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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Jul 15. 2022

노른자에서 흰자로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길

인천 아동센터에서 집단상담 8회기를 진행하게 되었다.


가는 데 두 시간, 오는 데 두 시간이니, 한 시간의 집단상담을 위해 네 시간을 길에서 소비하는 것이다.


드라마 <해방일지>는 흰자에서 노른자로, 노른자에서 다시 흰자로 오가는 왕복 세 시간의 출퇴근을 지겹고 고단하게 그려낸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동쪽 끄트머리이기에 노른자라고 하기는 조금 어렵다. 노른자와 흰자의 경계선, 회색지대에 위치했다고 할까. 노른자의 동쪽 끝에서 출발해 서쪽 끝까지 가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다시 그 노른자의 서쪽 끝에서 흰자 밖 인천 아동 센터에 다다르기까지 또 한 시간이 걸린다. '도보-지하철-전철-버스-도보'로 이어지는 2시간의 여정이다.


그런데 전혀 지겹고 고단하지 않다. 대다수가 이동하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평일 낮 시간에 서울에서 서울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 서울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한가로운 열차 안에서 앉아가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책을 읽을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창 밖을 구경할 수도 있다.


오히려 신이 나기도 한다. 어린이들을 만나러 가는 거니까. 내가 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내가 혹시 잘못 고른 어가 아이에게 상처가 되면 어쩌지. 고민은 지만 새로운 세계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렘으로 가득 찬다.


집담상담에 리더로 지원한 건 나였다. 다른 선생님들은 대상이 '초등학생'이어서 고민하다가 지원하지 않았다는데, 나는 초등학생이라면 자신 있다.


초등학생 두 명과 살고 있는 데다가 나는 어른보다 초등학생을 더 자주 만나고 산다. 논술 수업을 할 때에도 주로 초등학생이 대상이었고, 코딩 교육 스타트업에서 만들었던 콘텐츠도 초등학생이 타깃이었다. 재능기부로 토론 수업을 할 때에도 초등학생들과 함께였으니, 나는 최근 5년간 초등학생의 바다에서 허우적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자신만만한 가장 큰 이유. 그건 어린이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착각이며 자뻑인가 싶겠지만 정말 그렇다.


어린이들과 토론을 할 때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토론과 관련없는 교사의 사생활에 궁금하고, 내가 지도 않았는데 본인의 최근 연애사에서부터 부모님이 아신다면 깜짝 놀랄만한 가정사까지 줄줄이 고백한다. 물론 내가 어딘가 뛰어나서가 아니란 걸 안다. 어린이는 호기심이 많고 그 호기심을 참고 숨길만큼 인생사에 찌들지가 않았다. 을 걸고 들어주는 사람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남김없이 꺼내어 보여준다.


집에서 나의 아이들만 보다 보면 자꾸 못마땅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신비롭게도 새로운 우주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또 다른 행성으로 가온다.


매주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여행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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