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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7. 2022

소설 고라니4

나무늘보

  매일 똑같은 일상이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흔들거리다가 정해진 역에서 내린다. 한참을 걸어서 정문에 도착하면 다시 건물 입구까지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여전히 나를 험악하게 노려보는 경비원들의 시선을 피하며 게이트를 통과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려 뚜벅뚜벅 소리를 울리며 사무실로 들어선다. 그리고 아직 텅 빈 사무실에서 신문과 회람 등을 세팅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체크하여 보충하고 정리한다. 그런 후에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눈부시게 반짝이며 일렁이는 소울강이 보인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출입구 쪽에 위치한 내 자리로 가서 앉는다.  

   

  입사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되었다. 회사생활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일도 배워 가는 중이고 나무늘보와의 팀워크도 괜찮다 싶었다. 나는 원래부터 인간관계에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었던 탓에 관계의 스펙트럼은 넓지 않았지만 마음을 열면 상당히 깊어지는 타입이었다. 나무늘보와의 관계도 그랬다.

  나무늘보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말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서일까. 나무늘보와 대화하는 시간은 적었지만 대화의 내용은 깊게 공유되었다. 대화는 주로 산책하면서 이루어졌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만 있어서는 건강관리를 할 수 없다면서 오후 4시쯤 되면 나를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 우리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지금은 옥상 출입구에 자물쇠가 걸려 있어서 올라갈 수 없게 되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옥상은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높은 건물의 옥상은 정말 멋진 곳이다. 거기만큼 하늘과 가까운 곳은 없으니 말이다. 파란 하늘, 손에 잡힐 듯한 하얀 구름 아래를 걸으며 나무늘보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무늘보는 이곳에서 내가 유일하게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나무늘보에게 늘 감사할 따름이었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받은 월급명세서는 너무도 형편없었다. 게다가 계약직이니 월급이 많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나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내가 열심히 해서 연차도 쌓이고 성과를 보이며 진급까지 하면 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현실의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월급에서 이것저것 빼고 나면 뭔가를 할 수 있는 여유는 도무지 없었다. 누구나 직장인이 되면 자유롭게 즐기고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기 마련이지만 현실은 그런 상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나무늘보에게는 감사인사를 꼭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길에 자양강장제 음료를 한 병 샀다. 그리고 메모를 적었다.

  ‘어제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사수님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월급이 적어 겨우 작은 음료 하나 준비했지만 제 마음까지 이렇게 작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놓인 음료와 메모를 발견한 나무늘보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즐거움으로 흥분된 감정을 식히듯이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나를 보고 한마디 건넸다.

  “고라니 씨, 고마워요”     


  진심이 통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뢰감으로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어 갔다. 업무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쌓기 위해 나는 업무 외에 다른 여러 가지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런 모습을 나무늘보는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수와 부사수의 사이가 좋은 것에 대해서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특히나 두꺼비가 대표적이었다. 공벌레보다 큰 몸집에 약간 뚱뚱한 체형이었다. 남쪽 지방 출신이라는 것은 여기서 오래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고치지 못한 사투리 억양으로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 대해서 아는 척하는 걸 좋아하고 참견하는 것도 좋아하는 성격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공부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나무늘보가 다른 팀원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면 두꺼비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 불쾌해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당연히 나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아니라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두꺼비와 상대하지 않았다. 상대할 일도 없었고 상대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나무늘보는 느긋한 성격 탓에 일견 느려 보이기는 해도 일 처리는 상당히 빨랐다. 적어도 이 사무실 안에 있는 인원 중에서 가장 빠른 건 확실했다. 업무 내용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처리 속도 면에서라면 말이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가을에 실시되는 정기연구인데 1년 업무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큰 프로젝트다. 팀별로 하나의 과제를 수행하게 되는데 한 팀에서는 분야별로 나누어 진행한다. 내가 입사했을 무렵 나무늘보는 주어진 프로젝트를 모두 마친 상태였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 진행 중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무늘보와 한 조로 일을 하게 된 내게는 공식적으로 할당되는 업무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여유롭게 시간을 활용하여 업무 향상을 위한 교육이나 자료정리에만 신경 쓰면 되었다. 나는 본격적인 업무를 위한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고 싶었다. 그래서 이전에 발간한 연구보고서들을 검토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스컹크가 나를 휴게실로 불러낸 것은 그즈음의 일이었다. 그때까지 나를 꼼꼼하게 탐색한 듯하다. 항상 내 뇌를 두드리던 미세한 긴장감은 스컹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음을 나는 이날 확신했다.

