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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Nov 28. 2022

지독히도 사랑스러운 까마귀들의 우정

우정의 글쓰기

나에겐 30년지기 친구들이 있다. 어린시절, 같은 동네서 골목을 휘젓고 다니던 우리는 름하여 "누렁까마귀". 한 친구가 "누렁 까마귀!"를 외치면 다른 친구들은 한 목소리로 "까악 까악"  소리치며 창피한 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던 시끄러운 무리다.  누가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도, 왜 지었는지도 기억않나지만 지금은 나이 50이 다 된 누렁 까마귀들이 또 모였다. 이름값이라도 하듯이 참으로 부산스럽고 시끄럽다.


늘 함께 하던 우리
출처:IT조선(2011.01.18)


가파른 언덕 위에 있던 중학교는 누렁 까마귀 전성시대의 주요 활동장소였다. 방과 후에는 늘 작은 고무공 하나를 들고 미니 발야구 "짬뽕"이라는 경기를 했다. 10명 남짓 되는 친구들이 누구 하나 빠진 적도 없이 방과 후 늦은 시간까지 함께 놀았다. 학원이나 과외라는 그 흔한 말을 그때는 듣기도 어렵고, 하기힘든 시절이었다. 먼저 종례가 끝난 친구들이 있다면 그들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잔뜩 사서 너도 한입 나도 한입하며 나눠먹으며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곤 했다. 지금 이런 코로나 시대엔 상상도 못 할 풍경이지만, 그렇게 조금씩 나눠먹는 그 맛을 잊을수가 없다. 요즘 먹는 과자에 비하면 너무 딱딱하거나 너무 달거나 원료도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지그 시절엔 참으로 귀했고 맛있었다.


골목골목 아지트를 찍고 돌아 집으로
자료사진 (by 김포댁)


 지금은 번듯한 서울 중심의 고급 아파트가 꽉 찬 동네가 되었지만 30~40년 전쯤엔 시골과 별 차이도 없을 법한 그런 동네에 우린 살았다. 동네 어귀 산을 올라가는 언덕에 집들이 올망졸망 빽빽하게 있었고, 한없이 연결되는 계단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했더랬다.


2009. 7월호 레이디경향

방과 후에 여나무 명의 아이들이 무리 지어 20~30여분이나 걸리는 하굣길을 같이 걷곤 했는데, 지나가며 한 명씩 작별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있었고 어쩌다 운이 좋아 누구네 집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는 날엔 그 집 반찬이든 라면이든 뭐든 끝장이 나는 날이 되었다. 누구네 집은 김치가 맛있고 누구네 집은 양념간장이 맛있고 누구네 집은 감자채 볶음이 맛있어서 우린 언제 어디서든 뭐든 먹고 또 먹고 웃고 또 웃었다.


시끄러운 까마귀의 귀환
야. 그거 좀 치우고 먹으면 안 되냐?

아니, 우리 지금 먹고 있는데 꼭 치워야겠니?

잔소리 싫어 도망 왔더니 더한 잔소리꾼이 있네.


낙엽만 굴러도 깔깔대던 10대는 낙엽만 떨어져도 짜증 내는 40대 중반 갱년기 아줌마들이 됐다. 티격태격 아주 시끄럽다.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누구든 불편한 걸 참치 못하고 기여코 한마디를 하고야 만다.  까칠하고 시끄러운 누렁 까마귀 5인방이 되어 다시 모인 것이다.


밤새 떠들고 놀자던 야심 찬 계획은 깔끔과 방역을 최우선으로 하는 친구와 여유와 편안함을 최고로 여기는 친구들의 의견차로 피로한 밤을 보내고 서로 다른 시간에 자고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나는 아주 이상스러운 스케줄로 바뀌어 배가 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그렇듯 먹는 거 하나는 아낌없이 먹고, 쉬지 않고 리필하며 풍족하고 꽉찬 하룻밤을 만들어냈다.


결혼하는 시기도 달랐고 아이들 연령대도 다 제각각에, 하는 일도 다 다른 기센 아줌마 5명. 일년에 한 두번씩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것만 해도 뉴스에 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을 미워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시댁에 김장하러 가는 부담에도 시간을 쪼개 달려온 친구가 있는가 하면, 퇴근 후 지옥철을 한 시간 남짓 마다하지 않고 목숨 걸고 타고 온 여인도 있다. 이 모든 행사를 주관하고 독재비스무리하게 컨트롤하는 속초사는 까마귀 대장이 있고, 우리의 고향을 지키는 간호사 친구는 귀한 비번 아침부터 친구들이 좋아하는 빵을 구워서 한가득 싸서 들고 오는 정성스러움을 보였다.

핸드메이드 디저트빵, 흠~맛나다!


한 없이 무너졌던 어느 날


지난달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 아이처럼 울었고 바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 내 친구 까마귀들은 그들 나름의 날갯짓으로 날 위로해주었다. 갑작스러운 슬픔에 밤새 칭얼거린 나를 한 여인은 늦은 밤 전화통화로 달래 주었고, 다른 한 여인은 기나긴 퇴근길 못난 내가 걱정되어 안부전화를 해주었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속초 사는 대장님은 고속버스로 쓩 달려와 강남서 제일 맛난 버거를 사주며 징징대는 내 입을 틀어막아주며 토닥여주었다. 나보다 먼저 갑상선암을 이겨낸 김포댁은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서 좋은 병원, 좋은 의사까지 열정적으로 알아봐주는 수고스러움을 보여주었고. 다시 생각해도 고맙고 감사하다.


출처: 밥상머리뉴스


오래된 장은 새까만 색에 볼품없고 냄새도 아주 고약하다. 하지만 그 깊은 맛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먹고 돌아서면 생각나고, 시간이 지나면 또 고 싶고. 이 까마귀 친구들은 30년 오래 묵은 장맛 같은 친구들이다. 어떤 때는 삭을 데로 삭아 거친 말로 '까악까악' 하다가도 금세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그녀들. 이들은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양념이 되어버렸다. 엇그제도 불만, 불평을 내뱉고 헤어졌지만 누군가 "누렁 까마귀!"를 외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까악 까악"  아주 시끄럽게 달려올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그곳에 들이 나타날 것임을 난 알고 있다. 참 지독히도 사랑스러운 그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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