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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r 28. 2023

호들갑스러운 어느 봄날

<어쩌다 마주친 그대>

아침산책길

길가에 핀 꽃들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걸 볼 수 있다. 긴 겨울 조용히 이겨냈을 생명력이 한껏 힘을 주어 너도나도 존재감을 과시하며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린다. 잠시 잠깐 지나가듯 아련하게 사라질 아름다움인 걸 알기에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절절함을 누가 알까. 나이가 들수록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큰 것은 동병상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목련

목련

순백의 흰색으로 고고하게 우뚝 선 목련은 머리를 숙여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큰 꽃잎을 잔뜩 피워내고는 한 잎 한 잎 뚝뚝 던지듯 사라지면 그만일뿐. 하얗던 얼굴이 검은빛이 되어 시들어도 흩날리듯 사라지언정 결코 머리는 숙이지 않는 도도함이 부럽. 오늘따라 하늘을 향해 높이 선 꽃망울들이 유난히도 희고 창백하다. 굵고 넓은 꽃잎으로 대범했던 겨울 추위를 잊지않으려 하얗게  꽂꽂해져버린 걸까.


산수유

산수유

자잘한 꽃망울이 가지에 모여 붙어 점점이 노랑빛을 수줍게 보이더니 어느새 부채처럼 제 잎을 쫙~ 벌려 나를 보라고 손짓한다. 어린아이 손가락 같은 작은 이파리를 보자기처럼 펼쳐내어 봄빛을 한 움큼 움켜쥐려는 걸까. 솟구치생명의 힘이 노란빛으로 불끈거린다.


벚꽃

벚꽃

다가가 본다. 팝콘처럼 덩어리가 아니고 솜사탕을 매달은 나무가 아니고 작디작은 꽃에 다가가 얼굴을 찍는다. 피하지 않고 작은 얼굴 내보이는 꽃송이들이 올망졸망 사이좋다. 옆옆이 딱 붙은 꽃송이들은 봄바람에 설레는 새 신부의 부케처럼 한아름 피어 아름답다. 얼른 꺾어 리본으로 묶어내어 아빠 손잡고 웨딩마치라도 하러 갈까. 잔뜩 꾸며낸 분홍빛활짝핀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눈부시다. 그날의 나도 그랬을까.


멀리 또 가까이,

그들은 그대로인데 내 몸을 왔다 갔다 움직이니 보이는 것들이 다르다. 어제 내게 쓴소리를 했던 여인의 말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들여다보면 작은 가지에 찔리겠지만 멀리서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며 덩그랗게 먼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면 괜찮을 수도 있을 거다. 멀리 보아서 아름다운 것이 있고 가까이 봐야 사랑스러운 것이 있다. 이렇게 볼지 저렇게 볼지 내가 결정하고 내 몸을 움직여 바꾸어보면 그만이다. 우습지만 내 멋대로 보고 살아남는 거다.


호들갑스러운 봄날

매년 같은 때 같은 꽃이 피는데 필 때마다 이렇게 호들갑스러운 것은 그해 그 꽃이 아름다운 것도 있겠지만 지난 겨울 추위가 유난히도 길었던 탓도 있으리라. 꽃은 그대로인데 나는 지금 어디쯤 와서 어디를 바라보고 느끼는 것일까. 종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은 봄바람만큼이나 왔다 갔다 갈팡질팡이다. 내일 만날 봄꽃은 어디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내게 손짓할까. 이 넓은 세상 어디쯤에 나를 반기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린아이처럼 들든다는 고백하기 민망한 비밀, 괜한 상상에 웃음이 나온다. 참 좋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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