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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an 26. 2023

철부지 중년의 관계 계산법

<중년의 진로수업>

"계산"이라는 말과 "관계"라는 말이 만나면 어떨까? 나는 이 둘의 조합이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초극강 오지랖퍼인 나는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나  의미가 있는 모임이 있다면 비용에 대한 고민은 살짝 미루거나 최소한으로 하고 딱 좋은 타이밍에 진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최고로 들 때 만남, 그 자체를 빠르게 성사시키는 타입이다.



급만남의 재미


오늘 비 오는 날이네요.
 파전에 막걸리 어떠신가요?
선착순 2명 모십니다~


 

이런 돌발적인 느낌과 만남, 급만남은 재미있다. 소위 무계획 재미추구형. 다른 건 둘째치고 관계에 있어서는 그런 편이다. 그래서 늘 내 통장엔 잔고가 별로 없다. 돈은 월급날 숫자로만 나타났다 사라질 뿐. 그래도  사람 만나는 일을 계획하고 따지고 비용과 결과를 미리 염두하며 살지 않는다.

50살이 코앞인데도 아직도 철부지같이 만남 그 자체를 아주 잘 즐길 뿐이다.


딱 필요한 그때가 제일 좋은 타이밍

 

 큰 일을 마치고 자축이 필요한 때, 긴 시간 수고와 노력이 이어져 지치고 힘들 때, 속상한 일이 있는데 쉽게 누군가에게 꺼내놓기 힘들 때, 한 동안 소식이 없는 그리운 이가 있을 때, 방황하고 복잡할 때 따뜻한 조언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때, 그냥 그 친구 동네를 지나갈 때, 내가 우울할 때 긍정의 에너지를 전해줄 그 사람이 생각날 때, 그 친구가 딱 좋아할 만한 전시회가 있을 때,  등등등, 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시기는 이렇게나 많은 순간, 많은 이유가 목적이 되어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 전시회가 딱 그대의
취향저격 같은데요~
 같이 가실래요?



제안하는 자유, 거절도 받아들일 용기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한 순서와 협의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의무적인 만남, 가기 싫은 모임은 가기 전부터 머리가 묵직한 것이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병약해진 요즘은 만남도 최소화하고 즐겁고 좋은 만남만을 챙겨서 만든다.


생각나는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제안하는 것은 상대가 거절할 위험부담도 안고 해야 한다. 서로 적당한 시간을 조율해야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고. 어떤 때는 서로가 딱 맞아 기분 좋게 만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적당한 때를 찾지 못해 아쉽게도 포기해야 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관계도 계산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친정엄마나 시댁 어른들은 가끔 경조사를 치르거나 지인의 행사에 다녀오시면 축의금이나 부의금 봉투에 넣거나 받은 금액을 수첩에 꼼꼼히 기록하시곤 한다. "이 집은 우리 딸 결혼식에 10만 원이나 했네. 우리도 그 집 아들 결혼식에 그 정도 넣어야겠다." 하며 봉투에 넣을 금액을 정할 때 수첩에 미리 적어놓은 기록을 요긴하게 활용하곤 하신다.


그런데 이런 기록이 없는 사회초년생 때는 이런 경조사의 금액을 정할 때면 혼란스럽기만 하다. 누가 딱 정해주면 좋으련만... 직계가족은 제일 많이 넣고 친한 친구는 30만 원 내외, 친한 동료는 10만 원, 그냥 알고 지내는 직장동료는 5만 원 정도? 동료의 부모님 경조사엔 조금 더 적게, 직접 가서 식사를 하거나 식구들이 같이 갈 때는 조금 더 넣고, 봉투만 전할 때는 조금 덜 넣고. 요즘은 물가가 올라서 더 많이 넣어야 하나. 경조사 봉투에 넣을 금액을 정할 때마다 복잡 미묘한 관계계산을 하느라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요즘은 코로나로 각종 행사들이 축소되거나 생략되기도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얼마짜리 관계일까?


지금 준 것을 지금 당장 받지 못해도


교직에 있다 보면 아이들에게 작은 간식이나 학용품을 사줘야 할 때가 있다. 학교예산을 미리 받아 쓰면 좋으련만 예산을 올리고 승인을 받고 지출할 때마다 품의 기안을 올리고 행정실에서 카드를 받아 허용되는 범위와 기준 금액에 맞춰 지출하고 영수증까지 챙겨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 번거로워 그냥 쉽고 빠르게 내 돈으로 계산할 때가 있다. 뻔한 교사월급에 아이들에게 비싸고 좋은 것도 못 사주지만 인원수가 늘 30명 내외니 합치면 그 금액도 만만치는 않다. 이럴 때마다 나는 그 관계도 계산하고 고민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학년 피구대회에서 2.3번 경기를 이기고 최종 우승을 한 그때, 바로 그때가 아이들에게 시원한 쮸쮸바가 필요한 점인 것이다. 실은 졌어도 상관없다. 마지막 경기가 있는 날 학교 앞 마트에 미리 계산해 두고 왔으니. 이기든 지든 열심히 싸운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에 쮸쮸바하나가 효자노릇을 하는 최대 교육효과가 터지는 순간이니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수상한 관계 계산법


나의 관계계산법에는 이상한 논리가 숨어져 있다. 이것은 회사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이치와는 많이 다르다. 교육현장에서는 늘 그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으므로 기다림이 필수다.


지금 당장 내가 베푼 것을 돌려받지 않는 다고 해서 연연하지 말 것, 1년이 지나서 10년이 지나서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이 지나 또 다른 형태의 더 큰 열매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으니.


영영 다시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행복하고 아이들도 행복하다면 그걸로 오케! 뒷 끝없이 즐긴다.


그래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내놓기. 삼둥맘의 현실을 잊으면 안 돼요!

이런 관계계산법은 친구나 동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가 한번 밥을 사면 상대도 한번 사는 아주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그런 관계계산법도 좋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얻어먹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사주기도 하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 감정중심, 관계중심 계산법이 훨씬 더 편하고 좋다. 그저 사람만 보고 만나는 그 순간만 즐기는 철부지 관계계산법이다. 가끔 이 사람을 만나 내가 얼마 쓰고 뭘 하면 얼마 더 내야 하나 계산하면서 만나는 정확한 관계계산법을 해봐도 그 결과 비용은 비슷함을 종종 목격한다. 그렇다면 나는 돈과 비용에 대한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관계 그 자체를 즐기는 쪽을 늘 선택한다. 이편이 나는 훨씬 편하고 좋다. 돈이 없다고 해서 관계가 위축되거나 포장되는 만남은 슬프다. 돈이 없으면 도서관에 가거나 마을 뒷산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돈이 있을 땐 통 크게 내가 한턱쏘기도 하는 철부지 계산법이 아직까진 나는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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