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021] 왜 상처받은 이들만이 서로를 알아볼까

줄리아나 도쿄, 한정현

“저는 누군가의 인생엔 분명 빛나는 한 순간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이 인생의 전체를 견디는 빛이 되기도 한다고 믿거든요.”

- 한정현 인터뷰 중에서


책을 읽으면서 자주 난독증에 빠진다.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가? 이해하고 있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읽다가 앞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읽기도 하고

한 문단을 다시 거꾸로 읽으며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가 찾기도 한다.


한정현의 소설 <줄리아나 도쿄>를 읽으면서도 나는 자주 앞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한 자리에 앉아 끝까지 읽었다.

상처 입은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그들의 연대는 사랑보다 더 강력하게 서로를 지켜주고자 한다.

그것은 선택이나 운명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의 발현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기 전부터 좋아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내가 동성애자 남편과 살면서

유일하게 하는 집안일이라고는 바삭거리는 이불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이불을 다림질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좋아하면서 더 좋아했다.


“오해”라는 단어와 함께 “선택”과 “책임”이 반복되는 소설을 읽으며

최근 원고에 내가 “반짝반짝”이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내 삶이 반짝이지 않는다고 느껴서일까?


인생의 빛나는 한 부분, 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실 나는 데이트 폭력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폭력을 당하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이 제일 먼저 망가지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줄리아나 도쿄>를 읽으며 계속 난독증에 걸린 듯 행간의 의미가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사랑을 못하는 것일까?


“한주 씨,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분명하게 고르거나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삶에는 훨씬 많습니다. 받아들여야 만 하는 일이 인생에는 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 <줄리아나 도쿄> 중에서


소설을 다 읽은 지금, 선택과 주어진 운명, 그 둘 중 어떤 것이 더 내 인생을 반짝이게 하는가 천천히 생각해 보고 있다. 나는 이번 생엔 이렇게 살아보겠다, 내가 택해서 왔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니, 그 둘은 서로 다르지 않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1] 바람에 스러지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