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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Jun 28. 2022

책 읽기 딱 좋은 나이

나를 찾는 책모임

책모임은 육아 해방구였다. 모임에 다녀오는 날이면 나는 십 수 명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작가, 이야기 속 등장 인물, 그리고 함께하는 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책 읽기 딱 좋은 나이네요.


“얼마나 좋아요. 책 읽기 딱 좋은 나이네요. 나는 너무 늦게 함께 읽기를 알게 되어 아쉬워요. 내가 이 재미있는 걸 좀 더 일찍 알게 되었다면 내 인생은 정말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마흔 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J가 내게 한 말이다.


줄곧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어린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나만 생각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을 찾기에 나는 너무 많은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책 읽기 딱 좋은 나이’라니. 그동안 나를 동굴 안에 가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아니었을까. 동굴 밖이 꽃밭인 줄도 모르고.


책에 대하여 토론했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주인공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작가와 인물에게 던진 질문은 나로 향했다.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게 뭐야? 나는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대학 졸업 학기, 복지와 안정성, 연봉을 기준으로 선택했던 은행을 8년 차 대리 때 그만두었다. 정말 아이 때문에 일을 포기한 걸까? 정말 은행이라는 조직이 문제였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으므로 후회와 탄식은 접어두자. 하지만 앞으로의 선택은 분명 달라야 한다.


'책 읽기 딱 좋은 나이.' 이미 실패하고 늦어버린 나는 그 한 마디로 인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과거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던 경제적 효용과 복지는 내려놓기로 했다. 돈을 좇아 찾아간 일에서 조금의 성취도 얻을 수 없다면, 어떠한 보상이 있더라도 하루하루는 불행하게 반복된다. 고되고 힘들더라도 계속 하고 싶은 일. 당장 큰 보상은 없지만 아주 작은 성취를 맛 볼 수 있는 일. 작은 성취가 쌓여 나의 능력이 될 만한 일. 나는 그 일을 찾기 위해 동굴 밖으로 걸어나겠다고 마음 먹었다.


     




70대부터 할 일을 준비 중입니다.  


처음 책모임에 참여했을 때, 토론을 진행한 리더는 스스로 졸퇴자라 부르던 최 선생님이었다. 그는 이른 나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졸퇴 이후,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던 동료들과 함께『은퇴자의 공부법』( 어른의 시간, 2015)을 출간한다. 책에서 최 선생님은 60세가 넘은 지금 공부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루는 두 시간의 토론 이후 토론자들과 함께 근처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70대부터 할 일을 준비해야 해서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선생님은 차를 마시고 먼저 일어났는데, 홀연히 떠나는 그 뒤로 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 바람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


은행에서는 항상 노후 대비를 중요한 이슈로 여긴다. 요즘 같은 고령화 시대에 개인은 반드시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구성된 연금 3종 세트에 가입해 직장에 다니는 동안 꼬박꼬박 납입해야 한다. 최대한 오래 일해야 은퇴 후 3층 연금을 기반으로 풍요롭고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다.


나는 은행에 다니는 동안 연금의 중요성에 대해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고 목이 따가울 정도로 고객들에게 설명했다. 지금이라도 카페라테 마시는 돈을 아껴 한 달에 20만 원 씩이라도 차곡차곡 적립해 복리의 마법으로 굴린다면 당신의 노후는 한결 편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60대 리더의 빛나는 얼굴을 보며 노후 대비란 3층 연금 완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자산의 현재가치와 미래가치, 지속되는 현금흐름으로 개인의 인생을 평가하기에 인간은 섬세하고 개인의 자아는 고차원적인 욕구를 추구한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 1902~1994)은 전 생애에 걸친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 8단계'를 제시했다. 8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는 ‘자아 통합(ego integrity)’의 시기이다. 이 시기 개인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계를 인정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애가 가치 있었다는 확신을 가질 때 인간은 '자아 통합'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인 노쇠와, 직업 및 친구, 배우자의 상실을 겪고 자신의 삶이 무의미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인은 ‘절망(despair)’에 빠진 채로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


하고 싶은 일과 공부로 하루하루가 생기 있다는 토론 리더 최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열린 사고로 젊은이들과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노년기 입구를 지나고 있었다. 아무리 3층 연금으로 든든한 경제적 바탕을 마련해 놓았다 한들, 눈과 귀를 닫고 본인의 견고한 세상에 고립된 노년은 절망적이다. 노후 대비의 정의는 다시 내려져야 한다. 이 시기에 나는 어떤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어떻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함께 교류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에릭슨은 자신이 80대가 된 후 인간 발달 8단계 이론에 '초고령 노인들'을 포함하여 '9단계 생애 주기 이론'을 제시한다. 에릭슨의 아내 조앤 에릭슨(Joan M. Erikson, 1903~1997)은 남편의 사망 후, 유고를 정리하면서 9단계를 추가해 『인생의 아홉 단계』라는 증보 개정판을 출간한다. 몸의 성장은 멈춰도 정신은 계속 성장한다고 말하는 에릭슨은 이 책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기와 깨어있음이다.”라고 주장한다.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어.'라며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난 무언가에 도전하기엔 이미 늦은 거 같다.’며 좌절했다. 최 선생님과 에릭슨은 나에게 ‘바보야 인생은 길어.’라며 이제 겨우 청년기에 들어선 나를 일으켰다. 정말 필요한 건 젊은 나이가 아니라 생기와 깨어있음이란 걸, 그건 젊음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유연한 태도와 실천으로 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 너희 덕분이다. 고맙다.'하면서 대학원에 다녔죠.


