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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Jun 24. 2022

스물다섯,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이를 가졌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이를 가졌다.     


스물다섯(만 나이), 아이를 낳았다. 철저한 계획 임신이었다. 오래 사귀어온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편과 나는 졸업 후 얼마 안 있어 결혼했다.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결혼했고, 어차피 낳을 아이 빨리 낳자며 임신을 계획했다. 결혼과 육아를 ‘1’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잠든 사이 쓴 글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공지영 작가의 이야기. 난 그의 글을 읽고 야망을 품었다. 지겨운 은행에서 탈출해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포부.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워킹대드를 본 적 없는,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나와 다를 바 없는 사회초년생 친구들은 나의 계획에 감탄했다.

    


플랜 A.      


육아 휴직을 내자마자 유학원에 등록했다. 유학 가서 좀 더 공부하자. 졸업 후 내가 원하는 직장을 구하는 거야. 아이가 어릴 때 미국에서 자라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내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미래가 환상이란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배는 빠른 속도로 불렀다. 부른 배를 앞세우고 유학원의 좁은 교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이 양 옆으로 비켜나며 길이 생기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시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지원서를 쓰는 시점부터가 시작이란다. 나에게 맞는 미국 대학의 입시요강을 파악해서 각각에 적합한 지원서를 써야 한다. 은행 지점에서 금융상품을 팔던 일개 은행원에게 혁신적 창조의 경험이 있을 리 만무하니, 지원서 컨설팅을 받아야 할 텐데 수백만 원이 든다고 한다. 합격하면 또 어떤가. 2년 미국 유학을 다녀오려면 학비 포함 생활비 2억이 있어야 한다.     


지원서와 학자금 대출을 고민할 틈도 없이 출산을 두고 극심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레 골반 통증이 심해져 걸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울면서 기어갔다. 어그적 어그적 겨우 들어간 화장실에서는 처음 겪는 기분 나쁜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치질이라고 했다. 배 속에 아이가 커지면서 뼈 마디마디를 늘여놓고 오장육부를 밀어내고, 급기야 배설기관까지 밀어 버린 것이다. 유학은 무슨, 나는 비참한 몸을 이끌고 분만실로 향했다.

     


플랜 A 실패.

플랜 B 가동.

      

공지영은 아이가 잠들었을 때 글을 썼다. 출산 후 신생아의 낮잠 시간을 활용하자. 유학의 길은 접었고 은행원 2년 경력으로 이직은 어려우니, 신입 공채에 다시 도전하자. 그런데 웬걸, 아이가 잠들면 해야 할 일이 넘쳐났다. 젖병 소독, 아이 옷 삶기, 청소까지. 아이가 잠든 시간은 무언가에 꾸준히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고, 속절없이 잠이 쏟아졌다. 나는 완전히 속아 버린 기분이었다. 육아가 뭔지도 모르고 베스트셀러 작가 못지않은 생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자신한 건 제대로 된 오판이었다.

     

실망하지 말자. 나는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졸업 때 써 놓은 수십 건의 자소서가 있으니, 합격했던 기업에 고쳐서 지원해보자. 이런, 가족관계 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고? 결혼한 데다 애까지 딸린 신입은 안 뽑을 거 같은데... 휴~ S기업은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하지 않는군. 다행이다.

    

8월 아이 출산. 하반기 공채 지원, 서류 통과, 필기시험 통과, 면접 탈락. 이듬해 상반기 공채 지원, 서류 통과, 필기시험 통과, 면접 탈락.     



플랜 B 실패.

플랜 C 가동.      


플랜 C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플랜 C는 커녕 플랜 B조차 필요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았다. 노력하면 모든 게 이루어지던 엄친딸이었다. 처음 겪는 연속된 실패에 얻어맞고 한동안 일어설 수 없었다. 종이 위에 놓인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풀수록 좋은 평가를 받던 날이 있었다. 인생도 그럴 거라고 착각했다. 재수 없이 대학에 진학하고, 휴학 없이 기업에 취직하고, 망설임 없이 결혼하고, 결혼했으니 아이를 낳고. 빠른 시간 안에 인생 과업을 정확하게 완료하면 촉망받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고단한 육아는 무너진 마음을 쓸어 담을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남편은 매일 야근이었고 갓난아기는 나만 바라봤다. 이대로 증발되고 싶었다. 상사의 자녀 결혼식에서 인사팀으로 이동한 팀장님을 만났다. 빨리 복직하라는 팀장님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엄마가 됨으로써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계획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고, 노력해도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은행에서 벗어나려던 불온한 동기로 점철된 육아휴직 플랜 A와 플랜 B는 실패로 끝났고, 나는 다시 은행으로 돌아갔다.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에서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결국 거센 물결에 절어서 지쳐 돌아온다. 내가 딱 그 절은 나비였다.      


