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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18. 2022

꽃 한 송이의 기억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왔다.

입원한 지 어느덧 11일째.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치료를 받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가만히 누워있는다.  하염없이 책을 보고 하염없이 폰을 뒤적이고 이런저런 글을 썼다 지웠다 하는 별 볼 일 없는 시간들. 그럼에도 여전히 지치고 여전히 배고픈 신기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문득, 근처에 살고 있다는 고교 동창이 생각났다.

"친구야. 나 이 근처에 놀러 왔어. 혹시 시간 되면 같이 놀자."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톡을 보내 놓는다. 저녁 무렵 친구에게 답문이 온다. 얼른 통화버튼을 누른다. 이런저런 사정 얘기를 하니

"어우야. 나는 네가 근처에 술 마시러 왔나 했지" 한바탕 웃음으로 넘기고 얼른 내일이라도 보러 오겠다는 친구의 반가운 목소리에 내내 가라앉았던 기분이 좋아진다.


친구가 왔다.  작은 쇼핑백을 내민다. 과일, 과도, 일회용 장갑에 작은 꽃병까지 알뜰한 주부 9 단의 센스를 발휘해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만 옹기종기 잘도 담았다. 무엇보다 예쁜 음료수병에 앙증맞게 꽂은 파스텔톤 꽃이 제일 마음에 든다. 물에 무엇을 넣었는지 며칠이 지나도 시들지도 않는다. 오며 가며 꽃을 보기만 해도 칙칙한 병실에 싱그러움이 쫘악 퍼지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짬짬이 그녀는 마실 오듯 면회를 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딱 맞는 주제로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가 쉼없이 이어진다. 까탈스러운 사춘기 아이들의 황당한 이야기, 연세 많으신 부모님 병시중과 아이 같은 투정 이야기, 중년이 되어 부실해진 우리들 몸에 찾아든 온갖 질병 이야기 등등 자세히 하지 않아도 '아'하면 '어'하고 받아치는 친구와의 수다는 언제나 즐겁다. 하지만 우리들의 대화는 이제 어딘가 모르게 웃픈 구석이 있다. 이제 막 아이들 다 키우고 조금 편해질 타이밍이지만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부모, 자식, 남편, 우리 자신까지 챙기며 삼중고에 지쳐 해탈한 경지에 올라서 그런지 자포자기해서 그런지 알 수 없는 웃픈 미소가 정신없는 대화 속에서도 몇 번씩 스쳐 지나간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보다  지친다고 투덜대는 것보다 쉬고 싶다 하소연하는 것보다 웃고 있어도 더 아프고 무심한 척해도 더 속상한 공감이 파고든다. 진한 동지애가 내 마음 깊숙이 스미어 든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 참에 내가 있는 병실의 한 자리를 내어 같이 쉬다가자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아주 오래된 피로감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데 애써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먹고 싶다던 빵을 사서 툭 건넨다. 습관처럼 사람을 챙기는 내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간절히 고맙고 또 슬프다. 몇 분 앉아있다 황급히 떠나는 친구의 쓸쓸한 뒷모습이 내내 잊히질 않는다.


여고시절. 내 친구는 말도 많고 의욕과 호기심이 넘쳤다. 깔깔거리며 동네에 굴러가는 낙엽을 보고  해맑은 소녀였다. 모습은 그대로인데 무언가 중요한 것 하나가 빠져나간  그녀의 모습이 내내 아프다.


병실에 돌아와 슬그머니 앉으니, 그녀를 닮은 꽃 한 송이와 눈이 마주친다. 옛 시절을 회상하듯 여전히 고운 빛으로 얌전한 미소를 내게 건넨다.

괜찮아.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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