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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Sep 26. 2023

무심(無心)

<중년의 진로수업>

내 길은 너희와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이사야서. 55.6~9)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간다.

어떤 이들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어떤 이는 나와 다른 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때때로 만나고 또 헤어진다. 때론 잠시 머물러 같이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고, 쉬엄쉬엄 산책도 하고 주변의 것들을 보고 재밌게 이야기하며 닐곤 한다. 나는 그런 일들을 좋아한다.


지난 주말 성당에 갔다가 귀에 꽂히는 말을 들었다. 늘 언제나 헤어짐이 만남보다 어려운 나는 불합리한 일을 두고서도 말을 못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서도 참기만 하는 헛똑똑이이다. 많이 화가 났어도 그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나의 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돌려 말하기만 하니, 상대방은 나의 심리적 고통과 힘듦을 가늠하지 못하곤 한다. 그러다가 결국 참았던 분노가 갑자기 폭발하는 형식으로 종결된다. 이 모든 과정이 기~승~전~결의 순서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기~승~승~결" 이 된다고나 할까.



촉은 빠른데 반응은 느린 나.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굉장히 빨리 감지한다. 그래도 섣부르게 판단하고 따져 묻지 않고 기다리는 편이다. 상대가 스스로 알고 고칠 수 있도록. 너무 많은 사람을 무한대로 품을 수 있다는 환상과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야 한다는 무언의 의식은 생각보다 깊숙이 내 속에 침투해서일까. 상대가 잘못했어도 직설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거나 내치고 차단하지않는다. 아마 얼굴붉히고 싸우는 일을 극도로 힘들어하는 탓도 있을것이다. 그래도 단, 하나 언제나 내가 제1순위로 차단하는 자는 "나를 이용하는 자"다. 일단 그런 의도가 감지되는 순간, 더 이상 그를 믿지 않는다. 아무리 감언이설로 나를 설득해도 내 안 깊숙이 불신이 이미 자란 터라 쉽게 돌아서지는 않는다. 사람을 이용하려는 자는 대상을 사물화 하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 하는 특성이 있다. 절대로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듣는 법이 없고 자신의 논리와 기준안에서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써 대할 뿐이다. 그가 하는 좋은 말과 행동이 이르게 하는 결과가 그의 이득에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나면 나는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가 깨달을 때까지.


이미 솔직하게 자신의 의도와 속내를 말한 자들에게는 화가 나지 않는다. 오직 이기적인 속내를 감추고 포장하거나 교묘하게 숨기는 자들은 가차 없이 지켜야 할 인연 목록에서 제외된다. 이런 사람이 많지는 않다. 평생에 한, 두 명이나 되려나. 누구보다도 사람에 의한 상처를 힘들어하는 나는 누구도 쉽게 함부로 대하지 않기에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제외시키는 것도 어렵다.


그냥 갈 길이 다를 뿐.

누가 누굴 쳐낸 것도 밀어낸 것도 아니다. 인연이 거기까지인 거다. 맞지 않는 사람과 맞추어가는 노력보다 서서히 거리를 두고 잊는 아쉬움을 두는 게 어른스럽다는 것을 안다. 실천하긴 힘들지만 점점 정리하고 행동하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이용당하고 참고 만신창이가 되어 영혼이 털릴 때쯤 그 사람을 밀어냈다. 이제는 조금씩 더 빨리 거리를 조절하고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상대의 잘못을 말하고 따지는 용기는 부족하지만 버겁고 힘든 인연은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백번 맞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인연

모임도, 사람도, 인연도 생명체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활발히 활동하다가 아프고 시들해지고 힘이 빠지고 소멸한다. '아, 인연이 내게 왔다가 머물다 가는구나. 바람이 내게 불었다가 나를 흔들어놓고 지나가는구나. '를 되뇌며 힘든 인연을 더 이상 참아내지 않고 떠나보낸다. 세상의 모든 식물들은 적당한 비바람을 겪어내야 뿌리를 깊게 내리고 단단하게 자라난다고 한다. 내게도 또 한 번의 힘든 인연의 폭풍이 지나갔다. 잘라내고 이겨내 더욱 단단하게 나를 지켜낸다. 나를 뭐라 말하든 욕하든 그건 내 일이 아니다. 나는 나의 길을 갈 뿐. 지나가는 모든 인연을 아쉬워하는 미련일랑 두지 말자. 떠나보내자. 더 좋은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않을까.


남이 어찌 생각하든 그런 건 상관없다.
결국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기에 나를 철저히 소모시키는 작업에만 흥미가 있을 뿐이다.

-장욱진의 무심(無心)-

모기장, 장욱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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