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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16. 2022

2022년판 <전원일기> 업데이트 완료

The 5th 백. 백. 백일잔치 × 육아 동지님들

여인 2: 화요일님,
우리도 백일떡 먹을 수 있는 건가요?

나: 네, 예약하셔요.

여인 2: 근데 저 떡 싫어하는데 빵은 안 되나요?

나: 아. 네~~


카톡 프사에 지난 백. 백. 백일잔치 떡 사진을 올려놓으니 동네 엄마가 알아차리고 톡을 건넨다. 'SNS시대라 손 안 대고 홍보가 저절로 돼버리는 클래스~'


 허리보호차 하루에 한 팀만 만나기로 했던 나만의 규칙은 어느새 무너지고 순식간에 새로운 약속을 잡고 있다. 이런 충동적인 만남은 나름의 재미가 있으니 또 거부할 수가 없다. 며칠 후, 동네 엄마 3명이 각자 근무가 끝나고 우리 집에 모인다. 이번에는 나도 좀 편해보려고 아메리칸 스타일로 각자 먹을 것을 싸오는 포트럭 파티(potluck)를 제안해봤다. 모두 흔쾌히 오케! 이럴 때 보면 세상 쿨하다~


우리가 누구? 배달의 민족~


 만나는 날, 카톡 알람이 계속 울린다. 비 온다고 음식 사 오기 힘들다고 뭐라고 뭐라고 얘기하느라 카톡방 시끄럽다.

여인 1 :다들 뭐 사가요?

 여인 2 : 비가 와서 못 사가요 ㅜㅜ

여인 1: 언니 우리 그냥 시켜먹고 나눠서 돈 내면 안될까?

나: 어이구. 그럼 그렇지. 네~그러셔요.


 아메리칸 스타일은 안드로메다로 이탈! 결국 배달의 민족답게 코리안 스타일로 급변경하고 배달 앱으로 이것저것 주문한다.  와중에 드레스코드는 그린 & 레드를 급조해서 단단히 준비해왔. (드레스코드 맞춰입으면 입장 불가라고 엄포를 놓은 건 안 비밀) 어느샌가 주섬주섬 귀여운 소품들을 꺼내 야무지게 셀프 파티 준비를 하고 있다. 미우나 고우나 해도  시간 동안 마을공동체를 같이 해온 세월이 있어서 그런지 어이없는 요청도 찰떡같이  믿고 따라준다. 알록달록 유치한 머리띠며 앙증맞은 크리스마스트리 귀걸이까지 하고는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취한다. 그런데 찍어주는 아들도 찍히는 우리도 웃겨 죽는다. 일단 이렇게 활짝 웃었으니 파티의 시작은 성공적 ~^^

우주최강 동네엄마들
피할 수 없는 독자와의 인터뷰


여인 1)
화요일의 글은 인생이다. 가장 인상적인 글은 '안양천 세 번의 봄' 내가 출연했기 때문에~^^
화요일은 승승장구할 것이다. 단 시간에 100편 쓰다니 대단하다. 우리들 얘기가 있어서 좋다. 책모임 이야기가 좋다. 현학적이다.(말이 어렵다는 뜻) 그럼에도 솔직하게 써서 놀랐다. 글 쓰다 보면 미화하기 쉬운데.

여인 2)
화요일의 글은 영양제다. 몇  글을 읽으면 새로운 기운을 얻었다. 책을 읽고 쓴 글이 좋았다. 같은 글을 읽고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작가 화요일을 계속하다 보면 만개할 것이다.
다만 너무 급하게 가지 말고 속도 유지하며 조절을 잘했으면...

여인 3)
화요일의 글은 비타민이다. 특히, 내가 나온 글이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카톡 프사에 이쁜 사진이 올라와서 아는척했더니 그게 글이 될 줄이야~
앞으로 화요일을 도서관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도서관에 '화요일'이름적힌 책이 떡하니 서가에 꽂혀있을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드러나는 게 쉽지 않은데, 주변의 반응에 흔들리지  멘털 딱 잡고 강단 있게 썼으면 좋겠다.  


'현학적'이라는 말의 뜻을 아시나요?


순수하고 투명한 토마토 같은 여인 1은 나의 글이 "현학적"이라고 했다. 나는 무식해가지고 그 뜻을 몰라 찾아봤다고 하니 어쩔 줄 몰라한다. 자기가 한 말의 뜻은 첫 번째 뜻이 아니라 그냥 말이 어렵다는 뜻으로 한 거라며 여기 이렇게 빨강 동그라미의 뜻으로 말한 것이니 오해 말라며 몇 번이나 미안하다 한다.


"현학적"이라는 말의 뜻

그 모습이 내겐 너무 웃기고 귀엽다.  내 글이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학식이 있음을 자랑하는 것"이라는 현학적인 뜻은 여인 1에게 반사하기로 하고 웃픈 에피소드를 황급히 마무리한다. 덕분에 현학적이라는 말 뜻은 절대 못 잊을 것 같다.


