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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an 28. 2023

 나, 화요일 사용설명서

<중년의 진로수업>

알립니다.

저, 화요일을 사용하실 때는 아래의 설명서를 읽고 숙지하신 뒤에 다루어 주시길 바랍니다.


1. 사용 

똑똑, 정갈한 몸과 열린 마음으로 다가와주세요.

훅 들어오지 마시고,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며 반겨주세요.

이름과 나이는 밝히시면 더욱 좋지만 모른다고 큰 일 나지는 않습니다.

순수하고 열린 마음의 사람, 사물, 동물을 모두 좋아합니다.

2. 사용 

그대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화요일의 의견도 잘 들어주세요.

특히, 화요일의 감정이나 생각을 먼저 물어봐주시면 좋습니다.

말이 없다고 해서 화나거나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말대신 관찰하고 살펴보는 것으로 상대를 기다리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화요일의 생각이 봇물 터져 말할 때는 상상력의 물꼬가 터진 것이니 추임새나 끄덕임 등의 제스처로 북돋아주세요.

뭔가 이상하거나 어색한 것이 있을 때는 지적 말고 조언해 주세요. 즉시, 수정, 보완해 낼 겁니다.

화요일은 생각보다 당신의 말, 생각, 옷, 발걸음, 머리모양, 행동특성을 잘 기억합니다. 스토커가 아니라 당신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모든 질문에 진심으로 답합니다. 특히, 사람을 대할 때에는 '대충'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이 생각을 나누고 듣고 읽고 성장하는 과정을 무척 좋아합니다.

무례한 행동과 말은 사절입니다.

당신의 순수함과 선한 의도를 사랑합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고 자신의 생각을 잘 설명해주세요.

그림, 음악, 책, 여행, 친구, 대화를 좋아합니다.

아침에 산책하고 카페서 책 읽기를 즐깁니다.


3. 사용 후

작별인사와 후기는 사랑입니다.

조용히 혼자 쉴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4. 유의사항

밥시간은 꼭 지켜야 합니다. 끼니를 거르면 난폭해집니다.

생각한 걸 실천에 옮기는 걸 잘하나, 너무 많은 일을 벌일 수도 있으니 때때로 속도조절 브레이크를 눌러주세요.

덩치와는 다르게 의외로 약골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되도록이면 빨리 당장 해주어야 합니다.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성향이라 도움을 청할 때는 진짜 힘들고 위급한 상황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무리하게 혼자 하려는 똥고집이 있어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으니 때때로 쉬고 놀라고 말해주세요.

계산을 잘 못하고 셈이 무척 느린 편입니다.

하루에 한 번 바깥나들이를 해야 뒤탈이 없습니다.


5.혜택

화요일의 급만남, 급제안이 의외로 그대의 취향에 딱 맞을 수 있으니 급연락 기다려주세요.

화요일은 그대의 질문에 늘 진심이니 고민이 있으면 주저하지말고 물어주세요.

미술관, 영화, 책, 음악을 통해 새로운 이벤트를 만드는 걸 좋아하니 혹시 즐거운 아이디어있으면 언제든 손들고 말해주세요.

한번 화요일과 인연이 되면 종신인연될 확률이 높으니 유의할 것.

퇴직하고 <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 스타일 문화센터를 구상중이니 관심있으신 분 줄을 서주세요~^^




 때때로 나도 화를 낸다. 나는 언제, 왜 화를 낼까? 잠깐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몰라줄 때, 상식이하의 행동으로 불쾌함을 느꼈을 때, 내가 열심히 한 것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할 때 등등등. 그런데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니, 상대입장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않으내가 어떤 걸 원하는지를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깨닫는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엄마, 나 오늘 고등어조림 먹고 싶어.



 어린 시절 동생들은 엄마에게 종종 먹고 싶은 걸 당당하게 요구하곤 했다. 나는 차마 그 말을 못 했고. 그렇게 말하고 요구하는 동생이 부러워 한참을 쳐다보기만 했다. 어린 마음에 바쁘고 힘든 엄마를 혹시나 힘들게 할 걱정되어 내가 원하는 들을 말하지 못한 것 같다. 어른들에게 나는 손이 안 가는 아이, 착하고 순한 아이로 통했고. 그런데 그 안의 욕망은 그대로였었다. 표현은 못해놓고 말하지 않은 내 요구를 알아차려주지 않는 상대에게 갑작스러운 서운함이 몰려오는 때가 종종 있었다. 반대로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차려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나 사용설명서를 작성해 보았다. 생각보다 정확하고 명료하게 나를 사용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정리하다 보니 내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들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니체가 <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했듯이 나는 실제로 나 자신에게 가장 먼 존재라 했던 것처럼 <나 사용설명서>를 작성하면서 스스로를 알아내려 열심히 탐구할 수 있게 된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지? 지구상에 누군가 한명이라도 나를 궁금해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잘 있다가 화요일은 왜 갑자기 화를 내는거지? 이렇게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참고가 되었으면 해서 적어본다. 실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지금도 나는 내 생각과 취향을 계속 알아가는 중이고 변하고도 있는 터라 앞으로 계속 설명서가 추가, 수정, 보완하며 업그레이드될 예정다. 나 자신을 잘 알게 되는 그때까지.


p.s.  자신과 친해지고 싶고, 지인들을 위한 지침서효과만점인 <나 사용설명서>를 써보시길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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