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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Nov 25. 2023

끝을 아는 자의 아름다움

[라라크루] 금요문장공부

인간의 오랜 욕망,

아프지 않게 

오래 사는, 불멸의 삶.


추하게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을까.

영원히 젊고 아름답고 싶은 인간의 욕구. 안보면 없어질 것처럼 죽음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불멸의 욕심을 채울 물건과 음식들이 우리 주변에는 가득하다. 우리는 그 끝을 모르는 폭주기관차에 타고 있는 걸까. 밀쳐진 죽음을 우리 삶에서 영원히 분리하고 떼어낼 수 있을까.


유한한 것들의 아름다움

향기가 있는 꽃은 향기가 없는 조화에 비할 수 없는 생생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곧 꽃이 지고 잎이 시들고 누런 잎으로 변해 냄새를 풍기며 섞고 사라질 것이다. 우린 금방 지나갈 아름다움을 알기에 이를 찬양한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삶 속의 좋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에는 병적으로 사진을 찍고 영상을 녹화하며 기록하고 남기며 현재를 잡아두느라 혈안이다. 그런데 결국 충분히 누려야 할 바로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한채 기록하고 남기는데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다.



늘 우리와 같이 있는 것, 죽음

 동화책 <내가 함께 있을게>는 우리 곁에 있는 죽음을 쉽고 편하게 보여준 책이다. 어느 날, 오리는 자기 곁에 온 이상한 모습의 죽음을 만난다. 처음에는 밀어내고 싫어하지만 곧 친구가 된다.

수줍게 다가온 친구, 죽음

죽음은 오리가 감기에 걸리다든지 여우가 잡혀 먹히는 걸 걱정한다든지 해주는 일을 한다고 설명했지만 오리는 소름이 끼친다며 멀리 도망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둘은 같이 연못을 간다던가 나무에 오른다거나 소소한 일을 같이하면서 우정을 쌓는다. 어느 날, 오리는 죽음 곁에서 스르르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친구의 곁에서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오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죽음
죽음은 오랫동안
떠내려가는 오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조금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



삶은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고리

삶과 죽음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서서히 소멸해가고 있는 것일지도. 작은 아기가 태어나 자라고 몸도 마음도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어느 순간, 노화되는 과정을 거쳐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다. 이렇게 삶에는 이미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

어쩌다 이 세상에 온 것은 때가 되었기 때문이요, 그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은 운명에 따른 까닭이다. 그때를 편안히 여겨 그 운명에 맡기면 슬픔과 즐거움이 마음을 뒤흔들지 못한다(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  - 장자 내편, <양생주>


죽음을 거부하는 부자연스러움

강남엘 가면 거리에 성형외과 간판이 즐비하다. 젊음, 늙지 않음을 파는 병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해외에서도 원정을 올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마트에는 섞지 않는 플라스틱통에 방부제가 뿌려진 음식이 가득하고, 과일가게에는 농약이 뿌려져 벌레도 못 먹는 형형색색의 과일들이 먹음직스럽게 가지런히 놓여있고 정육점에는 병에 걸리지 않게 항생제를 먹여 키운 돼지고기들이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는 것을 거부하고 늙는 것을 피하고 아픈 것을 막는 약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우리는 자연스러운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젊음의 시간과 편리함을 조금 더 누릴 있게 되었지만 지구의 나이는  훨씬  빠르게 단축되고 다. 죽지 않고, 늙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자연의 섭리를 무너뜨리고 우리 자신의 터전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첨단 기술과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살리고 있는건지 죽이고 있는 것건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결국, 카르페디엠 & 아모르파티

자유분방한 에르베튈레의 작품

화가 에르베튈레는 어린아이가 놀이를 하듯이 지금 현재만을 사는 사람처럼 색을 쓰형태를 표현하고 즐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쉽게 재밌게 축제처럼 작업을 한다. 그가 쓴 색과 형태에는 계획은 없지만 직관이 있고, 계산은 없지만 조화가 존재한다. 기나긴 연습과 도전이  예술적 완성도를 만들어 냈고 숙련된 내공이 놀이처럼 작업을 할 수 있게  만들었음을 감히 짐작해본다. 그에게 색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시작도 끝도 아니고 그저 지금, 현재에 존재할  뿐이다.  그에게서 유한한 인생의 끝, 죽음을 피해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지금 그 순간, 내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는 지혜를 배운다. 인생은 과거도 미래도 없고 다만, 지금 현재가 있을 뿐. 집중해 살았던 현재의 순간들이 모여 결국 멋진 인생을 만드는 것이라는 걸 다시 깨닫는다.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사랑하고, 백발이든 대머리든 생긴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면서 지금을 내 인생을 최고로 것으로 만드는 그의 태도는 모든 순간명료한 색과 형태포착해냄으로써 지금의 욕망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축제 같은 그의 그림은 "아모르파티(amor fati):운명에 대한 사랑"이고 "카르페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의 다른 표현이었다. 더불어 삶과 죽음이 서로 반대말이 아니었음도 다시 상기시킨다.


올 때가 돼서 오는 게 삶이고,
갈 때가 돼서 가는 게 죽음이다.
때가 돼서 하는 일에 좋고 싫고 가 있을 이유가 없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다.

에픽테토스 Epictetos는 “배가 정박 중일 때 잠깐 뭍으로 놀러 나온 게 인생”이라고 했다. 배 떠날 시간 됐으면 얼른 가서 탈 일이다. 미련 떨고 고집부려 봤자 달라질 것 없다. 아까우면 배 시간 다 되기 전에 신나게 놀든가.

강상구, <그때 장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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