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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08. 2022

촌사람들, 종로 바닥을 뒤집어놓으셨다.

The 1st 백.백.백일잔치 × 국립현대미술관

 따스한 12월 오후. 작년에는 새벽에도 광클릭에도 구할 수 없던 표를 운 좋게 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특별전을 보러 간다. 때마침 같이 쉬는 동지들이랑 일정을 맞춰 즐거운 나들이를 준비한다. 오늘부터 만나는 사람들과는 백. 백. 백일잔치도 같이 하기로 내 맘대로 결정한 터라 이벤트 소품도 가방에 살짝 챙기고 길을 나선다. 오래간만에 경기도 촌사람들이 상경한다고 부랴부랴 준비하고 초행길에 헤매고 사건사고가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통에 잠잠했던 카톡방이  오랜만에 생기가 돈다.


자연을 사랑한 이중섭

 이중섭의 그림은 2016년 덕수궁 미술관, 작년에는 제주도 이중섭미술관, 석파정 미술관에서도 봤었다. 그런데 볼 때마다 더 머물게 되는 그림이 있다. 오늘은 이 그림이다.

닭과 병아리, 1950년대 중반

 간단한 선과 단순한 형태로 닭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화가 난 듯 꼬꼬 꽥~소리치는 수탉이 보이고 옆에서 멍하니 따르는 병아리 두 마리가 다. 멈춘 그림인데도 실제 장면이 머릿속에 영화처럼 그려지고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살아있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초록색과 붉은색 두 가지만으로 완성한 엽서 크기 작품이다. 아이 하나가 말인지 기린인지 모를 동물의 등에 타서 나뭇잎을 따서 고 있다. 동물도 식물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처럼 서로 잘 어우러져있으니 그림이 편안히다. 중섭의 그림은 쉽지만 특별함이 있고 평범한 소재지만 위트 넘치는 디테일이 있다. 말에 탄 형아가 "넌 못 올라오지? " 놀리니까 바닥에 누운 동생이 "나도 태워줘~!" 하며 떼를 쓴다. 저 멀리서 어린 동생 둘이 "형아들, 엄마가 밥 먹으러 오래~"하며 소리 지르고 있고. 형아들은 이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듯 신나게 놀고 있다. 잠깐 머물러 자세히 보니 이야기도 그려지고 아이들의 대화도 전해진다.


 중섭의 그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 복숭아, 게, 새, 닭 이런 것들이 주인공이다. 아이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그림 속에서 신나게 놀고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인다. 무엇이 그를 사소한 일상 소재에 집중하게 만들었을까?


은지화


일본으로 떠나보낸 가족에 대한 그리움


 전시를 쭉 살펴보니, 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것이 그를 작은 일상 속 소재에 집중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아들들과 눈앞에 보이는 바다, 산, 들에서 뒹굴며 맘껏 놀고 싶은 아빠의 소원 담아 그림을 그리고 같이 즐기고 싶은 작은 것들을 소재로 언젠가 만날 것을 기도하며 스케치하고 그리고 채색한 게  아닐까?


편지화

 특히, 아들에게 보낸 그림에는 부성애가 절절히 느껴진다. 하얀 비둘기를 정성껏 그려 안정과 평화의 소망을 담아 보내고, 꽃은 붉게 색칠해서 열정과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겠지?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속상하고 그리운 마음토닥이듯 어루만지는 듯한 손길이 유난히도 따스하게 느껴진다.


 그림을 감상하고 나오니 겨울 하늘이 유난히도 파랗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조용히 손짓하는 길가의 외로움이 깊고. 잔잔한 겨울 햇살이 너그러이 빛을 고루 내어 따뜻한 기운을 널리 뿜어내니 더없이 편안하다.


부끄러운 자축파티, 따스한 손길들

 점심을 먹고 삼청동 거리를 산책하다가 볕이 좋은 커피숍에 찾아들어간다. 가방을 열어 주섬주섬 준비한 것들을 꺼내놓으니 너도나도 십시일반 도와 뚝딱 백일상 하나가 떡하니 차려진다. 고맙게도 구독자수가 104명을 기록해서 백. 백. 백일잔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천명, 만 명보다 귀한 104명이다. 밤새 고민하고 준비한 식순에 따라 하나씩 진행을 해본다. 다른 사람을 위한 파티, 모두를 위한 파티는 준비해봤지만 나를 위한 파티는 처음이다. 어색하지만 모두의 도움으로 하나씩 해본다. 먼저 "축가 부르기"부터~. 재미로 판은 깔아놓았는데 주인공은 자꾸 부끄러워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백일 축하합니다. 백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화요일 백일 축하합니다.


화요일의 글은 나에게 000이다.


1차 백.백.백일파티 구독자님들

첫 번째 질문은 '나에게 화요일의 글은 무엇이었나요?'였다. 잠깐 고민하는 모습이 지나가더니 한 명씩 수줍게 얘기한다.

 

탄산수였다. 내가 느낀 것을 시원하게 표현해주기 때문에. 내가 느끼고 본 것을 딱 들어맞게 표현해줄 때 탄산수를 마신 것처럼 청량감을 느꼈다.


인생극장이었다. 인간의 희로애락, 느끼는 감정을 다양하게 보여주어 울기도, 웃기도, 설레기도 하는.


자화상었다. 말로 글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나의 느낌, 감정, 생각들이 화요일의 글에서 잘 나타나기 때문에~


기분 좋은 말이다. 내 글이 누군가에겐 탄산수처럼 톡 쏘는 맛을 느끼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고, 때로는 자신을 볼 수 있는 그림이 되기도 하면서 공감되고 있다는 말에 안심한다.


앞으로 화요일은 000했으면 좋겠다.


한 여인은 퇴직하라고 했다. 아니, 퇴직한 것 처럼 가르치는 일에 힘을 빼고 글을 쓰라고 했던 것 같다. 옆에 있던 여인은 절대 내가 그럴리가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아마도 나는 여기저기 챙기며 오지랖을 떨며 또다시 바쁘게 살거라고. 몇년간 지지고 볶은 터라 안봐도 내 행동이 그려지나보다. 아니라고 거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건강하라고. 그 말을 단단히 했다. 난 알겠노라고 얼른 고개를 끄덕였고. 


 이후로도 우리는 한참 동안 글과 그 속에 감정들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백. 백. 백일파티 첫날의 해는 뉘엿뉘엿 지고. 오늘따라 유난히 해가 빨리지는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서둘러 돌아오는 길, 막히는 퇴근길이 반가운 건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이 남아서겠지? ^^


여러분에겐 화요일의 글은 무엇으로 다가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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