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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14. 2022

(글을) 쓸수록 투명해진다.

The 4th 백. 백. 백일잔치 × 동아리 <우산>

 

 2021년 4월 광명 도서관 글쓰기 강좌에서 인연을 맺은 후, 이제 2년 차가 된 글쓰기 동아리 <우산 : 우리 삶에도 우산을 씌워 줄까요?>와 연말 모임 겸 네 번째 백. 백. 백일잔치를 다.


글로 연대하는 힘


 지난 이 년간 수없이 많은 주제로 글을 쓰고 나누었다. 명절이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잠깐 쉰 적은 있어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누면 나눌수록 뭔가 더 끈끈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일까? 글로 나누는 힘은 생각보다 강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어린 시절 외로움과 슬픔을 떠올리는 글을 읽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어떤 날은 뼛속까지 남아있는 분노의 글에 공감하며 넷이서 흥분해서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어떤 날은 즐거운 경험을 나누며 나중에 꼭 같이 가자며 소녀같이 설레어하는 날도 있었다. 글로 감정을 나누고, 위로하고, 분노하고 공감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더욱 단단하게 서로를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이것을 연대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고비는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각자 정해진 주제에 맞게 글을 써서 온라인 카페에 먼저 올리고 각자 읽어본 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모여 자신의 글을 읽고 감상평을 나누고 부족한 점에 대해 조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이 서로에게 많은 힘이 되고 글을 더 잘 쓰게 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다소 직설적인 비평이 누군가의 말 못 할 상처를 건들거나 가차 없이 솔직한 피드백에 감정을 다치기도 했다. 위기가 온 것이다. 그렇다고 우린 멈추지 않았다. 상처받은 이는 있는 감정 그대로를 용기 내 고백했고 글벗들은 귀를 열고 마음으로 받아줬고 인정했고 이해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마음을 열어 위기를 넘어다.


우리의 일 년을 생각해봐요.

 

 우리 네 명의 회원은 각자 다른 색깔과 개성으로 글을 쓴다. 우리 네 명은 작가이면서 서로에겐 가장 열렬한 독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독자와의 인터뷰를 네 명 모두가 돌아가며 한다. 서로의 글을 가장 열심히 읽어준 독자인 우리 서로에게 피드백을 한다.


작가 화요일에게 하고 싶은 말


뽀닥님) 화요일의 글은 책임감이다. 꾸준히 쓰는 것에 경외감이 든다. 앞으로도 생각한 그대로 할 것이다. 지금처럼 꾸준히 한다면.
작년 12월 이후 글 들이 좋다.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난 후, 글쓰기 실력이 눈에 띄게 성장한 게 보였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충고의 말을 좀 더 여유롭게 받아들인다면 좋겠다.

안도 고양이님) 화요일의 글은 계획적이고 구체적이다. 뭐든 생각을 많이 하고 쓰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뭘 할지, 뭘 해야 할지 아는 사람.
재밌었던 글은 <수상한 병원> 시리즈. 실제 에피소드라 더 좋았다. 그리고 화요일님은
앞으로 잘 될 것이다.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 하나씩 하기만 하면 된다. 재밌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처럼 편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지니 님) 화요일의 글은 진취적인 사람의 따뜻한  글이다.
세월호 관한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감해서 많이 울었다. 화요일은 앞으로 뭐든 된다고 믿는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https://brunch.co.kr/@blume957q7n/158


쓰면 쓸수록 투명해진다.

 

 글벗들과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작가 은유의 책 <싸울수록 투명해진다.> 생각났다. 책에서는 소외된 계층이 세상의 불합리와 싸울수록 더 투명하게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우리도 지난 2년간 끊임없이 쓰고 또 쓰면서 우리의 생각이 투명해지고 있음을 목격했다.


글을 쓰려하다 보 내 안의 편견이 보였고, 글을 고치다 보니 반복되는 내 생활의 패턴이 발견되었고, 글을 읽다 보니 논리에 맞지 않고 쓸데없는 겉치레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과정에서 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시나브로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무지함을 보게 되고 어색함을 보게 되고 오만과 두려움도 맞닥뜨리게 된다. 나 자신과 싸울수록 나를 더 잘 볼 수 있는 투명한 창을 얻게 된 것이다. 


투명한 창을 통해 보는 자신의 모습이 늘 좋지만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봐야할때도 있었으니까. 그럴 땐 한 발짝 물러서고 외면하고 딴청을 부리거나 글쓰기를 멈추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힘든 과정을 통해 우리의 창이 천천히 맑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글벗 네 명은 각자의 방법으로 성장했고 나아갔다. 때론 슬럼프를 겪기도 하면서.


그날 우리 넷은 예전보다 더 은 투명함으로 서로의 모습을 비추어주고 반사하고 끌어안아 주었다. 덕분에 모처럼 따뜻한 겨울 오후를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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