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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송곳 같은 여자들

조선희 <세 여자 : 20세기의 봄>


단발을 한 세 여자가 청계천에서 노닐고 있는 빛바랜 사진, 소설은 이 사진 한 장에서 시작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질투가 치솟았다.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하는 소설을 쓰겠노라고 사진까지 배웠으나 나는 아직도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으므로.      


20세기, 그 시절 단발이라 하면 일제의 압박이 더 심해지던 시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했지, 신여성의 상징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2-30년대 신여성은 나혜석뿐인 줄 알았다. 세 여자,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 사실 난 그녀들의 이름을 처음 들었고, 그녀들이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등 조선 노동당을 이끌었던 이들의 여자들이라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6명의 남녀 중에 내가 아는 이름은 박헌영, 단 한 명이었다.  

    

올해 3·1절 기념식을 준비하면서, 3·1 운동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기념식을 위한 특별한 장소와 스토리, 인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조선사를 열심히 공부했고, 일하면서 하는 공부는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으므로 열심히 파고들었다. 그래도 역사 자료는 파편적이었고, 그 역사의 행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독하다 토요일이라는 책모임에서 함께 읽은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 : 20세기의 봄>은 내가 갈증을 느꼈던 역사의 행간을 메워주었다. 이번에도 줌모임이었으나 조선희 작가님이 함께 해 주셔서 더 특별한 모임이 되었다.      


소설은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세 여자가 1920년대 상해와 경성에서 공산주의를 접하고 공산주의 실현을 통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야기를 추적하고 있다. 작가는 처음 허정숙이라는 인물을 접하고 그녀의 삶에 관심을 가지며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아직 분단된 대한민국에 살면서 공산당,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낡았다. 함부로 입에 올리기 어렵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에서 지워지고 피하던 것이라 잘 아는 이들이 드물다. 대학교 신입생 때, 그때 처음 선배들을 통해 그전까지 몰랐던 혹은 잘못 알고 있던 역사들에 대해 재교육(?) 받으며 참 신기했다. 그해 김일성이 죽었는데, 전쟁이 나는 것 아닌가 했던 걱정을 기억한다.      


소설 속 이야기는 정말 딴 나라 이야기처럼 낯설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내게 소설이면서 역사책이었다. 그나마 1권은 신기하고 낯선 이야기라도 재미있게 읽었으나 2권부터는 역사가 스포일러라 한 문장, 한 페이지 넘기기 힘들었다. 가슴을 옥죄는 복잡한 감정에 자주 멈추고 쉬어야 했다.      


“나는 가끔 이 남자들하고 혁명을 하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다들 <자본론> 대신 <사서삼경>을 읽은 모양이야.”

- <세 여자> 중에서 정숙     


독립운동사에 공산주의도 낯설고 힘든데, 거기에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층위가 복잡하게 얽혔다. 시대가 바뀌어 반상의 구별이 사라져도 여성은 밥하고 설거지하는 보조자들이지 주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설 속 세 여자는 주체적으로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고 앞장서서 독립운동을 하며 몸 바쳐 투쟁적으로 살았다. 어디서건 송곳처럼 튀오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들이 그랬다.      


