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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an 25. 2023

내 몸이 나에게 말을 걸다.

<중년의 진로수업>

10시간 넘게 자는 나, 내 몸이 이상하다.


요즘은 모든 것이 스마트. 아침에 눈을 떠서 핸드폰을 열면 어플이 정확한 수면시간을 측정해서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출근할 때면 늘 7시간 내외였던 수면시간이 갑상선 암 수술을 하고 나서부터는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8시간 이상 잠을 자면 허리가 뻐근하고 배겨서 도저히 더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주말에도 출근할 때처럼 아침 6시도 안 되어 일어나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내 시간을 가질 여유를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웬걸~, 초저녁부터 물먹은 스펀지처럼 쓰러져 까무룩 잠이 든다. 그리고 눈떠보면 아침 8시, 9시. 내 몸이 이상하다.


누가 누가 더 아픈가~


 설날이 되어 친정식구들이 모였다. 우리는 딸만 , 딸부잣집이다. 그런데 큰딸인 나뿐 아니라 이제 다들 40이 넘었다. 어느덧 다 같은 40대로 중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는 디스크에 암, 둘째는 신장결석에 패혈증이 심해 심각한 고비를 넘겼다고, 넷째는 고만고만한 아이 둘을 키우느라 스트레스에 우울증 약이라도 먹고 싶을 정도라 하고. 다들 뭔가 건강에 이상이 찾아왔다. 자랑하고 싶진 않지만 누가 더 심각한지 내기하듯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기분이 묘하다.


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지난 주말에 성당에 갔다가 매주마다 성당의 일을 알리는 <수원 주보> 기사에 실린 글에 멈칫했다.

 우리는 늘 자기중심 입장에서 모든 사물을 봅니다. ‘내가 아직 젊은데’ ‘내가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전에는 내가 얼마나 건강했는데’ 등등 현재의 증상이 자신에게 발생한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중략) 공통적으로 제가 하는 말은
 “허리 근육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간 60년, 64년, 70년간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해 준 허리 근육에게 감사를….
 
(중략) 우리는 돈키호테처럼 자신의 근육을 항상 젊은 명마로 착각, 더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하는 것은 아닐까요?

(중략) 전에는 가벼운 기수가 젊은 말에 올라 날아다녔지만, 세월이 흘러 그는 비만한 몸이 되었고 말은 늙었는데, 예전에 잘 달리던 생각을 하며 오로지 채찍질만 가한다면 그 말은 곧 쓰러져 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수원주보, 제2031호, 김용민                  베드로(정형외과 의사)

위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 보니 지난 6개월은 40년을 넘게 쓴 내 몸이 이제 그만 쉬고 싶다고 파업선언을 한 것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내 맘대로 여기저기 다니고 하고 싶은 걸 찾으며 휘뚜루마뚜루 쓰던 몸이 "더 이상 못해먹겠다. 나 이제 일 안 해!"선포한 것이다.

 오래 걸으면 허리가 묵직해지고 의자에라도 앉아 쉬다 보면 또 어느새 발끝이 져려온다. 멍하니 있으면 안 되니 책을 펼쳐 읽고 있노라면 이젠 또 목근육이 뻐근해진다. 요즘엔 등에 생긴 종기까지 커져서 욱신거리니 이쯤 되면 전면파업정도 되겠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 나의 몸


문득 내 몸을 내가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어 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생활을 하고 아무 문제 없이 움직이고 쓰고 있던 내 몸을 너무 당연하게 믿었던 건 아닌지. 엄마로서 아이들을 건사하고 아내로서 남편을 살피고 딸로서 부모님의 건강을 체크하며 동분서주하는 동안 정작 내 몸은 돌볼 겨를이 없었던 거였다. 아이 셋을 낳고 산후조리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만으로는 택도 없었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시대의 여자들은 나보다 더 많은 일과 돌봄으로 자신을 챙길 시간이 없었을 텐데 70세가 넘어 이런저런 병치레로 힘드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지 않나 미안한 마음이 더 커진다.


이제서야 조금 내 몸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늘 하던 집안일은 안 할 수는 없으니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가며 해준 덕분에 한 숨 돌릴 시간이 생긴 것이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흔들리고 잠이 모자라고 추위가 느껴지는 내 몸의 변화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도 나는 습관적으로 언젠가 몸이 아지면 하고 싶은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즐겁게 상상하곤 한다. 힘들고 나약해진 내 몸을 인정하는 것이 아직도 어려운 걸까. 더하기보다는 빼기로 내 일의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데 늘 하던 데로 달려가는 관성의 법칙이 내 머릿속에는 그대로여서 나도 모르게 예전에 하던대로 움직이고 싶어진다. 힘을 빼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기대를 낮추며 내 몸이 가벼워지는 방향으로 나를 바꾸어야 할 터닝포인트에 와 있다. 정신차리고 무조건 내 몸의 신호에 맞춰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할텐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늘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붙들며 예전과는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부지런히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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