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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

정신과의사가 되어 마음이 아픈 사람을 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정신과의사가 되려면 의대를 가서 해부학 실습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포기했다. 나는 피나 침 같은 끈적한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내 피를 뽑는 것도 무섭다. 병원에서 검사를 위해 피를 몇 병(?)씩 뽑으면 우리 아버지는 옆에 서서 “아이고 우리 딸 일주일, 아니 한 달 먹은 것 다 뽑아서 어떡하냐” 하셨다.     

 

교통사고 이후 이명이 생기고 그로 인해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추천으로 같은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녔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5분에서 10분 정도 짧은 상담은 내내 처방약의 복용과 효과, 부작용으로 채워지고 같거나 다른 약을 처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을 몸소 경험하고 나니, 역시 정신과 의사 따위 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책꽂이에서 <당신이 옳다>를 발견하고, 왜 샀더라 한참 갸웃거리다가 뜨개질이 떠올랐다. 지인들과 시작한 세이브 더 칠드런, 신생아 모자뜨기가 올해로 7년째였다. 올해는 겨우 5개밖에 뜨지 못했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어울려 계속해서 모자를 뜨고 있다. 그런데 이 뜨개질이 참 묘하다. 뜨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몰입이 된다. 그래서 난 세이브 더 칠드런이 아니라 세이브 미라고 이야기한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모자뜨기 캠페인은 저개발국 신생아들이 체온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보온용품을 갖추지 못해 생명을 위협받는 것을 막기 위해 털모자를 떠서 보내는 참여형 캠페인이다. 아기가 미숙아로 태어나면 아기를 엄마 배 위에 올려놓고 모자를 씌워 체온을 1-2도 높임으로써 저체온증을 막아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생후 4주 이내 사망하는 신생아는 약 240만 명에 달한다.      


정혜신 선생님은 팽목항에서부터 지금까지 심리치유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뜨개질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치열한 투쟁이나 적극적인 상담이 아니라 한가로운 뜨개질이 뭔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치유를 간단하게 정의하면 깨진 일상의 복원”이라 말하며 일상적 접근이 트라우마에 대한 강력한 치유효과가 있다는 기사를 읽고 그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책이 내 책꽂이에 있었으나 읽는 데는 또 한참이 걸렸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70935.html#csidxc0e4726012cf9e6aff0097260ded540      


글을 읽으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옆에서 가만히 내 손을 잡고 자분자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사람들 마음이 다 그렇다고, 언제나 당신 자신이 먼저니까, 당신이 잘 보호하라고, 그래도 마음에 병이 생겼을 때 아픔에 계속 매여 살 수는 없으니 털자고, 그러기 위해 먼저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무엇을 진정 원하는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마음이 알고 있다고....     


몇 년 동안 “예민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너무 예민해서 그래요, 다른 사람보다 예민하죠? 하도 많이 들어서 얼마 전부터는 나도 “그래요, 제가 좀 예민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예민한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국어사전에서는 “예민하다”를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2.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3.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 등으로 설명한다. “지나치게”라는 부사 때문에 또 부정적이구나 싶다. 하지만 “예민”한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예민한 것은 그만큼 잘 느끼고 잘 반응하는 것이니 예민한 사람은 무엇이든 반응하고 대처하는 것도 잘한다. 그런데 이명과 불면이 나의 예민함 탓이라 몰아가는 의사들 때문에 나도 내가 예민한 것이 잘못이라고 잘못 생각했다. 그런 의사들의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성격이 예민하고, 약에 과민해서 잘 낫지 않는 게 아니라 의사들의 치료법이 잘못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내 몸이 너무 예민해서 병든 게 아니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제 다시 내 몸과 마음을 살릴 용기가 생겼다.

일이 바빠지면서 진료 예약을 놓치고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병원 가는 것도 힘들어서 치료를 쉬었다. 좋은 의사로 바꾸고, 내 마음을 좀 더 열심히 들여다보아야겠다. 깨진 일상을 복원하기 위해서 약보다 먼저 마음을 돌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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