허정숙은 “나이 스물에 혼처를 정하는 일보다 인생의 뜻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편지를 써놓고 상해로 유학을 떠났다. 주세죽은 처음 만세운동 할 때는 다분히 충동이었다 하나 유치장에 한 달 살고 난 이후 마음속에 분노가 쌓였다 한다. 가택수색을 나오는 순사들, 팍팍해진 살림 형편에 음악공부하겠다고 상해로 떠났다. 3·1 만세 운동 이후, 상해에 모인 젊은이들은 공산주의 활동가가 되었다. 모든 계급이 평등하고, 부르주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란 식민지 조국을 해방시켜 줄 것으로 보였을 터이다.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인 고명자는 두 여자가 경성으로 돌아와 여성 동우회 모임 하는 곳에서 만났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세 여자, 세죽은 소련에서 일본의 밀정이라는 누명으로 카자흐스탄에 유배되었다가 모스크바에서 죽었다. 정숙은 북에서 요직을 맡았고 1991년 아흔의 나이에 죽어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명자는 소설에서 한국전쟁 당시 고독사 한 것으로 묘사됐는데 사실은 알 수 없다 한다. 작가는 소설 속에 이름 석자가 나온 이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사실 위주로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유의했다고 한다. 30년대 정숙이 북행 열차를 타는 것으로 했으나 이때 배를 탔을 것이라 한다. “여기까지가 일본이고 이제부터 만주란다”라 한 표현을 쓰고 싶었고, 경성에서 열차를 타고 북을 지나 소련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명자에 깊이 공감하고 가장 가슴 아팠다 했고, 작가도 명자 때문에 많이 울었다 했다. 명자는 중간에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전향서를 쓰고 나왔다. 그러나 밀정은 되지 않으려 사랑하는 김단야와 연락하지 않고, 집과도 절연해 수예를 팔아 생활한다. 동지를 배반했다는 좌절감으로 평생 고독하게 살았을 그녀의 아픔이 전해졌다. 고문을 이겨낸 사람보다 전향한 사람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 고문으로 죽어간 이들이 더 많았을 수도 있겠다.      


만약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나는 독립투사가 되었을까, 아니면 친일파가 되었을까? 얼마 전 유행했던 이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잠 안 재우는 고문 하나만 받아도 바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불어버릴 것 같아서. 하지만, 그 시대의 지식인들이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 나이 벌써 육십여섯이구나. 오래도 살았네.

애비가 세상에 난 것이 갑신년 정변 이듬해였으니

조선 땅에서 개화의 역사하고 같이 나이를 먹은 거야.

내 생전에 나라가 풍전등화 아닌 적 없었고 더구나 식민통치까지 갔으니

명색이 동경서 근대 법체계를 공부했다는 자한테

이 현실이란 건 잠시 넋 놓고 쉴 틈도 허락지 않더란 말이지.

눈에 보이느니 모순투성이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일들뿐이었으니.

권태롭고 나태한 인생보다는 살 만하지 않았나 싶다마는

돌이켜보면 내가 한 일들 중에 태반은 안 해도 좋은 일 아니었나 싶구나.

지금 하는 짓이 무엇인지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라.”

- <세 여자> 중에서 정숙의 아버지 허헌의 말     


세 여자만큼이나 내게 매력적이었던 인물은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했던 허헌이었다. 정숙의 아버지인 그는 딸과 더불어 공산주의자들을 돕다 나중에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북으로 넘어갔다. 허헌의 말처럼 지금 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고 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한편, 허정숙의 성공을 작가는 남자를 주체적으로 선택했던 덕이라 했으나 내 생각엔 부와 명예, 지식인 아버지가 든든히 받쳐준 덕이라 본다. 어쩔 수 없는 유물론적 사회!     


아주 강렬한 책이었다. 21세기 봄날에 20세기 봄을 읽으며 나의 청춘을 돌아봤다. 삶의 고비마다 나의 선택은 언제나 나의 행복이었으나 그조차 참 버겁다. 20세기의 봄을 뜨겁게 산 세 여자는 행복했을까?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숨죽여 산 명자, 세죽, 공산주의를 이루었으나 여전히 옆구리 시리고 그것이 진정 자기 뜻한 바 아니었을 정숙... 그래도 앞서간 수많은 그녀들 덕분에 21세기는 좀 살 만해졌는데 난 무엇으로 미래에 남겨질까 고민스럽다.      


일단, 세 여자들을 매혹시켰던 공산당이 무엇인지 궁금해 공산당 선언을 읽어야겠다. 세죽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카자흐스탄에 도착해 무거운 짐가방에서 가장 먼저 겨울 외투를 버리고 톨스토이의 <부활>을 버리고, 마지막으로 <공산당 선언>을 버리는 부분에서 코끝이 시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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