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침대는 안녕하신가요?

삼남매 공존일기 : 오늘도 말없이 떠난 너에게

by 화요일
오후 3시 30분


띠띠띠리릭~~! 중1 아들 2호님이 왔다.

아들 : 엄마. 치킨!

나 : 오늘 잘 지냈어?

아들 : 엄마 돈죠.

나 : 우리 대화 좀 하면 안 될까?

아들 : 지금 하고 있는데.

나 : 질문과 답이 전혀 안 맞잖아.

아들 : 엄마 닮아서 그러는데.

나 : 야! 말이 왜 그래~너는 무슨 말 못되게 하는 학원 다니냐?

아들 : 흐흐흐

아들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 괴상한 웃음을 짓는다.


띠띠띠리릭~ 누군가 왔다.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중2 큰딸 1호다.

큰딸 : 안녕.

나 : 딸 잘 지냈어?

큰딸 : 응.

휘리릭 화장실로 사라진다.


띠띠띠리릭~

막내 : 엄마~~~

나 : 어이구. 우리 딸 왔쪄요~

막내 : 엄마. 나 쉬~


아이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살고 나는 늘 같은 자리, 안방 침대에 멈추어 있다. 아이들은 왔다 갔다 한다.


저녁 8시

초2 막내는 껌딱지처럼 내 곁에 붙어있다. 만화책을 보는지 색종이를 접는지 알 수는 없지만 늘 옆에서 논다. 큰 딸이 들어와 침대 끝을 밀치고 눕는다.


큰딸 : 우리 잼민이 에고 귀여워~

(막내의 볼살을 꼬집는다.)

막내 : 하지 마. 아파~

나 : 1호야. 이뻐하는 건 알겠는데 잼민이 나쁜 말인 거 같은데 안 쓰고 꼬집지 않으면 안 될까.

큰딸: 엄마, 미워. 나한테만 그래.

나 :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그 말 들으면 기분 좋겠냐고~

큰딸 : 아니,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


이 순간 오은영 박사님이 나타나신다면 "잠깐만요. 여기 잠깐 볼게요." 하면서 멈추겠지. 그리곤 뭐라고 하실까? 잠깐 생각하다가 나는 나대로 울퉁불퉁 딸에게 시종일관 사랑의 메시지나 전해야지 생각한다. 던지면 바로 튕겨져 나오는 스쿼시 볼처럼 받아쳐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지금은 그저 바보 온달이 되어 꾸준히 짝사랑 메시지를 보낸다.


나: 큰딸, 엄마랑 있고 싶어서 왔지?

큰딸 : 아닌데, 3호 이뻐서 왔는데.

나: 아닌 거 같은데. 그럼 엄마 싫어?

큰딸 :... 3호야. 이거 재밌겠다.

막내 : 하지 마. 아파~

큰딸 : 아니. 내가 뭐 어쨌다고

나: 1호야. 그래도 엄마가 사랑해.

큰딸 : 응.


그 순간 갑자기 덩치가 큰 아들 2호가 몸을 날려 누나를 누른다. 누나의 분노의 샤우팅이 시작되고 막내는 누르지 말라며 소리 지른다. 각자 자기 방이 있는데도 꼭 이 시간이면 안방으로 몰려와 육탄전을 벌이곤 한다. 결국, 아빠의 호령으로 사태는 정리된다.


무한루프로 돌아가는 아이들과의 시간, 안방 육탄전은 아빠의 중재로 아들은 퇴장 당하고 큰딸은 막내를 사랑하는 표현인지 괴롭히는 짓인지 모를 행동을 수십 번 하다 침대 끝에서 매달려 잠들었다.


오전 8시

오늘 아침, 어제 늦게 깨웠다고 짜증 부리던 막내가 생각나서 아침식사 준비를 하다가 부랴부랴 막내를 깨우고 하던 일을 마무리한다. 막내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잠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은 않고 계속 징징거리고 있다. 결국 후다닥 뛰어가 막내를 안고 달랜다. 그리고 귀속말로 속삭인다.