2주마다 2시간의 책모임. 육아에서 해방된 이 시간은 나머지 일상을 생기 있게 살아있도록 해주었다. 책을 매개로 만난 소중한 인연은 때로 나의 삶을 생생하게 나아가게 했다. '책으로 노는 요즘이 너무 즐겁다'는 박 선생님은 대학생 딸과 아들을 둔 워킹맘이다. 하루는 박 선생님과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떻게 책모임에 오게 되었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아이가 1학년,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그 해, 나는 동네에서 작은 규모로 논술 지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원 또는 유치원에 간 사이 몇 그룹을 지도하면서 경험을 쌓은 이후, 논술 공부방을 차려볼까 구상 중이었다. 그런데 ‘이게 내 길이다.’라는 확신은 없었고 좀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고 있었다.


이런 고민을 말하자 박 선생님은 “선생님, 무엇이든 하고 싶으면 꼭 하세요.”라며 응원해 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한편으로는 아이들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고, 일이든 공부든 하려면 열심히 해야 할 텐데 제가 그만큼 몰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고민하는 내게 박 선생님은 자신도 아이들이 어릴 때 한참 일을 하다가 딸과 아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사실 아이들에게 뭘 해준 것이 없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참 잘 자라주었죠.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너희 덕분에 엄마가 일을 할 수 있구나.’, ‘너희가 스스로 잘해주니 엄마가 대학원에 다닐 수 있어.’, ‘엄마가 이렇게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건 다 너희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라고요.”


박 선생님의 말은 나의 착각을 산산조각 냈다. 그동안 나는 내 덕에 아이들이 잘 크고 있다고 단단히 오해했다. 엄마가 가정에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 접촉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 성장 전부가 엄마의 밀착 케어 덕은 아니다. 엄마가 때때로 감정적으로 화를 내고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을 리 없다. 아이들을 케어한다는 명분으로 어린아이들에게 to do list를 들이밀며 효율적인 시간 체계 안에서 완수해 낼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이들의 지적 성장을 도울 리 만무하다.


내가 평일 낮에 집에 조금 오래 머무는 날이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물었다.


“엄마 언제 수업하러 가요?”


엄마의 부재를 기대하고 반기는 아이들에게 나의 존재가 무한한 양분이 될 거라는 생각은 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 나는 집을 나설 때 내가 아이들로부터 벗어난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은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었다. 한편으로 아이들만 내버려두고 나간다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일 때문에 집을 나서며 나는

“엄마 올 때까지 각자 해 놓을 것 해 놔.”

다녀와서는 엉망진창인 집을 보고

“도대체 내가 몸이 몇 개여야 하니!”

라며 쏘아붙였다.


“너희 덕분에 엄마가 일을 하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준다. 아이가 방과 후 엄마 없이 보낸 시간이 엄마의 일과 공부에 기여했다는 칭찬은 아이에게 성취감을 준다. 아이가 하루를 잘 보낸 것에 대한 지지는 아이를 성숙한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는 돌봄의 대상에서 주체적인 삶의 주인공으로 성장하고, 엄마는 아이의 성장을 자원으로 본인의 과업에 몰두할 수 있다. “너희가 하루를 잘 보낸 덕에 엄마가 일을 할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일하는 엄마에게 자녀와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나는 이제 틈만 나면 일거리를 만들어 집을 나선다. 초등 코딩 교육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개발에 참여하고 있고,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 심리를 공부하고 있다. 아동 또는 성인 상담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자원한다. 아이들을 두고 나가 미안하다는 죄책감 대신 "고맙다"고 말한다. “왜 아직까지 이거밖에 못해놨어!” 화내기보다 "이만큼이나 해놨네. 정말 멋지다."라고 칭찬하기를 선택한다. 광대가 한껏 올라간 아이들은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아빠는 항상 “고맙다.”라는 말로 나와의 통화를 끝맺었다. 아빠의 “고맙다.”는 말은 ‘지금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잘할 거야. 네가 그렇게 잘 살아주니 고맙다.’는 무한한 지지를 담고 있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안도했고, 앞으로도 잘하려고 노력했다. 오랜 기간 아빠로부터 “고맙다.”는 말의 힘을 얻고 있었으면서 나는 너무 늦게 나의 아이들에게 그 힘을 전하기 시작했다.




나는 늦지 않았다. 인생짧지 않고 우리는 항상 배우는 과정에 있다.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지기 보다는 고맙다고 잘했다고 말하자. 가볍게 집을 나서 개인의 삶을 찾자. 육아에서 달아나고자 찾은 책모임에서 나는 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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