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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5. 2022

소설 고라니1

프롤로그

  짙은 어둠이 깔린 고요한 국도. 저 끝에서 원뿔 모양의 두 줄기 광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는 휑한 도로를 자동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세차게 쏘아 대며 시원하게 내달리고 있다. 온통 축축하게 흘러내리는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부분만 겨우 둥그렇게 운전자의 시야로 확보되고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 저 멀리서 소리도 없이 목적지도 없이 도로를 가로질러 질주하는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다음 순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커다란 음악 소리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던 운전자의 시야로 그림자는 갑자기 뛰어든다. 이어 어둠을 찢는 듯한 굉음이 들리고 곧 조용해졌다.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다시금 커다란 엔진 소리가 새벽 공기를 진동시킨다. 그리고 자동차는 서둘러 출발하며 다시금 속도를 낸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는 저만치 멀어지다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이제 텅 빈 도로는 거친 숨소리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 거친 숨소리도 이내 짙은 어둠 속에 묻혀 간다.

  다시금 고요가 찾아온 산길 국도. 차가운 도로 위에는 고라니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몸 전체를 둘러싼 짧고 거친 갈색 털, 빨리 달릴 수 있게 가늘게 뻗어 나간 팔다리 그리고 검게 빛나는 순한 눈망울에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검은 코. 커다란 둥근 귀는 아직 파르르 떨리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라니는 축 늘어진 채 움직임을 멈추었다. 도로에 낮게 깔린 어둠이 걷히면 고라니의 그 적나라한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도대체 고라니는 왜 이 시간에 이런 산길을 달리고 있었을까?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일까? 무엇을 찾기 위해 달리고 있었던 것일까?     




  기득권자들이 구축해 놓은 사회의 구조는 너무나 거대하고 공고하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에 편승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 거대한 톱니바퀴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에는 부서져 버려지게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고라니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도처에서 각각 다양한 삶을 꿈꾸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터전을 잡지 못한 채 최후에는 아스팔트 도로 위로 내몰린다. 기존의 사회 시스템 속에서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리는 작은 부품으로 쓰이다가 버려져 결국에는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라니들은 지금도 쉬지 않고 달려간다. 질주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힘껏 달리는 고라니들은 자신을 보호해 줄 안전장치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도로 위에서 갈등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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