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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5. 2022

소설 고라니2

서막

  강렬한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한여름 오후. 더운 열기에 모두가 건물 안으로 피신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산한 시간에 담벼락 밑에는 개미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개미들은 마치 퍼레이드라도 하는 듯 각을 맞춰 이동하고 있다. 가만 보면 개미들은 모두 똑같아 보인다. 똑같은 틀에서 찍어 낸 것처럼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개미들의 행렬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처럼 계속되고 있다.

  그러던 중 어느 한순간 담벼락 끄트머리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난 듯 보인다. 똑같은 표정의 개미 두 마리가 행렬의 다른 개미들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 뒤엉켜 무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소란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치열한 전투다.

  1호 개미의 선공이 시작된다. 앞다리로 2호 개미의 더듬이를 눌러 제압하는 통에 2호 개미의 더듬이는 끊어지고 만다. 이에 질세라 2호 개미도 1호 개미의 턱을 깨물고 1호 개미의 몸을 허공으로 던진다. 1호 개미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오른쪽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그때였다. 몸을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1호 개미와 2호 개미 주위로 몸집이 큰 개미 몇 마리가 일시에 다가와 그들을 운반하기 시작한다. 1호 개미와 2호 개미는 몸집 큰 개미들에게 실려 가다가 담벼락 어느 부근에서인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몸집 큰 개미들도 일제히 모습을 감추었다. 다음 순간 그 큰 소동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개미들은 다시 원래의 퍼레이드 대형을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뜨거운 한여름 오후의 한산한 시간, 개미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똑같은 표정, 똑같은 움직임이다. 담벼락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뜨거운 햇볕 아래에 조용히 서 있다.     

                              



  나무늘보 사수는 느릿느릿 말했다.

  “해안가 절벽에는 소나무들이 많이 자라는데 그중에서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소나무만 골라서 큰 배를 만들지. 거센 바람을 이겨 낸 소나무들이 곧게 자라기 때문이거든. 너는 지금은 키 작은 소나무지만 거센 바닷바람을 겪는 사이에 큰 소나무로 자랄 거야.”

  그때는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인내하고 노력하면서 긴 시간을 버텼다. 어차피 같은 소나무로 자란다면 높이 곧게 자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 우람찬 소나무로 잘 자랐다. 하지만 아직도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배가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비싼 소나무 대신에 가격이 싼 목재를 이용해서 마구잡이로 배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굳이 배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해안가에 우뚝 솟은 커다란 소나무니까.

  그렇게 나는 해안가에 홀로 서 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를 가슴속에 묻어 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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