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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25. 2023

[타이페이]하나만 투어:길에서 (대만을) 주웠어

세 모녀, 타이베이 방랑기 (4)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오는 이곳에도 크리스마스는  오고 있었다. 회색빛 하늘과 건물이 르와르 영화 배경화면처럼 펼쳐져 있는데 묘한 매력이 있다. 우중충한 거리에서 골목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만난 타이베이는 조금 특별했다. 이젠 박물관 근처에도 가지 않고 발길 닿는 데로 휘적휘적 다닌다. 꼭 가봐야 할 명소는 데이 투어에 몰빵하고 우린 우리만의 노선으로 고고싱. 하루 15,000보는 기본, 뚜벅이 대만 투어 패키지로 씩씩하게 다닌다. 칙칙한 날씨에 우중충한 건물이 많아서 다른 것도 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 미소 짓게 하는 이곳 만의 반전 포인트가 있다. 거리에서 찾은 타이베이의 킬링포인트를 주르륵 정리해 본다.


같이 걷는 초록 신호등 Boy~

저녁 먹으러 나가는 길, 숙소 앞 횡단보도의 빨간 불이 파란불로 신호가 바뀐다. 얼른 길을 건너는데 사람 말고 같이 걷는 아이가 있다. 그것은 초록색 신호등 보이. 카운팅 숫자가 바뀌며 함께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사진으로 찰칵. 독일의 암펠맨 이후로 최애 신호등 Boy가 되었다.

같이 걷는 뚜벅이 신호등



볼거리가 가득한 거리, 거리

하나, 눈과 입이 즐거운 곳, 융캉제 거리


융캉제 거리는 동먼역에 있다. 내리면 대만의 명물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누가크래커' 파는 곳이 있고 건너편 골목 입구에는 제과점이 있다. 여기서는 파인애플 과자, 펑리수를 판다. 과자 하나, 펑리수 하나 베어 물고 골목투어를 시작한다.

누가 크래커 상점앞

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골목골목마다 작은 소품가게들이 즐비하다. 가게들마다 각자 개성이 돋보이는 물건들을 선보이는 데 품목도 디자인도 다양해서 걸어도 걸어도 심심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아이쇼핑의 중독성~

아기자기한 소품가게

걷다가 출출하면 맛있어 보이는 간식들을 하나씩 시도해 본다. 대만식 토스트, 총좌빙하나 들고 융캉제 공원서 먹고, 디저트로 망고빙수 한 그릇 입가심한다. 시원하고 달달해서 좋다. 여름 제철에 왔으면 캭~돌고래 소리를 냈을 텐데, 겨울엔 추워서 캭~소리가 난다. 그래도 먹는 것엔 진심인지라 마지막 망고 한 점까지 야무지게 쫩쫩.

총좌빙, 망고빙수, 스콘, 버블티로 마무리


빙글빙글 골목을 찾아다니니 숨은 맛집이 곳곳에 있다. 저녁 대신 주전부리로 따끈한 스콘에 1등 버블티도 한잔 드링킹한다. 버블티는 과연 명성대로 무작정 단맛 대신에 깔끔한 차와 부드러운 버블, 강하지 않은 맛들이 어우러져 후루룩 목에 감긴다.




길 끝까지 걷고 또 걸으니 다양하고 독특한 인테리어 샵들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런 점에선 여자 셋이 한 팀이라 좋다. 힘들다 지겹다 말하는 사람 없고 구경하고 만져보고 둘러보느라 너무 재밌다. 다만 지갑의 돈이 줄줄 새나가니 그것만 조심! 걷다 힘들면 융캉제 공원서 한숨 돌리고 잠시 쉬어가면 베스트 코스가 완성된다.



둘, 타이베이의 연남동, 중산거리

다음은 중산의 카페거리. 금요일 오후 느지막이 찾아간다. 이곳에 가면 한국의 연남동이 떠오른다. 젊은 사람들이 많고 젊은 감성의 옷가게와 카페, 소품가게들이 줄줄이 있다.

 


중산역 근처에는 백화점도 있고 작은 상점과 벼룩시장까지 함께 있으니 다양한 가격대로 선택의 폭이 커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린 그림의 떡인 백화점은 패스~ 작고 귀여운 가게들만 섭렵한다.

걷다가 힘들면 또 이렇게 근처 공원에서 놀멍쉬멍 잠시 앉았다 가면 된다. 자유여행의 매력은 바로 이런 .



신기한 먹거리가 가득한 야시장으로 고고

대만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야시장이다. 숙소 근처의 닝야야시장과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스린야시장엘 가봤다.


1. 진한 국물, 우육탕 잊지 못해~

오늘은 먼저 숙소 근처 우육탕집에서 허기를 때우고 후식을 야시장에서 하는 걸로 한다. 가락국수면처럼 굵은 면발과 진한 육수, 쫄깃하고 부드러운 고기가 끝내주는 우육탕 맛집이다. 여기에 아삭하고 새콤한 오이절임과 같이 먹으면 환상의 콤비가 완성된다. 대만 와서 처음 먹은 현지식이여서 그런가 아직도 생각나고 다시 먹고 싶은 그런 맛이다.


타이베이역 근처 유산동우육면의 자태

2. 닝야야시장은 타이베이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근데 야시장에 가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쾌쾌한 취두부의 향기에 초연할 수 있다면 괜찮다. 나는 나름 비위가 강한 편이라 주저함 없이 고고~


먼저 땅콩아이스크림, 얇게 편 떡반죽에 땅콩 엿같은 덩어리를 대패로 갈아서 위에 얹고 아이스크림 두 스쿱을 안에 넣고 둘둘 말아서 완성한 간식이다. 한입 베어 무니, 달다. 또 한입 먹으니 더 달고 차다. 나는 당뇨 환자라 두  먹고 베이비들에게 과감하게 패스~


두 번째 모실 분은 오징어 구이. 오징어 한 마리가 아니라 일부분인데도 사이즈가 대박 크다. 이걸 오븐에 구워서 슥슥 썰고 양념을 뿌려서 판다. 쫄깃쫄깃 맛나다.


