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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Feb 15. 2023

또 한 번의 후퇴

<중년의 진로 수업>

결국, 병가를 내고 왔다.


자신이 없었다. 내 몸의 변화가 바쁘게 돌아가는 학교의 일상을 감당해 낼 수 있을지... 피곤함은 수시로 나를 주저앉혔고 목소리는 한 시간만 말해도 잠겨버렸다. 자꾸만 멈춰버리는 소화 기능은 먹은 음식물을 내리지 못하고 가슴팍에 그대로 잡아두는 것 같이 답답하기만 하다. 불시에 추위가 느껴지면 발끝부터 전해지는 한기에 온몸이 덜덜 떨리기까지 한다. 작고 작은 갑상선 하나가 이렇게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칠지는 몰랐다. 나도 내 몸을 잘 모르는구나. 무지함에 또 한 번 푹 가라앉는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출근을 했지만.


늘 그렇듯 학교는 바쁘고 정신이 없다. 계속된 공사로 복도고 교실이고 뿌옇게 먼지가 쌓여있는 가운데 선생님들은 새 학기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다들 새로 맡은 업무에 대해 설왕설래하느라 더욱 어수선하다. 이 와중에 힘겹게 내뱉는 병가이야기에 교감선생님께선 기다렸다는 듯  앓는 소리를 하신다. 기간제 선생님이 안 구해진다고. 아파서 얼마나 힘드냐고 몸은 괜찮냐는 그 흔한 안부인사는 기대할 수도 없다. 죄인인 듯 학교에 불편함을 끼친다는 생각에 더 이상의 배려는 바라지도 못하고 나 또한 나를 대체해 줄 누군가가 선뜻 나서기를 기다릴 뿐이다.



헛헛한 기분이 든다.


나란 존재는 학교를 옮길 때마다 새로 태어난다. 새로 일을 하고 새로 관계를 쌓고 새로 인연을 맺고 신뢰를 쌓고. 그러다 시간이 되면 정든 학교를 떠난다. 또다시 새로운 학교에서 낯선 사람, 낯선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신규 아닌 신규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쌓는 이 모든 과정을 되풀이한다. 과거에 다른 학교에서 열심히 노력했고 헌신했던 날들은 사라지고 다시 시작한다. 새 학교에 적응할만할 때쯤 시작된 디스크 통증으로 휴직을 하고, 갑상선암으로 다시 병가,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고 휴직이지만 내 맘속의 양심은 나를 질책했고 이를 알기나 하듯, 학교는 학교행정이나 어지럽히는 천덕꾸러기 존재처럼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내가 빠져서 생길 그 구멍 난 조각을 대체할  사람을 찾고 전체 학사일정을 원활히 운영하는 것이 그분들의 몫이겠지만 정신없이 새 부서로 이동하고 짐을 싸고 인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걸리적거리지 않게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앉아있는데 쓸쓸한 생각이 든다. 누구든 한 명 내 자리를 메워주면 전혀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나.



그래도 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적응하는 일이, 불편을 끼치는 내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눈치 보게 되는 내가 바보 같아 조금 속상하지만 누구도 탓하지 않기로 했다. 아픈 동료를 위로할 여유가 없을 만큼 일이 힘들고 고될 수는 있겠다 생각하고 서운한 마음을 접는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내 짐도 내 존재도 한갓지게 치워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운 단지 하나, 지금 당장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이겠지.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학생회 아이를 만난다. "선생님~!" 반갑게 인사하니 나도 모르게 와락 안아준다. 선생님과 함께 했던 때가 좋았다는 그 말이 오늘따라 더욱 고맙다. 아이에게 나중 건강해져서 돌아오겠노라고 그때 더 재밌게 지내자고 씩씩하게 말하고 돌아선다. 이제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실은 아이에게뿐 아니라 나에게도 주문 같은 결심이 되길 기대하며  힘주어 말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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