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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Sep 19. 2024

엄마 이야기

너무 꽁꽁 숨겨온..

는 엄마에 대한 얘기를 많이 안 하고 산다.  주위에서 친구들이 본인의 친정 엄마가 김치를 담가줬느니, 엄마랑 같이 여행을 다녀왔느니 아니면 몸이 불편하셔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느니 하는 얘기를 들으면 나에게는 하나같이 먼 꿈나라의 얘기인 듯 귓 등을 스쳐갈 뿐이다.
내가 절대 상상도 못 하고 꿈에서 조차 감히 꿈꿔 보지 못해서 인가 보다.
어렴풋이 제일 먼저 기억나는 나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잘 때 엄마가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자면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엄마가 아버지 쪽으로 등을 돌려서 얼굴이 안 보이면 아주 슬퍼져서 엄마에게 "나보고 자~"라며 투덜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우리는 한방에서 이부자리를 나란히 두 개 펴놓고 하나는 아버지는 엄마랑 같이 주무시고 내가 따로 잤었다. 엄마가 가시는 날까지..
엄마에게 내가, 또 나에게 엄마가 전부였다. 항상 나를 보면 이뻐서 어쩔 줄을 모르셨다. 그도 그런 것이 46살에 나를 낳으셨으니.. 지금 바로 내 나이인데 그 당시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다.
아마 딸을 너무 예뻐한 나머지 하늘의 질투심에 엄마를 먼저 하늘나라로 데려가신 게 아닌가 싶다.
엄마와의 기억들은 혼통 꽃향기가 가득하다. 나에게 매일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셨고 좋은 옷을 입혀주고 싶어 하셨다. 동네에 사진 찍어주는 아저씨가 지나가자 급히 나를 꽃단장 시키시고 사진을 찍어준 것도 기억난다. 긴 홈드레스 같은 것을 입고 보라색 멜라닌 구두를 신은 1980년대 치고 최고의 멋쟁이로 입혀놓고 찍어 준 듯하다.
내가 좀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자 이제는 어디 데려갈만 하다면서 아버지를 조르시고는 어느 날 좋은 봄날에 어린이 대공원을 갔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 찍었던 사진을 보면 흑백이었지만 꽃무늬가 옆에 그려진 흰 스타킹에 리본을 묶은 흰 블라우스와 무릎 위까지 오는 A라인 스커트를 입고 놀러 갔었다. 나는 치마를 입어서 조신하게 엄마손을 잡고 걸어 다녔던 거 같다. 옆에 내 나이또래 아이들이 반바지를 입은 채 신나게 뛰어다니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그저 엄마옆에 있는 것이 마냥 좋았다.
엄마와의 마지막 기억은.. 어느 더운 8월에 시장에 가신다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때 내가 왜 같이 안 따라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시원한 선풍기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더운 시장바닥을 엄마와 걸어 다니는 것보다 났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엄마도 8살의 어린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는 것보다는 혼자 얼른 갔다 오시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안 물어보시고 횅하니 집을 나섰다. 그렇게 15분쯤 지났을까? 황급하게 어느 모르는 아저씨가 우리 집에 들어와 엄마가 밖에 교통사고가 났다고 횡설수설하게 얘기했었고.. 그다음은 안갯속처럼 모든 게 다 뿌옇다. 엄마가 큰길에 누워 계신 모습도, 동네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 것도, 나는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어떻게 장래가 치러졌고 또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는지.. 1981년은 그렇게 나에게 안갯속에 감춰진 듯하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나는 언제나 엄마가 시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꿈을 꿨다. 그러면 나는 '엄마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엄마가 아예 안 오는 줄 알았어' 하며 반가워했고 엄마는 '내가 왜 안 와. 우리 딸 보러 와야지~'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런 꿈도 이제는 못 꾼 지 한참 되었다. 아마도 20년도 넘은 것 같다.
그저 그 꿈만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또 꾸고 싶다.
내가 커서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다. 그 애가 8살이 되었을 때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나도 무슨 사고로 인해 이 얘를 놔두고 하늘나라로 간다면 어떨까? 하는 걱정이 가득했다. 하루하루 아이와 마지막인 것처럼 추억을 쌓고 사진도 많이 찍었었다. 엄마가 나와하지 못했던 일들을 생각해 내서 이제는 딸과 함께 추억하며 예전 엄마의 마음이 되어 아쉬운 모든 것을 누려보려 노력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남편은 가끔 불평을 하기도 했다. '당신은 너무 애들밖에 몰라.'

딸이 어느덧 19살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어디 가자고 해도 잘 따라오지도 않는다.
'딸~ 엄마랑 뮤지컬 보러 가자! 이번에 미스 사이공 하던데..'그렇게 딸에게 가자고 하면
 '엄마는 왜 자꾸 나랑 놀려고 그래? 엄마 친구랑 가~'
결국은 핀잔을 듣기 일쑤다. 그래도 마냥 좋다. 딸하고 오래 오래 지내고 싶다. 내가 우리 엄마랑 못했던 그 몫까지 다 나누고 싶다.
하늘나라에서 엄마가 흐뭇하게 우리를 바라 보시리라 믿는다. 다행인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12년 후 아버지도 엄마 곁으로 가셔서 하늘나라에서 두 분이 외롭지는 않으시리라.
‘엄마~ 꿈에 좀 나와주세요. 미국 온 다음부터 꿈속에서 못 만나는 거 같아요. 태평양을 아직도 못 건너시는지.. 보고 싶어요. 저 잘살고 있어요! 엄마에게 8년 동안 사랑을 많이 받아서 이제는 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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