딱 8시간! 회사원처럼 꼼짝없이 일을 하자. 그리고 그다음에는 내 글을 쓰자.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하루의 시작이 기분 좋다.

우선, 불면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당분간 수면제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


108배 시즌1 87일 차 _ 2020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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