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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02. 2023

나도 혹시 답정녀?!

중년의 진로수업

어느새 12월,

언제나처럼 연말에는 학기말 업무처리와 내년 인사조정으로 학교 안의 공기가 어수선하다.


아이들은 기말고사를 마치고 학기말 프로젝트를 하느라 들썩들썩하고, 선생님들은 일 년간 아이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생기부(생활기록부) 작성을 하고 점검을 하고 성적처리에 인사업무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보니 어느새, 한 주가 지나있다.


이 와중에 머릿속은 묵직한 질문 하나가

둥둥 떠다닌다. 교감선생님은 이번주까지 내년도 부장희망원을 내라고 말씀하신 터다.

"내년에는  해야 할까?"

답도 없이 고민만 가득한 가운데 뒷자리 샘에게 실없이 질문 하나를  던진다. 우문현답이 돌아온다.


그냥 주어지는 대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해야지.



순간 멈칫

"그렇지, 그런 거지. 그런데 난 왜 그런 걸 못하고. 일하는 곳에서 재미를 찾고 는 걸까. 아마추어같이." 문득, 묵직한 직업이라는 일에 즐거움을 찾는 내가 철부지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다. 나에게는 자연스러움은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에게 재미란?

재밌는 일이 무엇일까. 막연했던 그 말의 의미를 추적하고 적당한 말을 골라 가만히 정리해 본다.

 내가 해야 하는 것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 그 의미를 일 속에서 단계적으로 구체화하고 함께 하는 동료들과 고민하고 실천해서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일.

관리자의 신뢰 안에서 공동체의 성장을 도모하고 주도적으로 함께 뭔가를 만들어가는 일.

여기서 의미란, 나를 포함한 참여하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진정한 가치에 빛을 주는 그 무엇,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것.

8개 부서 이름과 그 옆에 빽빽이 적힌 업무들,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먹고살기 위해 그냥 하는 일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고 재미 나부랭이까지 찾는 내가 한없이 바보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기어이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마는 고지식함이 내겐 있다.

 

자치와 미래

그 많은 업무 중에 두 개의 단어가 나에게 와닿았다. 자치는 아이들과 학교의 일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일이고 미래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교육이, 교사가, 우리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 묻고 고민하고 변화하는 일. 두 개의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밤새 고민하고 정리하고 마음을 정한 뒤, 이튿날 교감선생님께 여쭤본다.


"이 업무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건가요? 혹시 원하시는 사업이나 방향이 있으실까요?"


진지한 질문에 빠른 답변이 돌아온다. 자치업무는 내정자가 있고 미래교육은 지원사업비를 받고 일하는 부서라고. 짧고 굵은 답변에 나는  허탈해진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교장선생님도 찾아가 여쭈었으나 뱅글뱅글 아리송한 답변만 돌아온다. 왠지 모를 실망감에 나 또한 당황스럽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고 답하는 일,

그 일을 제가 해도 될까요?"라고 묻고 싶었다. 교육안에서 교육을 고민하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 교사가 할 일을 찾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주체적인 일의 소중함과 고민을 말씀드리고 그 일이 중요함을  분도 공감해주셨으면 하고 기대했던 것 같다. 지난밤, 하얗게 지새워서 고민하고 적은 미래교육의 방향과 할 수 있는 일을 적종이 한 장은 왠지 모를 민망함에 꼬깃꼬깃 접어 책상 속 깊은 곳에 밀어 넣고 말았다. 너무나 현실적인 관리자의 답변나는 말문이 막혀버린 걸까. 


금요일 퇴근시간, 고민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미래교육부장"하나만 선택한 희망원을 결국 제출하지 못하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나와버렸다. 털래털래 걸어 나오는 내내 내가 무엇을 바랐었나. 동의받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누군가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데, 난 왜 인정받고 싶어 했을까. 밑도 끝도 없는 질문만 깊어진다. 이러다간 주말 내내 고민의 늪에 빠져 쉬지도 못할게 뻔하다. 마지막 결정을 하기로 한다. 희망원을 제출하기 전 듣고 싶은 말 한마디를 해줄  누군가를 떠올리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부장님,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하려고요.
그게 맞겠죠?

