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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Jun 22. 2022

육아 대신 공부

나는 어려서부터 하기 싫으면 도망치는 법을 배웠다

어릴 적, 원치 않은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공부였다. 나에게는 한 살 위 오빠가 있다. 오빠는 생일이 빨라서 학교를 일찍 들어갔기에 나와 2학년 차이가 난다. 오빠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외출하는 날이면 오빠가 하교 후 학원 가기 전에 먹을 것을 챙겨주라고 나에게 일러두었다. '엄마가 먹을 것을 해 놓고 가면 오빠가 챙겨 먹으면 되는데 그걸 내가 왜 챙겨주어야 하지?' 불만을 표출하고 하나하나 따져 물으면 잔소리 폭격을 동반한 등짝 스매싱이 올 게 뻔했다.


이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나도 공부하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다행히도 효과적이었다. 대한민국은 유교 사상이 짙은 나라여서 학생이 공부한다는 것은 최상이 미덕이요, “공부하러 가야 한다.”는 자녀에게 부모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웃집 스스로도 공부 잘한다는 엄친딸(엄마 친구 딸)'의 탄생은 부모의 불합리한 요구로부터 도망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공부를 한 데에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다 보니 잘하게 되고, 잘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은 도전 의식이 가장 컸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 선생님들은 친절했으니 공부 덕에 자존감도 쑥쑥 올라갔겠지. 하지만 “김장을 할 때마다 희한하게 너는 없어서 오빠랑 같이 했다.”는 엄마의 말을 돌이켜 보면, 나는 공부를 핑계로 어딘가에서 한량 같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에 따르면 어떤 행동을 통해 가치 있는 것이 제공되거나 바라지 않는 것이 제거된다면 개인은 그 행동을 반복하도록 학습한다고 한다. 공부를 했더니 원치 않는 무언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심지어 성취감을 느끼고 주변의 인정까지 받을 수 있었던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도망치고 싶을 때 공부라는 도피처로 향했다.

      



일과 육아 중 어느 하나 잘 해내는 것이 없었다. 일에서도 육아에서도 나는 겨우 과락을 면했다. 워라밸(work life balance)을 존중하지 않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의 행복에 집중하겠다고 결심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자마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휴직 후 일주일, 첫째 아이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를 잡고 울었다. "정말 엄마 회사 안 가는 거 맞지?"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아이는 밝게 웃는 얼굴로 잠에서 깼다. 행복한 일상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불쑥불쑥 '이게 내가 원했던 행복이 맞는 걸까?' 의심이 튀어나왔다.

  


그림책 『엄마가 화났다』(최숙희, 책읽는곰, 2011)는 주인공 산이가 제일 좋아하는 자장면을 손으로 집어 먹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귀퉁이에 검은 그림자로 나타난 엄마는 “또 시작이다, 또!”라며 화를 낸다. 산이가 얼룩덜룩해진 얼굴을 씻다가 욕실을 거품 나라로 만들고 작은 종이 밖 벽과 바닥에도 그림을 그리자, 엄마 입에서는 새까맣고 불같은 화가 쏟아져 나온다. 검은 불길은 점점 커지더니 산이를 삼켜버리고, 산이가 사라지자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만해라.”라는 나의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장난감을 다 꺼내 섞어 놓는 첫째 아이, 먹던 이유식을 손으로 끄집어내 소파와 가구에 문지르고 있는 둘째 아이를 뒤치다꺼리다 보면 하루는 짧았고 내 몰골과 집 안 꼬락서니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망진창이었다. 그림책 속 산이 엄마보다 나는 더 괴물 같은 모습이었다. 새까맣게 날이 선 화를 조그마한 아이들에게 비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생글방글 웃어주는 아이들이 공포에 질식해 사라지고 나서야 마녀 같은 엄마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림책 속 검은 괴물이 된 엄마는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육아휴직이 끝나갈 때쯤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사직서를 내면서 아이들이 어린 지금은 아이들과의 행복한 일상을 그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순간이 늘었다. 내가 그렸던 행복이 이게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좌절했다. 기본적으로 입히고 먹이고 씻기는 일에 더해 두 아이가 시너지를 내며 어지르는 규모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한 아이를 챙기면 다른 한 아이가 길바닥에 자빠져있고, 자빠진 아이를 안아 올리면 앞서가던 아이가 다른 길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직장 일이야 '못 해 먹겠으니 내일부터 안 나오겠습니다.'라고 호기롭게 문을 박차고 나오는 상상이라도 가능했지만, 엄마의 일은 못 해 먹겠어서 안 해 먹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좌절감과 자괴감에 무릎 꿇었을 때, 나는 다시 탈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MBC 스페셜 ‘공부중독’ 편에서 밴드 장미여관의 보컬 육중완이 등장했다. 그는 숭례문학당이라는 학습공동체를 찾아 성인들의 공부 모임에 대해 알아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육아가, 엄마 역할이, 온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잠깐의 외출로 이 역할을 다시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주에 한 번,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낸 후 오전 10시, 나는 서울역에 위치한 숭례문학당을 찾았다.


미리 정한 책을 2주간 읽고 학당에서 만나 리더가 나누어 준 발제문을 바탕으로 함께 생각을 나눈다. 비경쟁 독서토론이라고 일컫는 이 토론방식은 찬성과 반대를 가르지 않는다. ‘내 생각은 이런데 당신의 생각은 그렇군요.’, ‘당신의 생각이 그러하니,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의 토론이다. 각을 세우고 선을 긋고 나누기 보다, 경계를 해체하고 서로 넘나들며 테두리 밖으로 확장하는 토론이다.


이곳에서 나는 엄마라기보다 나 자신으로 존재했다. 나 자신으로서 아이를 '돌보는 나'를 조망하기 시작했다. '조망하는 나'는 엄마 노릇은 틀렸다고 괴로워하는 나에게 '아이를 키우다 보면 화가 날 수도 있지.', '아이들이 어릴 땐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해주었다. 나의 시선은 '괴로운 나'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보태는 책모임으로 향했다. 아이에게만 집중하느라 경직된 나의 시선은 유연해졌고, 작은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이던 편협한 사고는 점차 확장되었다. 나는 그렇게 학당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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