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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Sep 27. 2023

(나를 위한) 추석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중년의 진로수업>

추석이 코앞이다. 나이가 들수록 명절의 재미는 사라지고 부담만 커진다. 괜히 명절을 앞두고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혼자만의 느낌일까. 먹거리도 넘치고 가족, 친지도 찾아뵙 시끌벅적한 몇 년 전부터는 이런 명절별다른 감흥도 재미도 없고 무미건조함만 느낀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쉴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제일 좋을 뿐이다.


추석 보너스, 즉시 마이너스

명절 보너스, 마른하늘의 단비 같은 선물. 통장에 찍힌 지난달보다 조금 많은 액에 눈이 번쩍,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어느 돈은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잔고가 바닥나고 만다. 지난해부터는 제사상을 차리지 않고 식구들이 먹고 싶은 것만 사서 간소하게 상을 차린다. 그런데도 치솟는 물가를 감당할 길이 없다. 여기저기 용돈 챙겨 봉투에 담고 크고 작은 선물도 사다 보면 통장의 숫자는 어느새 "0"을 향해 달려간다.


수고한 나에게도 추석 선물을

한점 한점 영롱한 스시와 친구들

휴일에는 문을 닫는 한의원을 미리 찾는다. 여기저기 꼼꼼히 치료를 받고 나오는데 갑작스러운 헛헛함이 몰려온다. 몇 달간 열심히 일하고 받은 대가가 곧 있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그러다 문득  '그럴 필요가 있나. 오늘만이라도 그냥 즐기자. '라고 혼잣말을 하며 감정의 널뛰기를 한다. 마침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들린다. '그래. 오늘은 나를 위해 맛난 저녁을 사자."  잔고가 사라지기 전에 수고한 나를 위해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 젊을 때는 연휴 때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늦게까지 맛집에 노래방에 열심히 놀고 친척들을 만나면 용돈 받고 사촌들이랑 윷놀이도 하고 얘기하며 재밌게 즐겼는데 그 많던 재미는 어디로 갔나? 예전같이 엄청난 준비에 음식은 하지는 않아도 여기저기 다니며 돈쓰며 자식노릇, 어른 노릇하기 빡빡한 일정에 조금 지친다. 이쪽 집, 저쪽 집 왔다갔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하루 세끼 밥하고 치우다보면 내 소중한 휴일이 다 사라진다. 사정이 이러니 명절이 즐거운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연휴 동안 애쓸 나를 위해 한 끼 쏘자' 과감하게 외치고 초밥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자리를 잡고 앉아 이름도 특별한 "스페셜  모둠초밥"을 당당하게 주문한다. 먹음직스러운 한 상을 받고 한점 한점 초밥을 집어서 천천히 입에 넣고 음미하며 생각한다.


나도 그냥 마냥 연휴를 즐기고만 싶으다.



모두가 즐거운 명절은 어디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 부치고 생선 굽고 고기재고 야채 삶고 음식 준비하느라 분주한 명절을 보냈었다. 작년부터 내가 아프고 나서는 제사를 성당에서 모시는 합동 추모미사로 대신한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예전 같은 명절 루틴 말고 지금 우리에게 맞는 우리만의 즐거운 명절 이벤트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다. 시댁, 친정 찾아가고 밥 먹고 티브이 보고 이야기하고 또 먹고 치우고... 하는 재미없는 일정 말고. 가족 모두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있다면 좋겠다. 다 같이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을 가도 좋고, 가까운 바닷가에 산책을 가거나 공원에 산책을 가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있다면 휴양림이나 근교 볼거리를 찾아 나서면 어떨까. 집을 떠나 작은  야외 활동 하나로  며느리도, 사위도, 부모님도 아이도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든다면 그보다 더 좋은 추석 선물이 있을까. 오물오물 초밥을 씹는 그 귀한 시간 속에 오만가지 아이디어가 지나간다. 물론, 올해도 작년에 봤던 그 풍경 그대로 데자뷰같은 똑같은 추석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은 자유니까~



*표지사진출처: 코스트코 선물세트 사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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