아줌마들의 우정이라고 무시하지 마시라~

 모르는 사람들은 전업주부들은 집에서 애들 보고 살림하고 모여서 수다나 떠는 한심한 엄마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린 지난 6년 동안을 매달 두 번의 토요일을 아이들과 함께 책과 체험하는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진짜 심한 코로나 상태였던 몇 주 빼고 한 달도 빠짐없이 쭉~~


아이들과 함께하는 독후활동 시간


  여인들은 각자의 스타일로 열심히 엄마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해 온 엄마 장인이다. 까탈스러운 아이들의 개성에 맞춰 집에서 책만 읽혀 한글을 떼게 하, 수학과 영어셀프로 가르친 여인 1, 외동아들을 키우지만 만인의 엄마로 누구든 '엄마'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달려가는 민원 처리의 여왕이면서 세상 시크한 츤데레 여인 2, 삼 남매 키우면서 남편 내조도 1등, 깔끔한 살림도 1등, 아이들의 복잡한 스케줄도 완벽하게 관리하는 살림의 여왕이자 영원한 총무인 여인 3.


그간 많은 엄마들이 마을공동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이제 넷이 오붓하게 남았다. 아이들 어릴 때는 운전도 못해서 버스에 지하철에 배낭 가득 간식을 들고 메고 애들 2~3명은 기본으로 걸리고 달래 가며 조선 팔도의 체험지를 누비던 열정적인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던 육아 동지들이다.


독립문 역사체험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하라면 엄두도 못 낼 이다. 둘째 아들과 같은 나이의 아들을 둔 엄마로 만나, 아이들 초1 때부터 동사무소에서 책 읽고 모임을 하던 인연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즐겁고 보람된 시간도 많았지만 때때로 힘들고 고단한 때도 있었다. 그런 감정의 풍파와 고비를 겪고도 지금까지 연을 유지하는 건 요즘 같은 시대에 대단한 일처럼 느껴진다.


힘들 때도 같이 한다는 건.

 지난 2년을 코로나때문에 비대면 시대로 살아서 그런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다들 점점 심해져서 그런가. 이웃 간의 정을 나누고 오며 가며 마실 삼아 누구네 집 들러 한두 시간 노닥거리는 여유 있는 모습도 보기 힘든 귀한 풍경이 되었다. 아파트 한 동에 딱 두 집씩 마주 보는 단출한 구조여 철문 하나 덜커덩 단단히 잠가두면 누가 가는지, 누가 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마주치는 시간이나 놀이터에서 잠시 오가는 시간만으로만 이웃 간의 정을 쌓기는 참으로 어려운 도시생활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을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참 많은 일을 도모해왔다. 밤새 고민을 털어놓으며 술잔을 기울일 때도 있었고 아이들과 독서 체험과 수업을 상의하느라 수시로 만나고 얘기하는 시간도 많았다. 많은 일을 같이 하다 보니 서로의 상처도 서로의 아픔도 약점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갈등의 시간도, 잠수의 시간도, 번아웃의 시간도 있었다. 그 깨알 같은 시간을 함께 하고 함께 견뎌내고 기다려 준  자체가 참 귀하고 소중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2022년판 신 전원일기 무한생산 중~


 힘들면 도망가고 어려우면 피하는 관계의 편리성이 난무하는 21세기에 지지고 볶으며 뭔가를 같이 하려고 애썼던 우리들. 서로 갈등이 생기면 울며 불며 해명하고 누군가 슬럼프에 빠지면 멀찍이 떨어져 기다려주고 힘들다고 도망가면 다짜고짜 찾아가 왜 그러냐고 찾아 묻는 질척거리고 올드한 스타일의 관계가 요즘 같은 시대에  있을까.


서로 각자 먹고 싶은 거 사 가지고 와서 깔끔하게 먹는 포트락 파티며 각자 먹은 것만 계산하는 요즘 사람들의 더치페이 개나 줘버리고, 열혈 총무 하나 임명해두고 모두 같이 먹고, 모두 같이 치우고, 모두 똑같이 돈을 나누는 인연의 촌스러움을 2022년도에도 재생산중이다. 그것도 경기도 최대 부동산 투기과열지역에서. 1980년대 유행하던 드라마 <전원일기>에나 나오는 질척거리고 인정 넘치는 에피소드는 지금 이곳에서도 절찬리 방영중이다. 내가 '얼른 이사 가야지'하며 앓는 소리 해도 굳이 따라와 같이 놀자 할 거란 걸 알기에 오늘도 난 일찌감치 포기하고 18번 메뉴 어묵탕을 푹 끓여내놓는다. 밤 9시에 일어나자는 약속은 쥐포에 귤에 집안 구석구석에 있던 먹거리를 순서대로 처리하고 설거지를 말끔히 하고 나서야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참으로 끈적끈적하고 매력적인 인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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