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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Feb 09. 2023

[전시리뷰] 공간이 예술이 될 때

<유동룡 미술관: 이타미준 미술관>

 여행 중에 미술관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북적이지 않고 고즈넉하게 여행의 매력을 다른 각도로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기 때문이다. 이번에 둘러본 유동룡 미술관은 제주 사는 지인이 추천해 주어 냉큼 다녀온 곳이다. 마침 엊그제 본 <방주교회>를 만든 건축가이기도 해서 더 좋았다.


그는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예명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한국에 처음 올 때 이용한 오사카 이타미국제공항에서 이름을 따올 정도로 경계를 초월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선언과도 같이 '나는 경계인이다'라고 자신을 칭하였다. 그는 자신이 한국과 일본 그 어디쯤에 있다고 믿어서일. 자신의 뿌리인 한국의 역사, 전통, 문화를 탐구하고 고유성을 잃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마침내 '이타미 준'이라는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해냈다.


건물외관


 미술관은 제주시 한림읍 <제주 문화예술인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김창렬미술관 바로 옆이라 간 김에 여러 미술관을 둘러보기에도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유동룡 미술관> 입구

 차에서 내려 입구에 들어서자 친근감 넘치는 형태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흑과 철, 나무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독특하고 자연스러운 구조물이 되어 눈앞에 보인다.



먹의 공간 : 도서관


먹의 공간 라이브러리

 1층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통창과 둥근 배치로 도서관이 있다. 책장에는 유동룡에 관한 책들이 멋스럽게 배치되어 있고. 특히나  바깥풍경을 통으로 감상할 수 있는 창가자리가 마음에 쏙 들어온다. 공간의 구조는 단순해 보이는데 왠지 모를 신비감을 만들어낸.


2층 전시실


무의 소재


  2층 전시실은 그간 유동룡의 40여 년의 건축기록을 볼 수 있는 이다. 그는 현대건축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인간의 온기, 건축에 있어서는 야성미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무의 소재'에 천착하여 연구하였다고 한다.


소재와 색과 빛을 통해 진실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기를 늘 염원한다.
설령 그 작품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않는 것이라 할지언정 결코 타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설픈 논리로 구성된 그 어떤 작품보다 훨씬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진정한 문화를 움틔우는 생기 넘치는 새싹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는 풍토, 경치, 지역의 문맥 속에서 어떻게 본질을 뽑아내 건축에 스며들게 할지를 생각했다. 조형은 자연과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하고 공간과 사람, 자신과 타인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혼자만의 고집으로 단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대화로 소통하고자 했던 인간적인 건축가의 모습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이타미 준과 제주도


제주도는 유동룡에게 제2의 고향이었다.
살아있는 자연의 힘인 바람과 유동룡의 건축이 만나면서 그의 작업은 절정에  달한다. 대표작인 수. 풍. 석 미술관과 방주교회, 포도호텔등 자연에 시시각각 반응하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말처럼 건축은 인간에 대한 찬가이자 자연 속에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바치는 또 다른 자연이 되었다.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방주교회


 방주교회는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지은 건축물로 인공수조 위에 교회건물을 세워 구조물을 완성하였다.

 

포도를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연결된 포도호텔은 제주의 초가집과 오름을 모티브로 한 건축물로 제주의 전통미를 살린 자연친화적인 예술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도호텔> 출처: 국방k신문(2021.09.07)


 티라운지 : 바람의 노래


그의 전시를 감상하고 나오면 입장권에 포함된 음료권으로 티라운지에서 음료를 선택해 마실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녹차가 메뉴판에 있었고 그중 가장 부드러운 차 한 가지를 추천받아 마신다. <바람의 노래>라고 이름 붙여진 이 공간은 바람을 느끼고 볼 수 있는 큰 창을 내고 그 앞에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하였다. 이곳에서 차 한잔을 마시는 경험 또한 예술을 몸소 느끼는 것 같은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창밖으로는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리고 새가 날아다니는 풍경이 보인다. 라운지안에는 양방언의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향긋한 차향이 코끝을 간지르고 따스한 찻잔의 온기가 손안에 다다른다. 투박한 다기의 촉감이 정스럽고 한 조각 초콜릿이 달콤 쌈싸름하게 미각을 자극한다. 이 모두가 어우러져 오감을 극대화한 하모니를 선사한다. 한 동안 머물러 멍하니 그대로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티라운지 <바람의 소리>



구석구석 스며든 예술의 향기


이곳 미술관은 모든 공간을 허투루 두지 않고 세심하게 배치하고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티라운지 앞의 달항아리가 그랬고 화장실 변기옆의 가늘고 긴 창이 그랬고 복도 끝 작은 기와집이 전시된 공간이 그랬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곳마다 멈추고 감상할 것들이 충분했다. 공간을 꽉 채운 건 물건이 아니라 영감이고 정성이었다.



공간이 예술이 된다는 것

 

 세상 그 많은 곳에서 이곳 제주에 이 미술관을 세웠다는 것이 신의 한 수였고 1층 현관 입구  왼쪽에 도서관을 그리고 오른쪽에 티라운지를 배치하고 2층에 전시실을 배치하고 동선을 도서관-전시실-티라운지로 향하게 하였다는 예술적 영감을 고려한 세심함에 한번 더 놀랐다.


 이곳은 모든 것이 예술적으로 계획된 공간이었다. 조명과 창, 어둠과 빛, 곡선과 직선, 흑과 백, 차와 향, 있음과 없음, 공간과 공간 사이 등등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단지 그의 전시물만 보러 왔다고만 하면 '에이~볼 것 없네~'할 수도 있겠지만 공간과 공간 그 사이에 걸음과 멈춤을 반복하며 여유를 느끼며 이곳이 주는 새로운 관점들을 온전히 느낀다면 그 엄숙한 영원과 무의 경험에 온 마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닫고 가두고 가리려 하면 없고 열고 나누고 개방하려 하면 한없이 열리는 예술의 공간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고요한 바람의 소리 그리고 꽉 찬 공간의 여유가 지금도 눈앞에 펼쳐진다.



*이타미준 유동룡미술관 브로셔 일부발췌 및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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