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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Feb 16. 2023

[북리뷰] 다람쥐와 함께 춤을~

[고스톱 고전 읽기] 월든 (5)


어떤 존재든 흔적을 남긴다.



나는 내가 없을 때에 어떤 사람이 왔다 갔는지를 나뭇가지가 휘거나 풀잎이 구겨진 모양이나 구두 자국을 보고 틀림없이 알아맞힐 수 있었다.
또 꽃 한 송이를 떨어트려놓고 간 모습이나 풀 한 묶음을 뽑아서 던져놓고 간 사소한 흔적을 보고서 또는 시가나 파이프 담배의 냄새가 남아있는 것을 맡고서도 그 사람의 성별과 연령과 교양 정도를
 대략은 맞힐 수 있었다. (p. 197)



 탐정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 후에도 사건의 흔적들을 찾아 유추하면서 정확한 사건의 전말을 추리해 나간다. 사람들은 어떤 흔적을 남길까? 시어머님댁에 가면 늘 쑥향이 난다. 어머님께서는 어디든 몸이 쑤시고 편찮으시면 쑥뜸을 즐겨하시곤 한다. 어머님께서 주신 음식이나 물건에는 늘 쑥냄새가 난다. 집안 구석에 베인 그 향은 어머님집만의 특유의 향내로 집안을 항균하고 보살피고 있는 듯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먹고 난 뒤에 꼭 흔적을 남긴다. 자기들은 절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하지만 부엌을 한번 휘~둘러보면 증거는 금방 나온다. 싱크대위에 떡볶이 국물자국이 떨어져 있고 라면을 먹었는지 레인지대위에는 수프가루가 잔뜩 뿌려져 있다. 영락없이 아이들의 소행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없지만 있는 것, 있지만 없는 것.


어떤 존재가 사라졌지만 그 존재가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은 흔적이다. 사람사이에서도 없어도 있는 것 같은 걸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사랑 혹은 유대감이라는 감정과도 통한다. 그런데 반대로 누군가 같이 옆에 있어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일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느끼곤 한다.


솔잎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 올라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하는 장소에서도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나는 나에게 혈연적으로 가장 가깝거나 가장 인간적인 것이, 반드시 어떤 인간이거나 어떤 마을 사람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어떤 장소도 나에게는 낯선 곳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p.200)



휴양림이나 한적한 숲길을 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름드리나무와 잔잔한 풀밭의 움직임들이 얼마나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지를. 태초의 향기 같은 내음이 코끝에 전해지고 상쾌한 공기가 온몸을 감쌀 때의 청량감은 그 어떤 곳에서도 살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종합선물세트다. 가만가만 숲길을 걸으면 새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신선한 바람까지 불어 나뭇가지를 흔들어 햇살을 일렁이게 하면 몽환적인 기분까지 들어 편안해진다. 어디든 누워있어도 한동안 일어나고 싶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숲이 주는 포근함 때문일 것이다. 태고에 우리도 자연의 일부였으니까.


지난 가을 동네 언덕



계절과 자연을 벗으로 삼는 다면


자연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순수하고 자애로워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건강과 환희를 안겨 준다. 그리고 우리 인류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정당한 이유로 슬퍼한다면 온 자연이 함께 슬퍼해줄 것이다.(p.209)



 계절이 지나고 구름이 바뀌고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자연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볼 때만 말을 걸어온다. 바쁘게 살고 지나쳐버리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멈추고 바라보면 말을 걸기도 하고 매일 다른 모습을 선사하기도 한다. 오늘은 아침을 먹고 동네 공원에 산보를 나간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자칭 다람쥐 한 마리도 따라나선다.



휘리릭 휘리릭 재빠르게 달리는 모습이 딱 다람쥐다. 가장 이쁘게 가장 즐겁게 자연의 일부분처럼 재빠르게 몸을 움직이는 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자꾸 웃음이 난다. 자연이 내게 뭔가 새로운 기운을, 밝은 에너지를 주고 있는 게 분명하다. 고독과 외로움을 밀어내고 뭔가 좋은 것이 내게 왔다. 있는데 보이지 않는 그것, 아침공기의 산뜻함이 내게 선사한 기분 좋은 선물이다.


만물의 옆에는 그것의 존재를
형성하는 어떤 힘이 있다.
우리들의 바로 옆에서 가장 중대한
여러 가지 법칙들이 끊임없이 실행되고 있다. (p.203)




*출처: <월든> 헨리 데이비드소로우,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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