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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24. 2023

일상생활자의 무더위 사투열전

중년의 진로수업

올해 여름은 유난히 다. 35도를 웃도는 폭염소식이 자주 들리곤 했다. 확실히 달랐다. 웬만하면 덥다는 말을 안 하는데 올해는 덥다 덥다를 외치고 다닌 날이 많았다. 예전에는 8월 15일이 지나면 한층 시원해지곤 했건만 올해는 아직도 더위가 한창이다. 걷기를 좋아하던 내가 환승에 환승을 해가며 조금도 걸을 생각을 하지 않고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다니며 더위와 눈물겨운 대치이다.


더위에 맞서는 일상의 순간들


1st Round

밥을 하러 나왔다. 쌀을 씻고 물에 담근다. 쌀을 불리는 동안 생선을 해동해야 하니 냉동고에서 꺼내놓는다. 신선한 야채가 없나. 잊고 있던 콩나물도 냉큼 꺼내 휘리릭 씻고 헹궈 물에 담가 불에 올린다. 콩나물이 끓는 동안 쌀을 씻고 헹구고 밥을 솥에 안친다. 그사이 해동된 생선도 손질해서 달구어진 팬에 올린다. 열기 확 올라온다. 선풍기를 돌린다. 딸그락딸그락 한소끔 끓고 나면 불을 끄고 찬물에 데친 콩나물을 씻어 채반에 받쳐둔다. 물이 빠지는 사이 파, 마늘, 당근을 준비해 썰어 콩나물 양념을 만든다. 사이사이 생선을 뒤집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쯤 되면 땀이 온몸에서 아나기 시작한다. 아직 출근준비도 못했는데 몸은 이미 땀투성이다. 콩나물에 소금이랑 참치액젓도 조금 넣고 참기름과 참깨도 휘휘 뿌려 무쳐내 놓는다. 생선이 알맞게 익으면 접시에 내고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 놓고 밥상을 차린다. 수건을 꺼내 온몸에 흐르는 땀을 쓸어 닦는다. 그사이 밥이 완성되면 휘적거려 밥그릇에 담아낸다. 땀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아침식사를 전투하듯 마치고 샤워실로 줄행랑을 친다. 무더위와 한판 승부는 이제 끝났을까. 노노~투비컨티뉴드(to be continued)


2nd Round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린다. 찬바람으로 드라이기 설정하고 머리를 말리는데 습기와 높은 온도 때문에 머리카락은 날리지 않고 얼굴에 다시 붙는다. 자꾸만 붙는 머리카락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 뜯어내 보지만 소용없다. 뜨거운 바람 드라이어는 절대 엄두도 못 낸다. 찬바람으로 툭툭 털어 물기만 대충 말리는 정도로 만족. 그래도 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계속 흐른다. 다음으로 옷을 고른다. 두껍고 무거운 소재아웃, 몸에 붙는 스판도 아웃, 긴치마도 아웃, 입은 듯 만 듯 하늘하늘한 시폰소재 블라우스를 픽! 꺼내놓는다. 옷을 찾느라 서랍장을 뒤지는 사이 또 땀잔치. 선풍기를 돌리고 서랍장을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면 어느새 땀이 또 흐르고 있다. 겨우 옷을 챙겨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3rd Round

화장대 앞에 선다. 스킨, 로션, 크림 한 가지 쓱~바르면 기초는 끝, 선크림 바르고 파우더 톡톡 찍어 펴 바르는데 땀이 나니 뭉친다. 모르겠다. 대충 아무렇게나 바르고 립스틱으로 마무리. 이건 모 화장이 아니라 그냥 바야바에서 사람모양으로 줄만 그은 정도 되겠다. 화장이 시원찮으니 시선을 끌 귀걸이와 목걸이는 심플하고 화려한 것으로 골라 최소한의 사회적 예의를  갖추고 변장을 마친다. 땀이 쏟아나지만 샤워 시 썼던 수건이 아직 함께 한다. 뭔 대단한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땀이 멈추질 않으니 출근하기도 전에 기가 다 빨린 것 같다.


버스야. 날 구해죠.

후다닥 엘베를 타고 버스정류장에 도착. 내가 탈 버스의 도착시간을 확인한다. 약 3분 남음. 딱 좋다. 대*인테리어 차양막 밑에서 더위를 피한다. 잠시 후,  슝~버스가 도착, 문이 열린다. 와~~ 이건 저 세상 냉기다. 여태 흐르던 땀이 일순간 사라지는 매직! 아침 일찍이라 빈자리는 충분. 내리는 문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멍 때리는 그 짧은 순간, 난 잠깐 행복을 누린다.


시원한 커피 한잔, 이제 겨우 출근했을 뿐이지만

힘들게 이겨낸 출근 전 사투, 왠지 대단한 일을 끝낸 것처럼 작은 사치라도 누리고 싶은 마음은 뭐지? 편의점 커피 한 잔을 냉큼 사들고 승전보를 울리듯 기념샷을 찍는다. '고생했다. 오늘 아침을 멋지게 시작했어.' 남은 하루도 지켜줄 소박한 각성제 투여하고 두 번째 전장에 갈 준비를 마친다. 오늘도 잘 살아남아보자. 더위야 올 테면 와보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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