돈으로도 깰 수 없는 퀘스트


‘때려치우고야 말겠어!’ 했던 은행에 복직하니 정말 좋았다. 우선, 어른 사람과 주어, 목적어, 서술어가 갖추어진 완성된 문장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아기가 옹알이를 시작하면서 언어를 습득하는 동안, 나는 언어를 잃어가고 있었으니까. 두 번째로는 사회 구성원으로 기능한다는 점이 좋았다. 아침 출근길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이 안도감을 주었으니까.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돈이었다. 월급날이면 어김없이 입금되는 돈이 반가웠다. 시터 이모님 월급을 드리고, 야근, 회식 때마다 지원군으로 투입되는 엄마에게 선물도 할 수 있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님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새로운 시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업무 강도가 센 회사로 이직한 남편은 새벽 3시에나 집에 들어왔다. 조금만 더 견디면 이번 판은 깰 수 있겠다 싶을 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임이 아니지.’ 보이지 않는 손이 갑자기 퀘스트 수준을 올렸다.     

 

아이템이 필요한가. 아이템을 사려면 돈이 더 필요한데. 돈이라면 인생게임을 헤쳐 나갈 수 있기나 한 걸까. 새로운 시터를 구했지만, 반가웠던 일터가 부담스러워졌다. 상사가 무슨 일이라도 시킬라치면 “죄송합니다만 전 시터 퇴근 전까진 가야 해서.” 회식이라도 잡히는 날에는 “죄송합니다만 전 시터 퇴근 전까진 가야 해서.” 머리를 조아리며 뒷걸음질 쳐 은행 문을 나섰다. 회식이 길어질 것 같은 날엔 은행 직원 출입구 구석에 가방을 놓고 나왔다가, 지점장이 취했을 때 사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 가는 척 몰래 빠져나왔다.

      

“나 오늘은 정말 일이 많아서, 오빠가 이모님 퇴근 전에 집에 오면 안 돼?”

“나는 당연히 안 되지.”     


아빠는 왜 당연히 안 되는 걸까. 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과장님의 아내가 둘째 아이를 낳게 되었다. 과장님은 초등 1학년 첫째를 돌보기 위해 5일 휴가를 신청했다. “아니, 애는 지가 낳았어? 와이프가 애 낳는데 지가 왜 5일이나 쉰다는 거야?” 팀장님의 불평에 뒷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당연히 안 된다.’는 남편의 답에 야속했지만, 그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직장 문화와 사회적 제도가 아빠를 가정에서 기능하지 못하도록, 엄마를 사회에서 기능하지 못하도록 묶어놓고 있었다.  

    

“육아휴직 두 번 쓰면 승진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직장 선배들이 조언했다. 나는 출근할 때마다 엄마를 향해 팔을 휘저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선택했다. 육아휴직을 신청했고 첫째 아이와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둘째를 낳으니 몸은 더 고달팠지만 마음은 첫 아이 출산 후보다 훨씬 편안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복직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고 싶은 마음. 두 마음 사이에서 수없이 갈팡질팡했다. 은행도 조직문화가 변하고 있으니 일단 복직해서 분위기를 살펴볼까? 시터 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남편은 집에 없는 것이 디폴트 값이고, 나 또한 오전 7시 출근 오후 7시 퇴근이 기본이니, 입주 시터를 구해야 할텐데.

     

“입주든 출퇴근이든, 사내아이 둘은 없어요.”     


어디에서도 시터를 구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내 아이를 돌볼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 돈으로도 아이템을 살 수 없는 퀘스트에 직면했다.     


자본가가 되어 회사를 때려치우겠다던 계획. 대학원에 진학해 내공을 쌓고 이직하겠다던 계획. 어떤 계획도 이루지 못한 채, 나는 퇴사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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