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요일 Jul 31. 2023

(에너지) 한도초과

센 척 금지

한도초과 되었습니다.

결제한다고 카드를 내밀었을 때 들을 수 있는 가장  민망한 멘트다. 일 년 쉬었다가 딱 2일 근무했을 뿐인데 에 "한도초과" 경고메시지가 떴다. 너무 빠른 에너지 소진에 당황스럽다.  시간 서서 수업을 하는 것이 무리가 되었는지 허리가 스르르 당겨온다. 수업 한 시간하고 10분 쉬었다가 또 한 시간하고 여교사 휴게실을 찾아 20분 허리를 펴고 잠깐 누웠다가 수업하기를 반복하며 목, 금 이틀을 간신히 버텨냈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부랴부랴 내과를 찾아가 수액을 맞고 위기를 모면한다.


주말에는 친정엄마 생신잔치에 갔다가, 오늘 아침에는 큰 딸 친구들이 놀러 와서 아침밥 한 끼 해주었을 뿐인데 허리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예정되었던 약속도 염치 불구하고 취소, 이것저것 묻는 남편에게 짜증도 한 바가지 쏟아낸다. 더운 날씨에 통증이 심해지니 예민해진다. 황급히 한의원을 찾아간다. 뜨끈한 찜질팩과 드르륵드르륵 움직이는 안마봉이 응급처치를 해주고. 허리에 집중적으로 침을 맞고 나니 한층 부드러워진다. 이제야 여유로움을 찾고 남편에게도 미안했다고 문자를 남긴다. 집에 돌아와 충전기에 나를 꽂듯 침대에 몸을 눕힌다. 깜빡깜빡 불이 반짝이며 충전 눈금이 천천히 올라간다.


씩씩한 척, 센 척 금지


남들이 못하는 일을 짠하고 해낼 때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늘 그 생각을 하고 주도면밀하게 조용히 일을 진행시켰다. 운영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나 시행착오가  있어도 힘든 내색은 하지 않았다. 리더가 징징대거나 힘들어하면 같이 하는 사람들도 전염될 거란 생각에 늘 잘될 거라 믿고 나를 다그쳤다. 중도포기란 없었고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을 보았다. 그런데 이제 그런 내가 될 수 없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어떤 일을 멈추거나 취소하는 일을 싫어했던 내가 달라졌다.


관성의 법칙 거스르기


뭔가를 도모하기를 좋아하는 본성은 부지불식간에 나타났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가거나 좋은 책을 같이 읽고 수업얘기를 하거나 어느 날 훌쩍 미술관을 가거나 뭔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지체 없이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이제 그럴 수 없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진행하고 주도하는 일을 지켜보고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머릿속에서는 '아, 이렇게 하면 더 좋고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최대한 말을 아낀다. 뭔가 하려고 할 때보다 뭔가 하지 않으려고 할 때가 더 힘든 나이다. 몸과 입이 근질근질해도 참기, 이것은 흡사 관성을 거스르는 일처럼 아주 부자연스럽고 힘든 일이다.



더하기 말고 빼기 연습 중


내 삶에서 더 빼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가족, 학교, 글쓰기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아주 많이 양보한다 치더라도 이것 말고는 더  수 없다. 실은 이 세가지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지만 더 이상 빼고 싶지는 않다.  좋아하는 것을 뺄 때의 고통이란 이루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사람들과 만나 얘기 나누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소소한 재미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픈 욕구는 어느 날은 의기충만해서 항공권 결제로 이튿날은 각성해서 취소/환불을 한다. 이렇게 현실과 이상 속에서 허우적대 있다. 그렇다고 여행 위시리스트가 초기화된 건 결코 아니다. 더욱 알차게 구체적으로 내 머릿속에서 채워지고 있을 뿐.  건강이 허락한다면 언제든 출동할 준비는 되어있다. 하지만 그 건강이 도무지 예측 불가능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걸까.


고객님, (건강) 신용한도 재설정할 시간입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듯 몸이 온전해야 그 어떤 욕망도 일도 도모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나는 내 몸 사용의 한도 설정의 재심사 과정을 거치는 중이 아닐까. 여태 쌓였던 신용정보는 파기되고 얼마큼 몸을 쓰고 얼마큼 쉬어야 할지 새로운 정보를 쌓아가는 중이다. 가장 작은 단위, 가장 기본 적인 일을 해내고 나서야 서서히 한도가 올라가겠지. 현재 우선순위는 첫 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이다. 서두르다가 파산신고를 면치못한다. 자나 깨나 한도 조심!






매거진의 이전글 소리 없는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