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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20. 2021

평균 연령 44세, 이모티콘에 한창 빠질 나이

나 탐구생활


"깨톡 깨톡"

오래간만에 책을 읽으려 첫 장을 펼치는데 휴대전화에서 깨톡 알람이 울린다. 계속 울린다. 집중이 안된다. 에라 모르겠다. 시끄러운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이 모여 깨톡 수다가 한창이다. 즐거운 대화 중 한 친구가 보낸 이모티콘 표정이 너무 귀엽고 웃겼다. 게다가 캐릭터가 딱 그 친구랑 찰떡이라 너무 재밌다고 말했더니, "그래? 그럼 내가 하나 사줄게~"한다. ​"오. 고마워!"하고 넙죽 받아 챙기고 기분이 좋다. 다른 모임 톡에서 선물 받은 이모티콘을 얼른 써본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 캐릭터가 딱 나라고. 앗. 친구끼리는 닮는다고 했나. 그리곤 갑자기 톡방 사람들이 각자 자기에게 맞는 이모티콘 찾아 쇼핑 삼매경이다.

나의 미니미를 찾았어!

잠시 후, 각자 하나씩 고른 캐릭터들이 휴대폰 대화창을 가득 채운다. 후다닥 고른 캐릭터들이 어쩜 그리 자신의 이미지와 딱 맞는지, 너무 웃겨서 톡 하는 내내 계속 킥킥 웃느라 배가 아플 지경이다. 애들한테 휴대폰 들고 실실 웃는다고 잔소리하던 내가 딱 그러고 있다.

중년 어른들의 현란한 깨톡창

정신없이 톡방에서 웃고 떠드는 사이 한 시간이 후딱 지나버렸다. 읽고 정리한다고 펼쳐놓은 책은 계속 같은 페이지다. 그러곤 카톡대화도 모자라 영상통화로 이모티콘 배틀까지 했다. 참~! 이젠 이 중년 여성들이 귀엽기까지 하다. 이모티콘이 뭐라고 캐릭터 하나로 평균 나이 44세 여인들이 낄낄대며 시간 가는 줄 모르다니…. 애들한테 핸드폰 붙잡고 공부 안 한다고 뭐라 할 일이 아니다.​ 역지사지를 느낀 하루였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오래간만에 이모티콘 하나로 웃고 떠들었더니 스트레스가 날아간 기분이다.


그래, 나이 들어 중년이 되어도 가끔 아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싶을 때가 있어.


며칠 전 이사 가기 전 짐을 정리한다고 창고의 묵은 짐들을 꺼내 들춰보았다. 가방 한 가득 고대 시대 유물처럼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깊은 밤 잠이 안 와서 끄적, 기쁜 소식이 있어 한 줄, 속상한 일을 적으며 한통씩 주고받은 편지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기억을 거슬러 어떻게 내가 소식을 전하며 살았나 생각해본다. 다이얼을 눌러 전화를 하고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내고 허리에 차는 삐삐를 거쳐 벽돌만 한 시티폰과 휴대폰을 썼었다. 이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다닌다. 은행일, 편지 교환, 팩스, 문서작업, 가전과 폰을 연결한 유비쿼터스 기능까지 일상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을 최첨단 휴대전화와 함께 한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인데 이런 격세지감을 내 경험 속에서도 느낀다.

​밤새 쓰고 지우고 고치고 또 고치던 정성이 깃든 편지지의 여백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스티커가 이제는 휴대폰 대화창에 자기만의 개성 넘치는 이모티콘으로 바뀌어 움직인다. 시간을 거슬러 천천히 전했던 손편지도 바로바로 내 메시지를 전송하는 SNS 대화창과 이모티콘도 우리의 마음과 재미를 전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은 같다. 세월이 흘러 나이는 들었지만 편지든 깨톡이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여전히 웃음을 주는 재밌고 즐거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시간을 거스르는 역사적 유물과 최첨단 문명의 이기를 동시에 누리는 나, 중년. 나쁘지 않은데!' 새삼스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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