  스컹크는 깡마른 몸에 신경질적인 눈매를 하고 있었다. 얇고 둥그런 안경테도 그 눈매를 가려 주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얄망궂게 보일 뿐이었다.

  비상계단의 계단참에 나를 세워 두고 스컹크는 공격을 시작했다.

  “너, 왜 일을 하나도 안 해? 나이 먹고 들어왔다고 지금 나잇값 하는 거야? 계약직이라고 계약직만큼만 일하는 거야?”

  그때는 지금과 달리 입사하는 데 나이 제한을 두고 있었다. 나는 마지노선인 28살에 입사했다.

  “너희 조 보고서를 좀 봐. 순 엉망이잖아. 팀장님이 체크해 주는 게 그렇게 많아서야 되겠어? 보고서가 완전 빨간색 투성이잖아.”

  빨간색이라고 말한 것은 제출한 보고서를 팀장이 검토하면서 수정하거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빨간색 펜으로 체크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스컹크는 손가락까지 흔들어대면서 계속한다. 어디선가 쾨쾨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부끄럽지도 않아? 나 같으면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다. 아니, 사수가 제대로 못하면 너라도 제대로 해야 될 거 아냐. 그래 놓고서는 매일 자리 비우고 산책이나 하러 다니고 말이야.”

  월권이다. 스컹크는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나이 얘기가 왜 나오는 거지? 지금 나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계약직 운운하는 것은 내게 모멸감을 주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겠지. 그리고 우리 조의 보고서는 나무늘보의 결재로 나간다. 그 내용을 수정하거나 변경할 권한이 내게는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 갓 입사한 부사수가 어떻게 사수가 한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스컹크가 말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거니와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대상은 내가 아니라 나무늘보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어이없는 상황에 처음부터 말문이 막혀 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사수가 산책하러 나가자고 해도 나가지 마. 그 시간에 다른 조 업무를 도와서 해. 다른 선배들이 지금 일이 많아서 힘들어하는 거 안 보여?”

  이 여자는 뭐지? 나한테 업무 지시를 하는 건가? 그런데 팀원들의 업무에 대한 얘기를 왜 자기가 나서서 내게 명령하는 거지? 팀에는 엄연히 업무분장이 있는 것이고 그 업무 배분은 팀장이 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건데 만약에 다른 조의 업무가 늦어진다면 그것은 업무 분장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원인이 있는 것일 텐데 그걸 지금 나한테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스컹크는 내게 그런 지시를 할 권한이 없는 사람이다.

  스컹크는 그렇게 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평온한 걸음걸이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스컹크의 뒤를 따라서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은 나는 호흡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뇌는 긴장감을 넘어서서 이미 과부하 상태였다. 그때 뒤에서 무리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확실히 얘기했어. 나이 먹고 들어온 게 무슨 유세라고. 계약직 얘기도 했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나는 모욕감을 참아 내느라고 호흡이 가빠졌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감추기 위해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 입술을 꾹 물었다.     

  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옆자리의 나무늘보는 아무것도 모르고 여느 때처럼 내게 말을 걸었다.

  “산책 갑시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무늘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했다.

  “사수님 저는 못 나가요.”

  굳어진 내 얼굴을 살피며 나무늘보가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무늘보는 작게 한숨을 내뱉은 후에 다시 말했다.

  “잠깐 밖에서 얘기 좀 합시다.”

  나는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높고 파란 하늘의 하얀 구름 아래서 나무늘보는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나는 오전에 있었던 스컹크와의 일을 얘기했다. 평소 느긋하고 온화한 성격인 나무늘보의 얼굴이 순간 붉게 번지며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무늘보가 결재한 보고서에 대한 얘기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지가 뭔데, 스컹크 이걸 그냥!”

  나무늘보는 몸을 돌려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큰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사수님, 그러지 마세요. 제가 더 힘들어져요.”

  나무늘보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몸을 축 늘어뜨렸다. 크게 한숨을 쉬고 난 후 몇 걸음 걸어와서 내 앞에 섰다. 아직도 얼굴은 상기된 상태이다.

  “한 번 말 나오기 시작하면 좋지 않으니까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어요. 이제 산책하러 같이 나오지 맙시다. 그렇지만 그런 말은 속에 담아 두지 말아요. 사람들이 못돼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거니까.”

