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무기로 삼았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친구들과 낯선 상담사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타자를 매개로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조금 쉬워진다. 그림책 속 등장인물을 통한 감정 표현은 객관적인 자기 인식의 길을 열여준다.
감정카드 활동을 하기 이전에 <곰씨의 의자>를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아이들은 내 앞으로 모였고, 마법처럼 나의 목소리와 그림에 집중했다. 시설 간사님은 그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림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찰칵찰칵 사진으로 남겼다.
곰씨는 토끼들이 찾아오는 것이 즐거웠다. 어느 순간 차도 마실 수 없고 음악도 들을 수 없게 되자, 갖은 방법을 고안해 토끼 가족이 의자에 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하지만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얼굴을 타고 쏟아진다. 온화한 곰씨의 얼굴은 구겨진 채로 그 물과 함께 흘러내린다.
왜 곰씨는 불편한 마음을 토끼들에게 표현하지 못했을까요?
곰씨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이후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이어진 감정카드 활동. 자신이 경험했던 또는 경험하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카드 한 장, 긍정적인 감정카드 한 장을 각각 골라볼게요. '외롭다'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이 감정은 어떨 때에 느끼나요? '뿌듯하다'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이 감정은 어떤 때에 느끼나요? 나는 어떤 감정을 더 자주 느끼고 싶나요? 무엇을 할 때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요?
"게임을 했는데요... 같이 할 친구가 없어서 혼자서 게임을 했어요. 그래서 외로웠어요."
"나는 혼자 게임해도 신나는데. 게임하면 무조건 신나는 거야."
감정은 맞고 틀리고가 없어요. 내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럴 수 있는 거랍니다. 여러분 각각의 감정은 매우 소중해요. 곰씨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괴로워했지요. 그런데 마음을 표현한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때때로 마음을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해요. <곰씨의 의자>를 만든 노인경 작가는 '누군가와 함께 즐겁기 위해서는 간혹 솔직해질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지요.
집단 상담이 처음인 아이도, 경험이 있는 아이도, 책 이야기를 나눈 이후에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곰씨가 왜 그랬을까를 함께 고민하던 것처럼 내가 그때 왜 그런 감정이었는지를 조금씩 알아차렸다. 감정을 인식한 아이는 감정의 주인이 된다. 불편한 감정을 다독이고 긍정적인 감정을 갖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