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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Feb 14. 2023

[북리뷰]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고스톱 고전 읽기) 월든 4 : 숲 속의 소리

그 많던 골목의 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개똥아, 밥 먹어라~



 어린 시절 나는 동네 앞 공터에서 엄마가 이렇게 외칠 때까지 놀았다. 하나 둘 친구이름이 불리면 골목의 밤은 고요해졌다. 깊은 밤이 되면 어디선가 "찹쌀떡~메밀묵~" 특유의 길게 늘어 뺀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주말 오후엔 "고장 난 냉장고나 티브이 팔아요." 고물상아저씨소리가, 또 어디선가 "계란이 왔어요~ 굵고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 굵고 고정된 톤의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이렇게 정겨운 골목의 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연합뉴스(  2017/01/21 08:00)  사진캡쳐

불과 몇 십 년 전인데도 우린 비슷한 소리, 비슷한 풍경을 보고 자라곤 했다. 그땐 우리 손에 휴대폰이 없었고 재밌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이 하는 시간에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TV를 보고 동네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방송이 끝나고 나누구나 주인공이나 스토리에 대해 격렬하게 얘기하며 토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각자의 폰으로 각자가 좋아하는 채널을 보고 취향에 맞게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된 광고와 뉴스, 유튜브 영상을 본다. 개인취향은 더욱 깊어지고 공유된 문화와 비슷한 경험들은 갈수록 줄어든다. 가족끼리라도 각자 무엇을 보고 즐기는지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세상이 됐다. 이런 세상에 같은 하늘, 같은 새소리를 듣고 보고 나눌 기회가 있을까.


 <월든>에서 소로우는 전원의 삶 속에서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리와 풍경에 집중한다.


한여름 오후, 창가에 앉아있노라니
매가 몇 마리 나의 개간지 위를
빙빙 돌면서 날고 있다.
산비둘기가 두세 마리씩 내 시야를 가로질러 날아가거나, 집 뒤의 백송나무 가지에 안절부절못하듯 내려앉곤 하는데 그때마다 소리가 난다.
물수리 한 마리가 거울 같은 호수의 수면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물고기 하나를 채가고는 날아오른다. 밍크 한 마리가 집 앞에 있는 늪에서 살짝 나와 물가에서 개구리를 잡아챈다. (175p.)



 단출한 삶에서는 주변의 소리가 잘 들리고 작은 짐승의 움직임도 잘 보인다. 복잡하지않게 바쁘지않게 사니 자연의 것들에 귀를 기우리고 세심히 관찰할 여유도 생기는 걸까. 늘 바쁜 우리 삶에서도 이런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잃어버린 내 삶의 여백은 어디에?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여름날 아침에는 간혹, 이제는 습관이 된 멱을 감은 다음 해가 잘 드는 문지방에 앉아서 해 뜰 녘부터 한 낮까지 한 없이 공상에 감기곤 했다. (171p.)

 우린 때때로 내 인생에도 넓은 여백이 있기를 바란다. 하나 그 여백을 과감하게 즐길 사람은 몇몇 되지 않는다. 누군가 대기업을 관두고 세계여행을 한다 하고, 누군가는 불현듯 사표를 내고 창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기도 한다. 그런 용기가 부럽지만 한없이 먼 얘기처럼 들릴 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삶의 여백을 찾는 것이 생업을 관두고 뭔가 대단한 결정을 해서 찾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일요일 오전 편안한 시간, 베란다 창을 열고 아파트숲 너머 아스라이 보이는 하늘을 바라본다. 기분이 내키면 집 앞 산책로의 가로수길을 걷는 것도 내 삶의 작은 여백을 찾는 일일 것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 게으름을 부려보는 것, 일상의 소소한 사치로 즐기면 어떨까.


나의 이런 생활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철저하게 게으른 생활로 비쳤으리라. 그러나 새와 꽃들이 자기들의 기준으로 나를 심판했다면 나는 합격 판정을 받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이지, 인간은 행동의 동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의 하루는 매우 평온한 것이며 인간의 게으름을 꾸짖지 않는다. (172p.)




제대로 본 다는 것


어떠한 관찰 방법과 훈련도 항상 주의 깊게 살피는 자세를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볼 가치가 있는 것을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보는 훈련에 비하면 아무리 잘 선택된 역사나 철학이나 시의 공부도, 훌륭한 교재도, 가장 모범적인 생활 습관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단순한 독자나 학생이 되겠는가, 아니면 '제대로 보는 사람'이 되겠는가? 당신 앞에 놓인 것들을 보고 당신의 운명을 읽으라.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발을 내디뎌라. (p.170)



 무언가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그냥 보게 되는 것과는 다르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손안에 있는 휴대폰을 볼지, 창밖의 풍경을 볼지, 풍경 속에서도 무엇을 볼지 모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선택이다. 눈에 들어오는 그 모든 걸 다 기억할 수도 없고 다 보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린 어떤 의지에 의해 무언가를 더 자세히 보는 행위를 실행한다. 이때 '제대로 보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가 길에 홀로 서있다. 나는 그것을 보았고 멈추었고 고민한다. 누군가는 봤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간다. 무슨 차이일까. 집안에 온갖 쓰레기가 널려있어도 아이들은 그냥 보고 지나간다. 엄마는 하나하나 주우며 치운다. 누가 제대로 본 것일까. 내 눈앞에 뭔가가 있어도 그것을 생각하고 해석하고 실행하는 방법은 다 다르다.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선 얼마나 더 연습하고 단련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응시하고 듣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괜찮을까. 실은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볼 지를 결정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수도 있겠다.

*출처: <월든> 헨리 데이비드소로우,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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