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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Nov 10. 2022

[함덕] 하나만 투어 (1)

디스크 환자의 살금살금 제주여행기 (1편)

네 번의 입원과 퇴원, 길고 긴 치료기간. 어느 날 문득, 바다가 나를 부른다. 어서오라고 속삭이환청이 들리더니 그동안 참았던 역마살이 슬슬 머리를 든다. 푸른 바다가 보고 싶었고 청량한 자연의 향기를 느끼고 싶었다. 이름하여 환자들의 여행, 환자 투어를 나선다. 이번엔 아이들 없이 홀가분하게 엄마 둘이 의기투합했다.

짐을 싸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

여유로운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산다. 집에서 김포공항, 공항에서 수속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내리고 숙소에 가는 일정도 만만치 않으니 자칫 욕심을 부렸다 잠잠해진 통증이 재발하면 낭패다. 최소한의 짐을 싸고 최대한 덜 움직이는 노선으로 세심하게 코스를 계획하고 움직인다.

딱 한 곳만 제대로 보기, 하나만 투어.

숙소는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수욕장 바로 앞. 비수기라 오션뷰 방도 싼 가격에 얻었다. 창을 여니 바다가 눈앞에 떡~! 난생처음 오션뷰, 감지덕지 침 흘리며 푸른 바다를 넋 놓고 원 없이 바라본다.

난생처음 오션뷰 룸

바다는 늘 다채로운 푸른빛으로 마음을 홀린다. 노을빛 붉은 기운이 도는 바닷가는 고즈넉이 쓸쓸한 마음을 녹여낸다.

노을빛 저녁바다
바다를 품은 자리, 카페 델문도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며 산책을 한다. 해변 끄트머리에 바다와 어울리는 카페가 빛난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바다를 품은 자리에 앉아 바라본다.


 아니, 이것은 월식 아닙니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개기월식이 있는 날, 바다 너머 서우봉 위에 빛나는 점처럼 달이 걸려있다.

서우봉 위의 보름달
개기월식을 생중계로


말로만 듣던 월식,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보름달이 점점 줄어들었다가 다시 보름달이 되는 천문현상을 직관하니 신기할 따름. 둥근달이 검은 그림자에 가려 사라지는 과정 전체를 보게 되는 영광을 이곳 제주에서 갖게 되었다.

걸어가는 늑대, 전이수 갤러리

휘적휘적 게으른 걸음으로 서우봉 산자락을 마주하며 걷다 보니, '걸어가는 늑대: 전이수 갤러리'에 다다른다. 검색으로 이미 익숙해진 이름이라 마감시간이 불과 몇 분 안 남았다는 말을 듣고도 과감하게 들어간다.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익살스러운 표정과 언뜻언뜻 따뜻한 장면을 포착한 그림들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문 닫는 시간이 다되어 서둘러 나오는 길, 출입문에 쓰인 글귀가 마음에 남아 얼른 담아 나온다.

상냥하고 따뜻한 말에는 꽃이 핀다.
고맙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널 믿는다. 참 잘했다. 살아가면서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말은 생각보다 소박하다.

-이수 생각-


이 시간을 허락해 준 가족들의 배려, 느닷없는 제안에 흔쾌히 따라나서 준 여행친구, 김모 여인. 같이 못 갔지만 자 투어를 실시간 생중계로 함께 해준 이모 여인, 2박 3일 동안 딱 좋은 바람과 온도, 총천연색 바다를 보게 해 준 조물주께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며 소박한 첫날 일정을 마무리한다. 내일은 서우봉 반대편 등대까지 어슬렁거려보기로 어설픈 계획을 세우고 맥주 한잔으로 여유를 부리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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