그래. 잘했어. 자긴 그게 맞아.
잘할 거야.


마법의 주문처럼 내가 잘할 수 있을 거란 그 말 한마디에 결정이 쉬워진다. 단박에 결심을 하고 학교에 있는 지인에게 대신 희망원을 제출해 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나 보다. 그 일을 내가 잘할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 고민이 싹 가신다. 나는 답정녀(답을 정해놓은 여자)였다. 실은 누군가가 잘못해서 실망감이 컸던 것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해 안절부절못했었던 게 아니었을까 뒤늦은 깨달음에 부끄러움 마저 든다. 관리자가 힘을 실어주는 그 한마디를 먼저 해주었더라면 결정은 사실 더 쉬웠을 텐데 괜한 불만을 품고 구시렁해보지만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내 속을 알까. 나도 참 쉽지 않은 사람이다 새삼 느낀다.



답정녀가 만드는 불완전한 세상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그 말이나 행동을 잘 알아차리면 '눈치가 빠르다. 센스가 있다'라고 칭찬하곤 한다. 알고 보면 세상을 사는 일은 상대가 듣고 싶은 그 말의 답을 찾아내는 수수께끼 투성이다. 나이가 들면 동일한 문제와 유형이 머릿속에 촤르르 정리되어 누굴 만나든 겁 없이 남들이 듣고 싶은 말, 자신이 원하는 말을 착착해내며 친밀감과 사회성을 뽐내는 이들도 다. 유들유들하게 하고 싶은 말도 하면서 세상살이를 즐겁게 해내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 마저 든다.


반대로 눈치도 센스도 없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미움받기 딱 좋은 세상이다. 남이 원하는 그 답을 모른다고 우린 누군가를 뒷담 화하기도 왕따 시키기도 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경험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찾아다니는 나는 괜찮은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누군가에게 내가 듣고 싶은 그 말을 은근히 강요하기도 했었던 것도 같다. 나는 어쩌다가 내 결정을 믿지 못하고 남의 인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내 결정을 받아들일 수 되었을까. 사회화된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인정과 가치를 부여받으면 타인에게 거부당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자신감을 얻고 공격받지 않을 거라고 안심하며 안정적으로 맡은 일을 해낼 수 있지않을까. 내 마음대로 심리도 분석해 본다.

 

나의 동지들, 답정녀들에게 

오늘도 나와 비슷한 세상의 많은 답정녀들은 자신의 마음을 꿰뚫지 못하는 조금은 센스가 부족한 남자들, 나이가 들어도 늘 눈치코치 시금치도 없는 그들을 포기하지 못하고 열심히 바가지를 긁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평화로운 일상에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 아닐까 순간적인 각성이 든다. 결국 나를 믿지 못하는 불안에서 시작된 불행일 뿐, 내 안의 불안함을 감당하지 못해 가장 친하고 소중한 그 누군가를 괴롭히는 새드엔딩으로 치닫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다.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초능력을 강요하기 전에 일단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내린 결정을 믿어주는 스스로의 자신감이 시급하다.


결국 "미래교육" 네 글자를 적어내고는 그것이 나에게는 자연스러움이고 내 마음이 흐르는 데로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 읽고 또 의미 있는 것이라 말한다. 내 생각이 옳고 내가 가는 길이 의미 있다 응원하며 자만이 아닌 자신을 채운다. 답정녀는 듣고 싶은 답을 동료에게서 또 친구에게서 실컷 듣고는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내년에는 어떻게 꾸려볼까 설레는 마음으로 찬찬히 머릿속을 정비한다. 이러고 보니 참으로 단순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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