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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5. 2022

소설 고라니3

일본원숭이

  하마터면 몇 번이고 충돌할 뻔했다. 온통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철역 그리고 사람들을 정신없이 흔들어대다가 역마다 정차하여 한꺼번에 토해 내고 빨아들이기를 반복하는 지하철. 그 분주함은 이제 막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경적 소리와도 같았다.

  오늘이 첫 출근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개미굴같이 긴 계단을 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아리가 뭉치기 시작하고 심장 꼭지까지 숨이 차오른다. 그러나 나는 계단이 끝난 곳에서 펼쳐지는 도시의 전경을 마주하고 나서야 겨우 멈춰 선다. 찌릿하면서 전기가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하체를 휘감았다. 짜릿한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연신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호흡을 고르고 난 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에 있는 첨탑 건물이 내 시야에 꽉 차도록 들어온다. 거대한 건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기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을 걸어야 한다. 다시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나는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들썩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리 도착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첨탑은 소울시티의 랜드마크 같은 존재이다. 소위 브레인이라 불리는 인재들이 모여서 정책을 결정하는데 그 정책 결정에 필요한 각종 연구들을 이곳에 설치된 여러 연구단체들이 서로 협업하여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와 같은 양상이다.  

   

  최종 면접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엄마였다.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는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는 것 그리고 온 가족이 모두 직장 건강보험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 엄마를 안심시킨 것이다. 사실 그때는 IMF 사태가 터지고 몇 년 안 된 시점이어서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당연히 나도 기뻤다. 집안에 경제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굴지의 회사에 당당하게 입사하게 된 나 자신이 뿌듯했다. 그래서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직 정규직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최종 합격은 했지만 지금 현재는 티오가 없기 때문이었다. 정원이 꽉 차 있는 상태여서 누군가 퇴직을 해서 빈자리가 생겨야 내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계약직이라고는 해도 정규직과 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약간 억울한 감은 있었지만 나는 입사가 늦어지는 것보다는 계약직으로라도 지금 들어가서 일을 먼저 익혀 놓는 것이 내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동안에 드디어 회사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에서 건물까지도 얼마간의 거리가 있어서 더 걸어야 했다. 건물 입구까지는 잘 손질된 정원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건물 출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건장한 체격의 경비원들이 여럿 보였다. 내가 건물 출입문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일제히 나를 향해 험악한 눈초리를 보냈다. 그 날카로움에 주눅 든 내가 메고 있던 가방에서 주섬주섬 출입증을 꺼내 들어 보이자 경비원들은 일시에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정면을 주시했다. 나는 약간 쭈뼛거리면서 게이트에 출입증을 태그하여 직원임을 인증하고 난 후 게이트를 통과했다.

  게이트를 들어가면 바로 로비였다. 나는 잠시 멈추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관찰했다. 양쪽으로 이어진 복도는 조명이 약간 어두웠는데 천장이 높은 탓인지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느 쪽을 봐도 똑같은 구조의 복도와 똑같은 구조의 사무실이 이어져 있었다. 건물이 사각형이라서 그런지 네 군데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나는 바로 앞쪽에 가까워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발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는 3대였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버튼을 눌러 제일 먼저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는 내부도 널찍했다.

  나는 미리 연락받은 대로 7층에서 내렸다. 7층도 1층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구조의 복도와 똑같은 구조의 사무실들이다. 아마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보이는 통로 벽에 적힌 숫자가 없었다면 나는 어느 층에서 내리더라도 다른 층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나는 다시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무실 출입문 꼭대기에 붙어 있는 팻말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1-2팀, 내가 배치된 곳이다. 출입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자 널찍한 사무공간이 펼쳐졌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내부를 관찰했다. 벽을 따라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중앙에는 기다란 탁자와 그 탁자를 둘러싸듯이 철제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중앙의 탁자까지 걸어가서 멈추어 섰다. 아직 내 자리가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나는 가까이에 있는 철제 의자 하나를 잡아당겨서 앉았다. 그러자 건너편에 있는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벽의 한 면 전체가 창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층고가 높은 만큼 창문도 천장까지 높다랗게 되어 있었다. 그 창문은 푸른색 하늘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이끌려 갔다. 창문 밖으로는 소울시티와 다른 도시를 잇는 대교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소울강이 보였다. 차분한 햇살을 반사하며 강은 짜릿짜릿하게 반짝거렸다. 나는 다시금 가슴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밖에서 봤을 때는 거대하고 훌륭한 건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마치 유명한 인상파 화가가 그린 유화처럼 역동적이었다. 나는 줄곧 눈을 떼지 못하다가 갑작스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라니 씨, 맞지요? 일찍 왔네요. 반가워요.”

  1년 먼저 입사한 공벌레였다.

  “아, 안녕하세요.”

  공벌레는 약간 살집 있는 체격인데 어깨가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어서 몸집이 좀 더 커 보였다. 그렇지만 체구에 비해 얇고 차분한 목소리가 다소 나를 안심시켰다.

  공벌레는 매일 아침 신입사원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다. 신문 챙기기, 컵 씻어 놓기, 회람 정리하기, 물품 확인하기 등등 단순한 것들이었다. 간단히 인수인계를 마쳤을 즈음에는 팀원들이 모두 출근해 있었다.

