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핀 꽃들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걸 볼 수 있다. 긴 겨울 조용히 이겨냈을 생명력이 한껏 힘을 주어 너도나도 존재감을 과시하며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린다. 잠시 잠깐 지나가듯 아련하게 사라질 아름다움인 걸 알기에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절절함을 누가 알까. 나이가 들수록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큰 것은 동병상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목련
목련
순백의 흰색으로 고고하게 우뚝 선 목련은 머리를 숙여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큰 꽃잎을 잔뜩 피워내고는 한 잎 한 잎 뚝뚝 던지듯 사라지면 그만일뿐. 하얗던 얼굴이 검은빛이 되어 시들어도 흩날리듯 사라지언정 결코 머리는 숙이지 않는 도도함이 부럽다. 오늘따라하늘을 향해 높이 선 꽃망울들이 유난히도 희고 창백하다. 굵고넓은 꽃잎으로 대범했던 겨울 추위를 잊지않으려새하얗게시려꽂꽂해져버린 걸까.
산수유
산수유
자잘한 꽃망울이 가지에 모여 붙어 점점이 노랑빛을 수줍게 보이더니 어느새부채처럼 제 잎을 쫙~벌려 나를 보라고 손짓한다. 어린아이 손가락 같은 작은 이파리를 보자기처럼 펼쳐내어 봄빛을 한 움큼 움켜쥐려는 걸까.솟구치는 생명의 힘이노란빛으로 불끈거린다.
벚꽃
벚꽃
다가가 본다. 팝콘처럼 덩어리가 아니고 솜사탕을 매달은 나무가 아니고 작디작은 꽃에 다가가 얼굴을 찍는다. 피하지 않고 작은 얼굴 내보이는 꽃송이들이 올망졸망 사이좋다.옆옆이 딱 붙은 꽃송이들은 봄바람에 설레는 새 신부의 부케처럼 한아름 피어 아름답다. 얼른 꺾어 리본으로 묶어내어아빠 손잡고 웨딩마치라도 하러 갈까. 잔뜩 꾸며낸 분홍빛활짝핀얼굴이 오늘따라 더욱눈부시다. 그날의 나도 그랬을까.
멀리 또 가까이,
그들은 그대로인데 내 몸을 왔다 갔다 움직이니 보이는 것들이 다르다. 어제 내게 쓴소리를 했던 여인의 말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들여다보면 작은 가지에 찔리겠지만 멀리서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며 덩그랗게 먼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면 괜찮을 수도 있을 거다. 멀리 보아서 아름다운 것이 있고 가까이 봐야 사랑스러운 것이 있다. 이렇게 볼지 저렇게 볼지 내가 결정하고 내 몸을 움직여 바꾸어보면 그만이다. 우습지만 내 멋대로 보고 살아남는 거다.
호들갑스러운 봄날
매년 같은 때 같은 꽃이 피는데 필 때마다 이렇게 호들갑스러운 것은 그해 그 꽃이 아름다운 것도 있겠지만 지난겨울 추위가 유난히도 길었던 탓도 있으리라. 꽃은 그대로인데 나는 지금 어디쯤 와서 어디를 바라보고 느끼는것일까. 종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은 봄바람만큼이나 왔다 갔다 갈팡질팡이다. 내일 만날 봄꽃은 어디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내게 손짓할까.이 넓은 세상 어디쯤에나를 반기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린아이처럼 들든다는 고백하기 민망한 비밀, 괜한 상상에 웃음이 나온다. 참 좋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