  우리는 말없이 옥상을 빠져나와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막지 않았어도 분명 나무늘보는 스컹크에게 항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싸우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타고난 성품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나무늘보는 나무늘보대로 스컹크는 스컹크대로, 그리고 나는 나대로. 그래서 사람은 결단코 변하지 않는다.

     

  해가 바뀌고 인사이동이 있었다. 드디어 나는 정규직이 되었다.

  “고라니 씨가 이렇게 빨리 정규직이 된 건 다 내가 힘을 써서 그런 거야. 그러니 앞으로 열심히 하도록 해.”

  부장인 흑곰은 부장실에서 다리를 꼰 채로 내 얼굴로 담배 연기를 뿜어 보내면서 한껏 거들먹거렸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작은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한 달 전의 일이었다. 회사에서 티오 관리를 할 때 다른 부서의 티오를 빌려오는 방식으로 해서 정규직으로 정식 발령을 낸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디에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를 몰랐다. 더구나 이즈음에는 스컹크와 두꺼비의 괴롭힘이 극에 달해 있을 때여서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얼굴 표정이 항상 좋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엘리베이터에서 흑곰 부장을 만났다. 흑곰은 내게 아는 체를 하면서 말을 걸었다.

  “어때? 회사생활 재미있지?”

  전혀 재미있지 않은데,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저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요. 언제까지 계약직으로 있어야 될까요? 인사부에서 들었는데 다른 부의 티오를 빌리면 저도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요. 어떻게 안 될까요?”

  내 말을 듣자마자 흑곰은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엘리베이터를 내린 흑곰은 말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에 동기에게 나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어느 팀장이 나한테 말을 전해 주라고 했단다. 내가 버릇없이 흑곰에게 대들었는데 회사생활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단다.

  흑곰 입장에서는 내가 대든 것으로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상사가 원하는 대답만 했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벌써 지쳐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정규직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암담한 기분은 조금도 전환되지 않았다.

     

  이번 인사이동에서 말 팀장이 다른 기관으로 파견 나가면서 팀장급에 변동이 생겼다. 우리 사무실에는 새롭게 족제비가 팀장으로 왔다.

  “고라니 씨는 일도 잘하고 우리 회사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인 건 확실한데 사회생활은 그것만으로는 안 돼. 일단 팀 내에서 언니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도록 노력해 봐.”

  말이 일찍부터 내게 했던 말이다. 스컹크를 중심으로 해서 몇몇 팀원들이 나를 따돌리는 분위기를 말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런 분위기는 족제비 팀장이 오고 나서 더욱 심해졌다.

  스컹크는 족제비를 살뜰히 챙겼다. 점심도 같이 먹고 차도 같이 마셨다. 대화할 때는 내내 살갑게 굴었다. 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족제비는 내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내가 사무실 스트레스로 병이 생겨 한의원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족제비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고라니 씨는 우리 회사에서 제일 일 안 하는 사람인데 아프다는 게 말이 돼요? 그럼 일 많이 하는 다른 사람들은 벌써 죽었게?”

  그렇게 말하고는 스컹크와 눈을 맞추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자리에 앉았다. 또 어디선가 쾨쾨한 냄새가 났다.     


  이후로도 스컹크의 만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명절 휴일을 앞두고 다들 일찍 퇴근하면서 나는 퇴근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게 했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서면서는 전기료가 아깝다고 불을 껐다. 내가 사무실에 남아 있는데도 말이다. 또 사무실 간식으로는 꼭 과일을 준비하라고 시켰다. 과일은 씻어서 껍질을 깎아 잘라서 접시에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갔다. 그렇게 준비한 과일을 먹으면서 족제비의 뒷담화를 했다. 정작 족제비 앞에서는 입 속의 혀처럼 착착 달라붙게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 욕은 얼마나 하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스컹크는 내가 잘한 일에 대해서는 깎아내리기 바빴고 실수한 일은 더욱 크게 과장하여 떠벌리고 다녔다. 그런 탓에 회사 전체에 나는 안 좋은 이미지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곳에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나무늘보도 그 이후로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업무 외에는 다른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일본원숭이는 원래부터 업무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내 이야기를 알고 있어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신경 쓸 필요 없어.’ 이런 식으로 넘어갈 사람이었다.

  스컹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를 높여서 나를 압박했고 다른 팀원들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스컹크에 가세하지도 않고 제지하지도 않았다. 그저 동물원 쇠창살 밖에 서 있는 관람객들처럼 관망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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