  팀장인 말이 모든 팀원들 앞에서 나를 소개했다.

  “이번에 우리 팀에 새로 들어온 고라니 씨입니다. 우리 팀에서 큰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고라니 씨도 지내보면 알겠지만 우리 부서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장점입니다. 선배님들도 고라니 씨한테 많이 알려 주시고요. 다 같이 잘해 봅시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꾸벅 인사하고 고개를 드는데 순간 나를 보는 눈초리들이 왠지 싸하게 느껴졌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냉랭했다. 나는 흠칫 놀랐지만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수인 나무늘보가 나를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나무늘보는 검은 더벅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느릿느릿한 말투와 여유 있는 얼굴 표정으로 보아 나무늘보가 느긋하고 온화한 성격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좀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느낀 눈빛을 나무늘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나무늘보의 바로 옆자리, 앞으로 내가 생활하게 될 공간이다. 나는 책상을 정리하고 나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시작이다.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잘해 보자’ 이렇게 굳건하게 다짐했다.

    

  오전에는 내내 나무늘보 사수에게 업무에 대해서 배웠다. 내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어색했고 어려웠다. 그렇지만 잘해 보겠다는 강한 의욕으로 열심히 듣고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바쁘게 메모했다. 그리고 혼자 생각하면서 정리하고는 배운 것을 연습해 보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일단 설명 들은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겨우 한숨을 돌리고 나니 갑자기 피로감이 느껴졌다. 나는 두 팔을 위로 뻗어서 긴장한 근육을 풀어 주면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옆자리의 나무늘보는 어느 새인가 나가고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나서야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학생 때처럼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게 맞는 건 아니지만 나는 오늘 처음 여기에 왔다. 아무런 안내를 받은 바 없다. 점심시간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인지, 심지어는 건물 내부에 직원식당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뭔가에 한 방 얻어맞은 듯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이곳에 입사하기 전에 5년 동안 학원에서 강사생활을 했다. 일하는 데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학생 관리업무는 담당자가 따로 있었기에 강의에 대한 것만 신경 쓰면 됐다. 학생들 성적도 제법 괜찮았다.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개인 과외도 많이 들어왔다. 강의 업무는 강사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직원 모두가 각자의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서 혼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나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떻게 할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내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어, 고라니 씨, 아직 식사 전이에요?”

  출근 후 잠깐 얼굴을 비치고 사무실을 비웠다가 이제야 나타난 일본원숭이였다.

  “아, 네.”

  “나는 일이 있어서 점심을 좀 늦게 먹으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요? 우리 팀에서 제일 선배님이랑 갈 건데”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반은 엉겁결에 반은 고마움에 검은 눈망울을 떨구며 대답했다.     


  일본원숭이는 회사에 입사한 지 13년 됐다고 했다. 예전에는 회사가 위탁기관에서 개설한 취업전문반 과정을 예산을 들여 지원했다고 하는데 일본원숭이는 그 코스를 거쳐 입사한 케이스였다. 일본원숭이는 몸집은 작았지만 선선한 말투나 손짓에는 좀 전까지 한 사무실에 있었던 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뭔가 세상을 초월한 도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고 아득히 멀리 있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그런 느낌도 들었다.

  그 자리를 함께한 또 다른 인물은 입사한 지 28년 된 꽃게였다. 계산해 보니 꽃게는 내가 태어난 해에 이곳에 입사한 것이다. 내 인생만큼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니 정말 놀라웠다. ‘이 사람들은 전부 베테랑이구나. 그렇다면 엄청 대단한 사람들일 텐데’ 이런 생각은 했지만 둘의 대화 내용은 그다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대화였기 때문이다. 그게 업무에 대한 내용이었는지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는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뭔가 초연한 태도로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 갔고 나는 그저 열심히 하면 나도 이렇게 베테랑이 될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라니 씨, 형제는 어떻게 돼요?”

  일본원숭이가 물었다.

  “여동생 한 명 있어요.”

  “역시, 맏딸일 줄 알았어.”

  “그런 게 보이나요?”

  “분위기가 그래요. 선생님 하면 딱 어울릴 스타일이에요.”

  “아,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선생님 같은 공무원은 뭔가 지루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하고 싶지 않았어요.”

  “고라니 씨가 보기보다 당찬 것 같구먼.”

  꽃게의 말에 일본원숭이는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냥 적당히 하면 돼요, 적당히.”

  이때는 왜 일본원숭이가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일본원숭이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은 있었다.

  잔잔한 분위기에서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마음이 다소 풀어졌다. 아침부터 느꼈던 이상한 분위기는 그냥 기분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내가 진심을 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해. 위축될 것 없어’ 이렇게 생각했다.

  식사를 다 마친 후 일본원숭이는 말했다.

  “점심에 늦게 나왔으니까 좀 더 여유를 가지면 좋겠지만 고라니 씨가 오늘 첫 출근이라 주변 눈치도 봐야 하니 이만 정리하고 들어갑시다.”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일본원숭이와 꽃게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모든 팀원들은 자기 자리에서 각자의 업무에 열중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도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내 자리로 걸어가는 내내 신경을 따라 온몸으로 전달되는 미세한 긴장감은 다시금 내 뇌를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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