막내야. 네가 제일 잘한 게 뭐였지?
응. 엄마 딸로 태어난 거,
그게 제일 잘한 거야.
사랑해.



징징거리던 목소리가 잠잠해진다. 나도 막내를 더 꼭 안아준다. 어느 순간, 허리 끝 통증이 몰려와 침대 위에 살짝 내려놓는다. 막내는 잠시 뒤척이다가 냉큼 화장실로 달려간다.


2호 아들이 나왔다.

나: 아들, 잘 잤어?

아들 : 치킨~


1호는 아직도 꿈나라다. 얼른 들어가 깨운다.

나: 1호야. 8시 넘었어. 일어나. 사랑해!


서둘러 밥을 먹이고 나도 먹고 대충 치우고 씻으러 간다. 씻고 나왔는데, 집이 조용하다. 어제저녁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 엄마한테 꼭 인사하고 가라고 아빠가 당부해두었지만 그 말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지 오래. 일찍 일어나서 여유 있게 준비하고 다정하게 인사도 하고 포옹도 하고 가면 좋으련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바람일 뿐이다.


오전 9시: 아이들이 떠난 시간


세 명의 아이를 키운다. 셋의 취향도 성격도 아롱이다롱이 다 다르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나와 아이들을 되돌아본다. 나는 네 딸의 맏언니로 살면서 엄마에게 어리광이라는 걸 부려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의 투정이 참 귀한 경험이라는 걸 안다. 세 아이의 투정을 모두 감당해내는 것이 힘들고 벅찰 때도 있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투정을 받아줄 수 있을까. 막내는 혹시 수학 문제가 어려워 곤란했거나 친구와 속상한 일이 있지 않았을까, 큰 딸은 엄마가 동생만 이뻐하는 것 같아 서운했겠고, 아들은 살을 빼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느라 며칠간 저녁밥을 못 먹어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을 거다. 가만히 생각하니 아이들의 울퉁불퉁 튀어나온 감정과 그들이 겪었을지도 모를 장면과 상황들이 가만히 그려진다. 엄마라는 사람은 아이들의 모든 감정을 받아주는 침대 혹은 이불같은 존재일까.



한적한 오후 : 나를 비우고 채우는 시간


분노도 화도 서운함도 피곤함도 엄마라는 푸근한 이불 위에 툭 던져 놓으면 아이들에겐 무거운 감정들이 사라지게 되겠지.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내 속에 쌓인 감정들을 분리수거할 시간이다. 최고의 처방은 친한 친구를 만나 속상한 것을 말하고 나누는 것이다. 수다라는 것은 참으로 묘하다. 신나게 말하고 나면 불편한 감정이 금방 사라지거나 보다 객관적으로 내 생각을 볼 수 있게 된다. 장담컨대 수다는 무병장수의 필수 요소이다. 호로록 마시는 씁쓸한 커피 한잔으로 속상했던 감정은 사그라지고, 주고받는 대화 속에 내 안에 쌓인 불편한 감정들도 날아가는 신비로운 경험.


햇살 좋은 날에는 보고 싶었던 전시회를 간다. 그림 한점 한점 찬찬히 살펴보며 작가의 생각을 유추하며 걷는다. 이렇게 감상하다 보면 속상했던 묵은 감정은 사라지고 어느새 상큼하고 새로운 기분이 찾아든다. 시원한 바람과 즐거운 외출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니 엄마품 이불 부드러운 솜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오늘도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없이 아이들은 떠났다. 언제쯤 엄마에게 몸을 돌려 다정히 인사해줄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바보 같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지난밤 엄마라는 이불 위에 불편한 감정 다 떨쳐냈으니 더욱 가벼워진 마음으로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겠지. 이런 서툰 기대로 안심한다. 오늘도 오후 3시쯤, 아이들은 지친 몸을 붕 띄워 안방 침대에 몸을 툭 던지며 달려들겠지. 앗, 시간이 없다. 서운한 마음은 커피 한잔에 날려버리고 몽글 몽글 기분 좋은 시간으로 폭신폭신한 솜이나 채우러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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