3. 너무 유명해진 스린야시장


젠탄역에 내리면 바로 연결되는 스린야시장. 10여 년 전 여름에 와서는 생망고빙수를 너무 맛있게 먹었었다. 요즘은 어떤 먹거리와 볼거리가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얼른 달려간다. 그런데 예전의 로컬 재래시장의 느낌은 사라지고 약간 월미도 같은 느낌이랄까. 풍선 터뜨려 인형 뽑는 좌판과 뭔가 천편일률적인 느낌의 노점이 더 많아졌다. 그래도 그냥 오진 않았다. '안되면 되게 하라' 비장한 각오로 떠난 터라 맛난 음식을 발굴해 찾아 먹고 볼 건 보면서 즐겁게 놀다 왔다.


한산한 시장거리, 게살튀김, 소시지구이

간단한 요깃거리로 게살튀김과 소시지구이에 도전했다. 게살은 정말 두툼하고 실한 것이 부드럽고 고소했다. 그런데 이곳의 진정한 강자는 소시지였다. 따끈한 소시지를 사서 호호 불며 베어무니 터지는 육즙에 알맞은 간이 되어 있어 정말 맛있었다. 핫도그로도 술안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한번 맛보고 두세 개 더 추가로 사서 길거리에서 먹는데 호호 불며 쫄깃하고 담백했던 그 맛이란. 미성년자 두 소녀에게도 10점 만점에 10점을 획득할 만큼 치명적인 맛이었다.


거리에서 얻은 즐거움들

대만의 명소 101 타워도 안 가고 중정기념관, 용산사도 안 갔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시장이고 거리여서 그곳만 열심히 갔다. 갔던 곳을 또가기도 했다. 이래서 자유여행을 포기할 수가 없다. 누군가의 기준에는 꼭 봐야 할 곳이지만 나는 아니라서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걸 다 봐야 하는 패키지는 시도한 적이 없다. 어영부영 허점투성이 여행에도 얻은 것은 있었다.


1. 흥정하고 질문하며 대화하는 랭귀지코스

큰 딸 1호는 언어에 관심이 많다. 중국어는 학교서 배운 1년이 고작이지만 중국어 동아리에 중국어 수업도 좋아하는 15세 소녀이다. 영어는 동네 학원에서 수능위주로 배우는 시간 플러스 자진해서 필리핀 선생님과도 화상영어를 하며 회화를 익힌다. 각종 외국 유튜브와 드라마까지 섭렵하며 얇고 넓은 지식으로 나름 무장한 터라 그 실력을 뽐낼 곳이 필요했다. 대만의 거리는 그녀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곳으로 딱 맞았다.


기념품을 사러 들어간 거리의 상점에서 가격을 몰라 그녀에게 눈짓하면 쏼라쏼라 중국어가 튀어나온다. 승률은 대략 80% 정도. 한 번은 에코백을 80% 세일해서 50달러라고 통역해 줘서 5개를 골라 담고 300달러를 내미니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한 개에 80달러씩이고 5개 사면 1개 더 준다는 내용을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그녀는 거리를 종횡무진 누비며 궁금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슈퍼맨처럼 해결해 주었다. 언어는 배우고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써봐야 진정 내 것이 된다. 아마도 그녀는 실수와 도전 속에서 단단한 실력을 쌓는 좋은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2. 지금, 현재의 대만을 엿보는 기회

10년 전 대만과 지금의 대만은 달랐다. 거리에서 파는 물건의 품목이 달랐고 상품의 종류도 달랐다. 그때는 여름이었고 지금은 겨울이어서 분위기도 즐길거리도 전혀 딴 판. 꼭 가야 하는 코스만 고집했다면 계절에 따른, 시기에 따른 변화를 감지해내지 못했을 거다. 지금의 대만은 코로나를 뚫고 또 한 번 성장 중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금을 캐는 광산업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다면 지금은 반도체산업의 발달로 경제적 부를 얻고 있다고.

그래서 그런지 거리의 사람들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건물이 오래되고 칙칙했지만 노숙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늘 조용히 질서를 지키고 안내선을 따라 줄을 서며 공중도덕을 지키고 아무리 바쁘고 사람이 많아도 밀거나 새치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안전선을 지키며 줄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상점에서도 거리에서도 어설픈 중국어나 영어로 질문을 해도 늘 웃으며 답해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많았고 아이에게 손님에게 먼저 인사하고 배려하는 따뜻함이 있었다.

한적한 도시의 공원


짧은 여행으로 대만의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그래도 박물관에 고이 모셔진 과거의 역사만큼이나

거리에서 본 살아있는 현재의 역사도

가치 있다고 느낀다.


어제 와 본 융캉제 상점의 언니의 미소가 기억나서

오늘 또 가보자고 하는 아이의 말에서

자리가 있다고 눈짓으로 내게 안내해 주던 지하철 행인의 미소에서

지금, 이곳의 보물을 발견한다.


길은 내게 맛있는 음식과

뜻밖의 만남과

새로운 길을 보여줌으로써

여행의 재미와 묘미를 상기시켜 준다.


입장권도 오디오가이드도 없는

거리의 박물관은

언어를 뛰어넘은 미소와 배려로

통역 없이 대만을 설명한다.


오늘도

나는 이름 모를 낯선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새로운 보물을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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